39.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싶어요 형제와 자매는 모두가 소망하는 S대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비록 중매장이의 소개로 만났으나, 형제의 부모님은 소위 저들의 궁합이 너무 좋다고 두고 볼 것이 없다고 결혼을 재촉하시는 바람에 만난 지 한달만에 서둘러 결혼을 했다. 남편은 중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아내는 금융 계통에서 영글어 가는 만혼의 신혼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꿈들을 줄줄이 엮어가고 있었다. 그때 소망하던 아이를 잉태한 것이 저들에게는 얼마나 기쁨이었던지. 엄마 아빠의 기대를 아는지 아이도 급하게 서둘러 9개월이 되자 밖으로 나오겠다고 야단이었다. 임신 후반기에 자매는 급격한 체력의 한계를 느꼈으나 임신의 어려움으로만 생각했다. 임신 9개월만에 출산은 정말 엄청난 난산이었다. 아무리 난산의 고통이 있었지만 팔에 안겨 새근새근 잠든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 모든 대가를 치른 듯하여 대견하기만 하였다. 산후 조리를 하면서도 급격히 떨어진 체력은 언제나 자매를 힘들게 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옴도, 빠개질 것 같은 등짝도, 자꾸만 일어나는 어지러움도 금방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출산 후 6개월이 지나며 호전될 줄 알았던 몸이 더욱 심각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져 빨려 들어 가는 것 같더니, 자매는 깊은 혼수에 빠져 들어가 버렸다. 이틀간의 깊은 혼수에서 깨어난 자매는 6개월 된 아들을 떼어 놓고 병원에 들어와 있다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왠지 모를 서러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심장부터 문제를 일으킨 자매의 건강의 이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악화 일로를 걷게 되었다. 자신이 전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모든 기억은 점점 사라져 갔다. 자신의 앞에 서있는 남편이, 식구들이 누구인지도, 자기가 어떤 형편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형제의 집안에서는 궁합이 너무나 좋아 자식에게만은 아름다운 삶이 보장될 줄 알았는데 갈수록 문제가 심각하니 정성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결론에 산사(山寺)를 헤매며 할 수 있는 한 공덕을 쌓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보장도 나날이 깊어가는 병세 앞에 며느리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어 병을 처달고 집안에 들어온 며느리라고 야속해 하고 미워하며 돌아보지도 않았다. 예수님을 믿는 누나는 자기 올케의 시한부 생명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믿음의 형제 자매에게 동생과 올케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동생에게 하나님에게 매어 달려 보라고 권면해 보았다. 형제는 자신이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하나님을 쉽게 믿을 수 없었으며 또 그렇게 자신이 약한 존재로 보여지고 싶지가 않았다. 자매는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중환자실 밖으로 흘러나오는 소식은 1997년 1월 9일 혼수상태에 빠져 심장이 멎어버렸고 어떤 심폐술로도 그녀를 깨울 수가 없다는 급박한 소식이 들려왔다. 형제는 이대로 부인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허망했고, 갓난 아들을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세상에 믿음이 어떻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자신에게 어떻다는 그 모든 생각도 화려하기만 했다. 다만 그 순간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실 복도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알기를 거부했고, 믿기를 거부했던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우주만물의 주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며 회개했다. 아내를 살려 주시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다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아내를 살려 주시기를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기도하고 기도했다. 지금 자매의 병원 기록에 쓰인 병력에는 “70분만에 다시 소생하였음” 이라는 엄청난 말이 기록되어 있다. 다시 살아난 자매를 찾아 중환자실로 심방을 갔다. 자매의 말은 어눌했고, 한마디씩 말을 가르쳐야 알아 들을 수가 있었다. 마비가 되어버린 몸은 겨우 겨우 부축을 해야 목을 들 정도였다. 깨어 났다고는 하지만 보장되지 못한 회복에 우리 모두는 더욱 하나님께 매어 달렸다. 시력이 약해져 잘 볼 수가 없는 자매를 위해 형제는 큰 종이에 큰 글씨로 쓴 주기도문을 읽어 주고, 다락방의 교재를 쉽게 풀이해 자매에게 매일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3번을 가르치고, 가르치며 기억할 수 있게 노력하였다. 그러기를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왔을 때 자매는 기적적으로 자신이 생후 6개월만에 떼어 놓고간 아들 옆으로 다시 돌아 오게 되었다. 육신은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소망을 갖고 돌아오게 되었다. 자매와 형제는 처가 식구들을 전도하고 우리는 형제와 자매를 위해 섬겼다. 형제는 자매의 움직이지 않는 손과 발이 되어 운동을 시켜주고, 특별히 성경을 끼고 앉아 함께 읽고, 묵상한다. 아내가 성경을 한번 통독하고 나면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는 확신을 갖고, 생명이 2달 남았다 하더니 얼마후 2년으로 연장되고 요즘은 “거의 정상이 가까웠군요, 놀랍습니다!”라는 진단을 받았다. 어느날 자매는 성경을 한번 통독했고, 이제 그녀의 믿음은 놀랍도록 성숙해 가고 남편은 부인과 함께 세례를 받겠다고 준비한다. 자매는 보란듯이 4층의 계단을 뒤뚱거리지만 걸어서 심방간 나와 호스피스 집사님을 배웅한다. 자매에게 질문했다. 무엇이 가장 하고 싶으냐고, 자매는 지체하지 않고 남편을 위해 뜨끈한 밥을 손수 짓고,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싶다고... 그리고 자기를 위해 애쓴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돌아오는 차속에서 자매를 위해 중보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자매의 소망을 들어 주심을 감사 합니다. 한가지 소원은 시부모님도 주님 안에서 자매를 용납하고 다시 사랑하게 하소서...... 40. 자신을 드리며 호스피스로 그는 6남매 중 막내로 자라날 때부터 고생을 안고 태어난 듯 싶다. 그가 어머니의 사랑을 피부로 느껴보지도 못한 채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 버리셨다. 나이가 많으신 아버지, 사업에 자주 실패하시던 아버지는 용한 점쟁이, 이름있고 무엇이 좋은 것인 줄은 모르나 그냥 좋다고 소문이라도 들리는 절이라면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오르시는 신심이 대단한 분이셨다. 형제는 아버지 같은 형님 밑에 살면서, 지긋지긋하게 조카들과 싸우면서 자라야 했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큰 형님이 왼쪽 손가락 5개 모두를 기계의 오동작으로 인해 잘리게 되는 사건이 생겼다. 수술을 하고 숨을 돌릴만 하니 이제는 항상 어머니처럼 자신을 돌봐 주시던 큰 형수님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의 급성 백혈병으로 그나마 있던 가산은 저녁 해가 기울듯 금방 서산을 넘어가 버렸다. 형제는 큰 형수님의 급성 백혈병을 고쳐 주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친구가 그를 권면한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그는 이런 계기로 교회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2년 여의 기도와 주변 사람의 돌봄도 아랑곳 하지 않고 큰 형수는 예수님을 따라 주님의 나라로 긴 여행을 떠나갔다. 이젠 좀 여유를 찾을까! 했더니 갑자기 아버진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10여 년의 더 큰 어려움을 가져다 주신다. 집안에 우환이 끼였다고 집안 식구들은 절에 가서 빌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큰 절을 찾아가 그의 이름 석자를 연등과 함께 입적시켰다. 새벽 100일 불공과 탑돌이 100바퀴를 돌면 집안의 우환이 없어진다 하여 열심을 다 하였건만, 이제는 큰 형님까지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 되어 버렸다. 어렵사리 가족회의를 열어 아버지만 서울로 모시고 올라왔다. 서울에서 살림은 만만치 않았다.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 처가에서 딸을 뺏어 오듯 결혼식을 올리고 남들처럼 부푼 꿈을 안고 신혼 여행길에 올랐지만 아버님이 위독하다는 소식 때문에 모든 여행을 취소하고 급히 돌아와야만 했다. 급히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을 보신 아버지는 4시간만에 세상을 떠나 버리셨다. 이젠 모든 고통과 어려움은 떠나갔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큰 형님이 병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또 세상을 떠나 가버리셨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이제는 절대 어떤 일도 자신을 괴롭힐 것이 없겠거니 믿었는데 어렵사리 장만한 조그마한 아파트가 사기꾼의 손에서 농락을 당하고 있었다. 간신히 재판하여 겨우 집만은 찾고, 돈은 수천만 원을 날려버리게 되었다. 이제 주변에서 형제에게 이 많은 환난을 이길 곳은 교회밖에 없다고 교회에 나갈 것을 권하게 되었다. 형제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떠밀리듯 교회의 뜰을 밟게 되었다. 그럭저럭 자신의 불행을 잊어갈 만한 때 추석 연휴로 처가집에 데려간 큰 아이가 병약한 아이이긴 했지만 그렇게 금방 이 세상을 떠나버릴 줄은 몰랐다. 슬픔을 깊이 느낄 만한 여유도 없이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둘째가 태어날 때 형제는 부인에게 약속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믿지 말고 오직 너와 나만 믿자. 그리고 돈을 벌자. 그래서 어떤 것도 자신의 삶을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약속을 단단히 했다. 행복한 듯한 시간이 약 1년이 지났을까? 1995년 12월부터 이상스럽게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살 감기려니 생각하고 통증을 잠재우기 위해 진통제를 먹기 시작했다. 5개월동안 이 약국 저 약국을 순례하며 약을 사서 먹었지만 듣지 않아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듣도 보지도 못했던 “비인강 암 4기.” 5월 31일 첫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6월 1일 항암제를 맞고, 11월 16일까지 6차의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었다. 우리는 형제의 큰 누님으로부터 형제를 방문해 주길 요청 받았다. 그의 육신의 질고와 죽음의 공포는 쉽게 우리를 환대하게 했는지 모른다. 너무도 빨리 자신의 후회스러운 지난 날들을 회개하고 예수님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만남의 횟수가 많아지자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소원했다. 죽음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염려가 되지만 주님에게 맡기겠다고 담대하게 자신을 드리게 되었다. 형제는 우리가 방문하여 들려준 성경 구절 중에 빌립보서 4장 6, 7절을 언제나 묵상한다고 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형제는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평안을 느끼며 모든 것을 오직 주의 뜻에 맡기고, 곤고한 중에도 감사함을 찾으려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가면 오히려 당황할 정도로 감사를 표현하곤 했다. 밥을 먹음도, 숨을 쉴 수 있음도, 심지어 화장실을 갈 수 있음도 감사하고, 복용하는 약이 떨어졌을 때 병원 병실이 비어 자신이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음도 감사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형편을 하나님 앞에 감사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를 하나님은 혼자 두시지 않으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그는 1년 여만에 완치 판정을 받고 이제 자신의 삶을 자기처럼 연약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섬기겠다고 주일 아침에 남자들의 호스피스 기도 모임에 나와 열심히 환자들의 명단을 붙잡고 기도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41. 민둥머리 머리띠 긴 머리가 치렁치렁 바람을 타고 너울거리고, 그 애띤 예쁜 얼굴로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하나, 둘, 셋, 넷! 선생님과 함께 발걸음을 맞추느라 옆의 새 친구와 하하호호 떠들어도 모자랄 올해 만 일곱살의 은수. 몇 년만에 병원에서 만난 엄마와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싶은지 몇마디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조그마한 손은 엄마를 놓칠새라 손가락 하나를 꼭 붙잡고 있다. 은수 남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3년 전, 신경 아세포 종양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질병이 어린 이 딸을 덮쳤을 때 이 가정은 모든 것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출산과 병수발에 지치고, 믿음이 연약한 탓인지 아이 엄마는 정신적인 쇼크를 받아 자꾸만 이상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대대로 불교 믿는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예수님을 믿는 남편과 결혼했기 때문에 아이가 병이 들었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기가 집을 떠나야 아이들이 산다고 절의 승려가 그랬다면서 온단 간단 말도 없이 행적을 감추어 버렸다. 수소문 끝에 친정에서 지었다는 절에서 기거하고 있는 그녀를 찾아냈다. 그런 와중에도 은수 아빠는 떠나버린 엄마 대신 두 아이의 엄마 역할까지 충분히 감당하였다. 이런 수고가 있었기에 은수의 상태는 기적적으로 많이 호전되었다. 이제 좀 정신을 차리며 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는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가정을 추스려야겠다고 계속 부인을 설득하였으나 막무가내였다. 은수 아빠는 자신의 진로를 바꾸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동안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신학대학 4학년으로 학사 편입하여 신학생이 되었다. 치료가 순조로울 줄 알았던 은수는 올해초 재발이 되어 폐, 신장, 골수까지 암세포가 전이되어 항암제 치료를 다시 받게 되었다. 긴 머리칼에 아름다운 레이스가 달린 머리띠를 꽂고 싶어하는 아이. 그러나 주먹만한 작은 머리에 계속 투여되는 항암제는 한 올의 머리카락도 남아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은수는 의젓했다. 우리가 찾아간 병실에서도 두 손을 맞잡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항암제로 인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엄마 때문에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를 찾아준 것에 민둥 머리를 숙여 감사를 한다. 아빠가 학교에 가는 날은 결손 가정, 소년 소녀 가장의 아이들을 돌봐 주는 섬김의 집에서 동생과 함께 그렇게 잘 지냈었다. 항암제를 맞은 후 일어날지도 모를 응급 사태에 대비해 은수는 아빠의 기숙사 좁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때도 어린 은수는 평안을 잃지 않았다. 항암제를 맞던 은수가 다시 차도를 보이기 시작하자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보자고 재촉했다. 우리도 함께 은수의 수술이 최선이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은수 아빠의 학교 신학생들은 이 안타까운 상황을 돕겠다고 200여 명이나 헌혈로 은수를 섬겼다. 1997년 10월 중순, 수술을 하기 전날 안타까운 마음을 부여안고 S대 아동 병원을 찾았다. 마침 은수는 채혈을 하고 백혈구 수치를 조사한다고 병실 침대에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어떤 젊은 여인이 침대를 붙들고 엎드려 있는 것을 본 순간 은수 엄마다! 라는 직감이 왔었다. “저 실례지만 혹시...” 그 엄마는 눈물을 눈에 가득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먼저 끄집어내야 이 가련한 모정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엄마를 은수 옆으로 돌아 올 수 있게 한단 말인가? 은수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일 줄 몰라 찾아 왔노라고 말을 하면서 손에 레이스와 구슬로 장식된 예쁜 검정색 머리띠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은수와 은수 동생을 위해 함께 살아야 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기가 아이들 곁을 떠나야 아이들이 살 수 있다는 묘한 논리를 굽히지 않는다. 은수가 병실로 들어오는 바람에 이야기는 끝이 났다. “은수야 엄마가 오시니까 좋아?” “너무 너무 좋아요!” 민둥머리에 머리띠를 한 은수는 적어도 오늘만큼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은수의 수술은 잘 되었다. 은수 엄마는 또 그 절로 떠나갔고, 은수 아빠는 신학 대학원 시험을 위해 준비한다. 11월 중순, 은수가 또 항암제를 맞으러 들어간다고 우리에게 기도의 제목을 불러준다. “아들은 잘 지냅니까?”라는 질문에 “글쎄요 목사님. 그놈아가 하루에 서너번씩 오줌을 싸대며 불만을 표현하는데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이 고통을 아시겠죠...” 찾아오는 슬픔을 표현할 수 없고 다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은수와, 은수 동생 그리고 엄마, 아빠가 다함께 손을 잡고 기뻐할 그날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42. 초대받은 크리스마스 이브 언제부터인가 갑갑한 속이 문제였다. 체한 것 같아 소화제를 먹으면 얼마 동안은 소화가 되는 듯했다. 그런데 97년 8월부터는 아예 소화가 되지 않고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이 덜컥 겁이 나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은행 근무에 지친 몸은 병원에 가봐야지 하는 결심을 차일피일 미루게 했다. 계절이 바뀌었다. 추스르기 힘든 몸이 수상하였다. 아빠, 엄마가 아직도 마음에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훌쩍 떠나 버리시고, 이제 겨우 언니와 남동생과 자기와 셋이서 마음의 상처를 가라 앉혀 살려고 하는데 덜컥 큰 병에 걸리어 가족에게 짐이 되면 어떻게 하나?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 와서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동내 병원을 찾았더니 소견서라는 것을 써주며 Y대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Y대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를 찾아 병실에 찾아 갔을 때였다. 내가 만나려고 찾아간 환자 바로 뒤에 있는 침대에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쓴 어떤 환자가 있었다. 갑갑하게 보이는 그 환자에게 갑자기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첫 대면은 그저 그렇게 뒤집어 쓴 이불을 쳐다 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며칠후 다시 들른 병실에서 내 관심의 대상이었던 그 환자를 보았다. 그녀는 병실의 고요한 공포를 달래기 위해 이불 속에 몸을 감싸고 여성잡지를 의미없이 뒤척이고 있었다. 그때 나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푸근함이 느껴졌다.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수정처럼 맑고, 커다란 아주 잘 생긴 26세의 위암 말기 자매. 슬쩍 지나치는 그녀의 눈빛 속에서 나를 도와 주세요. 나는 이제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를 돌아봐 주세요 하는 지친 듯한 눈빛을 보았다. “하나님은 자매를 전에도 지극히 사랑하시고, 오늘도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자매는 오늘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이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오기만 하세요. 지금 당장 평안을 주시는 주님의 품으로...” 자매는 서서히 경계를 늦추고 찾아갈 때마다 조금씩 마음을 열더니 급기야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하루는 왼쪽 손등이 불에 덴 것처럼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손등의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손등에 맞던 항암제가 새어 나와 피부가 그렇게 된 것이다. 부풀어 오른 손등이 화끈거리고 아프다며 호소할 때 함께 방문한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마음은 안타까웠다. 항암제를 맞고 후유증으로 고통하는 자매의 마르고 갈라진 입술처럼 눈물이 흐르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오 주님! 이 딸에게 긍휼을 허락하소서 하며 함께 기도하게 되었다. 또 어떤 날은 복수가 차서 장구통처럼 부풀어 오른 자신의 배를 보여 주며 염려의 시선을 보내는 나에게 여유있게 웃어가며 농담(?)을 한다. “목사님, 어제 의사 선생님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먹으라 하시길래 얼마나 귤이 먹고 싶던지 디립다 귤을 먹어 치워서 아직도 배가 꺼지지 않네요. 아마 내 뱃속에는 온통 귤과즙으로 가득차 있을 거예요.” 나를 편안히 해 주고 싶어서 한 자매의 말은 나에게는 농담이 아니었다. 이번 겨울에 귤을 볼 때마다 자매의 말이 기억 났다.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귤을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찬송을 불러 달라 하고, 예수님에 대해, 천국에 대해 하나 하나 질문을 해 오더니 어느날은 우리 호스피스들의 방문을 너무도 사모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평안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자매 자신이 기도한 대로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녀는 더욱 마음을 열고 우리를 대했다. 성령님을 의지할 수 있는 투병에 감사를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마침 나에게 들어온 성가 합창제 티켓이 있었다. 자매에게 내 대신 음악회에 참석하고 거기서 초대받은 자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권했다. 우렁처럼 뒤집어 쓴 자신의 침대와 이불에서 나오길 바랬다. 자매는 조금 주저하는가 싶더니 흔쾌히 응한다. 기왕지사 음악회에 참석할 바에는 더 많은 환자와 함께 가라고 성가 합창제에 초대된 우리 동역자들의 티켓을 거두어 보냈다. 그녀의 기쁨에 들떤 목소리는 고통과 두려움의 껍질을 깨는 것 같았다. 비록 손등의 이식 수술 때문에 음악회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초대받은 자로 삶을 찾는 마음처럼 예수님 안에서 감사함으로 투병하여 승리의 노래를 부르도록 축원한다. 오늘도 자매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기대가 된다. 지난 주와는 다른 어떤 모습을 기대한다. 오늘은 내가 자매에게 초대를 받았기에...... 43. 잃은 양 찾아 나서기 훈련된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연약한 환우들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는 병원을 95년도에 6곳을 선정하고, 기도로 준비한 후 1996년 9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 중 우리 호스피스가 주목한 병원이 있다. 환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병든 육신의 치료를 통해 주님의 잃어버린 양떼를 찾는 도구로 쓰임받는 병원이다. 왼쪽 편으로 한강과 잠실 종합경기장을 가슴에 한아름 품고 서있는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하나병원’이다. 1992년 12월. 암쎈타를 갖춘 한방과 양방이 함께 진료하는 최초의 병원이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00시, 6명의 봉사자가 병원 5층 회의실에 모여 그 날 새롭게 만날 입원 환우들을 담당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를 받는다. 병증세와 가능한 많은 정보를 소개받고 환자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한다. 그리고 2명씩 짝을 지어 낯선 병실을 노크하며, 낯선 환우들을 만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저들에게 말씀과 기도와 상담으로 섬긴다. 이 병원에서 사역을 하며 만난 56세된 다발성 말기암으로 고통 받던 환우가 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 섰을 때 침대 위에 힘들게 앉아 좀 넋이 나간 표정의 남자. 그러나 그 분은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다.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붙이려고 했더니 너무나 힘이 든다며 손을 저으며 귀찮아 하기에 조용히 서서 그를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할 뿐이었다. 이런 만남의 횟수가 늘어가면서 이제 그에게 남아있는 생명의 기간은 1-2개월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항상 그의 주변에는 간호하는 사람이 있었다. 환우의 형님과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간병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도 불안하고 두려워하며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느날인가 오히려 환우와 가족들이 호스피스 병원 봉사팀의 방문을 기다리며 기도를 부탁하고 말씀 듣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도할 때, 환자만이 아니라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며 주님의 참된 위로를 간구하는 것이 아닌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요한복음 14장 1-3절). 천국에 대해, 믿음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증거할 때 그들은 고백하기를 전에는 교회에 나갔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하나님을 멀리했다고 다시 자신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와도 되느냐고 울먹인다. 그 다음주 수요일 기대를 갖고 또 형제를 방문했다. 형제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는 자진하여 천국을 이야기하고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소망없던 그의 표정이 이제는 생기가 돋는다. 가족들은 어제 다같이 교회를 출석했다고 보고하며, 환자가 통증도 줄어들었고 두려움도 떠나갔고 얼마나 평안한지 너무나 좋다고 말한다. 87세 되신 코암에 걸린 할머니를 만났다. 입원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불 속에 화투를 숨겨놓고 시간이 날때마다 딱딱 패를 맞추어 일진을 보신다. 성경책을 들고 서있는 우리 봉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할머니는 유달리 코가 크셨기에 찾아 뵐 때마다 미국인 할머니라 농담을 할 정도가 되었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 질수록 할머니의 코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급기야 부푼 코에선 고름이 뚝뚝 떨어졌다. 할머니는 식사를 전혀 할 수 없어 손등에 꽂은 링거액만을 의지했다. 봉사자들은 너무나 안타까워 녹두죽을 끓여 할머니에게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녹두죽을 보시더니 단숨에 들이키셨다. 평소에 그렇게 녹두죽이 잡수시고 싶으셨단다. 한 그릇의 녹두죽은 그 영혼을 찾으시는 주님의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녹두죽을 뜨시는 숟가락의 횟수만큼 점점 예수님에 대해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렇게 소망가운데 감사를 하시더니 스물 넷살 적에 사랑했었던 주님의 품에서 안식을 취하셨다. 길을 잃어버린 양떼들을 위해 오늘 우리도 사용해 주시고, 또 그 양들을 찾으시되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 이 사역을 위해 “하나병원”의 비젼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44. 동숭동 어린 천사들의 합창 동숭동은 항상 약동하는 젊음과 자연이 어우러져 예술이 묻어나는 건강한 거리다. 수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그래도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길은 언제나 생기가 넘쳐난다. 그렇지만 이 거리를 끼고 슬프고도 답답한 곳이 있다. 서울대학교 어린이 병원. 우리 호스피스 팀이 이곳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이 아니었다. 1992년 2월 1일 사랑의 교회 호스피스가 사역을 시작하면서 지금은 의젓이 청년으로 잘 자라준 임파종으로 고통 받던 한 소년을 섬길 때부터이다. 우리가 처음 찾아간 소아병원 7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수 없어 그저 몸부림치며 우는 어린 것들과 그 고통을 옆에서 지켜 보아야 하는 보호자들. 그들의 침대에 걸려있는 병명들은 무슨 무슨 암을 표시하고 있고... 무식한 소리일지 모르나 내 의식 속에는 암이란 질병은 어른들의 질병이었지 어린 저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병명이었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병실마다 넘쳐나는 고통의 몸부림과 절망과 눈물의 한탄을 보는 마음은 괴롭고 또 괴로웠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 마음에 기도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 우리 호스피스들은 원목실의 도움을 받아 저들을 섬기기로 95년부터 작정했다. 사역을 시작한 96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6명의 서울대 어린이 병원팀들은 어린이들의 고통속에서도 아이들과 부모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갖게 하는 참으로 많은 열매들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가 있었다. 교회 청년들의 협조를 받아 함께 이끄는 어린이 날과 크리스마스의 축제는 년중 가장 큰 행사가 되었다. 지금 섬기는 아이들 중 하나인 준영이는 아직 만 한살도 되지 않았다. 준영이는 자신이 어디가 아프다고 표현할 수도 없는 나이다. 그러나 왜 머리가 터지게 아프고, 몸의 왼쪽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지, 왜 갈수록 아빠 엄마의 얼굴이 점점 뿌옇게 보이는지, 자꾸만 구역질이 나고, 젖을 먹을 수도 없고 물도 먹을 수가 없으니 배는 고프지만 눈물만 흘러나와 소리쳐 울고 싶어도 힘이 없어 그것도 여의치가 않는가 보다. 준영이는 상태가 좋지 못한 뇌종양이다. 목사님이신 준영이 아빠는 목회를 하신다. 아픈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투병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우리 호스피스 팀들이 매주 목요일 어린이 병원을 찾아가서 첫번째 안부를 물어보며 관심을 갖는 것은 온 몸에 꽂혀 있는 링거줄의 갯수라고 할 만큼 그들의 상태는 위중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준영이의 평안을 위해 간구하고, 또 간구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모들에게 드리는 위로와 가끔 해드리는 반찬과 간식뿐이다. 갈수록 너무나 야위고 아파서 끙끙거려도 준영이는 찾아간 우리를 바라보는 눈에 힘을 주어 눈을 맞추어 주려고 한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 준영이는 모든 링거줄을 다 빼버리고, 생기있는 얼굴로 벙긋 벙긋 웃으며 두손을 들어 우리 품에 안기려 할 것이다. 그런 준영이를 꿈꾸어 본다. 열세 살 난 송혜는 중국 연변에서 백혈병을 치료하러 온 아이다. 처음 이 아이를 보았을 때 남남북녀라더니 너무도 예쁘고, 목소리가 고와 우리는 송혜를 천사라 부르기로 했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살았던 송혜 식구는 하나님을 잘 모른다. 송혜 아빠는 딸을 치료하기 위해 아버지의 나라인 고국에 찾아 왔건만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건설 현장을 돌아 다니며 막노동을 하며 투병을 돕고 계신다. 송혜는 요즘 들어 자꾸만 혼수상태에 빠져들어 아빠 엄마를 알아 보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우리가 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얼마 안되는 치료비 보조도 중요하지만 절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알려주기를 원했다. 송혜를 찾아갈 떄마다 예수님 안에서 투병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풀어 주고 또 고백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섬겼다. 어느날 송혜는 예수님을 사랑하면 이렇게 평안하고 감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송혜의 부모님들도 새벽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는 딸이 강건해지고, 평안을 찾도록 소원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입안이 헐고, 말도 잘 못하고, 점점 기억력도 흐려가지만 송혜는 자주 “예수님이 나를 지켜 주신데요!” 하고 고백한다. 이 고백이 주님께서 송혜와 함께 하시는 사랑의 음성임을 확신한다. 오늘도 사랑하는 딸과 아빠 엄마가 천국의 아름다운 소망을 갖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기를 기도한다. 모든 어린이 병동에 어린 천사들의 합창이 울러 퍼졌으면... 고통의 신음이 아닌 기쁨의 찬양이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합창이 울려 날때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기다리며...... 45. 호스피스 사역 1. 호스피스는 왜 필요한가? 1992년 1월 첫주일 밤. 교회 중진들이 모여 기도하는 120인 기도회가 열렸다. 기도회에서 간호사 출신의 한 권사님이 간곡히 요청하셨다. 자체적으로 암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는데 전문적인 교역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셨다. 강한 감동을 느끼며 자원하여 1월 한달을 준비하고, 2월 들어 사역을 시작하였다. 사역을 시작하고 보니 지금까지 해왔던 환자 사역하고는 너무나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환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료되고 일으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환자들이 2-3개월 안에 임종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환자 사역에 대한 특별한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선뜻 나섰지만 반복되는 임종 앞에 무척 당황하였다. 이 당황함 속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역이 “호스피스”라는 새로운 사역임을 3개월의 황당함이 지나간 후에야 알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호스피스란 용어가 교회 안이나 사회에서 너무나 생소하다 보니 혹시 “호스테스”들을 전도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웃지 못할 질문들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호스피스란 말과 사역이 얼마나 많이 통용 되는지 97년 봄에 충북 증평으로 강의를 하러 갔더니 83세의 권사님이 호스피스 강의를 들으러 오셨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원래 호스피스란 말은 라틴어의 Hospes에서 나왔다. 이 단어는 접대하는 사람(Host)이라는 말과 손님(Guest)이라는 두 단어의 의미를 포함하는 말로서 “손님을 스스로 맞고 돌보며 환대한다(Hospitality)”는 의미가 있고, 말기(암)환자를 보호하고 관리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 환자들이 갖는 여러 고통을 덜게 하고 평안함과 소망으로 보살피고 섬기는 것이다. 호스피스 사역의 섬김의 대상자는 일차적으로 “말기(암)환자”들이다. 이 말기(암)환자들에게 남아 있는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예수님의 사랑으로 지지해 준다. 또 죽음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며, 남아있는 가족들의 상실의 고통을 섬기므로 소망을 갖고 어렵고 힘든 때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준다. 환자나 그 가족들이 겪는 공통적인 4가지의 고통이 있다. 1)이 세상에서 이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의 고통인 사회적인 고통과, 2)자신의 임종이 지금껏 지내온 가족과 익숙한 환경에서 떠나가길 원하는 정서적인 고통과, 3)암의 말기상태가 됨으로 오는 말할 수 없는 육체적인 통증과 고통의 조절, 4)이 세상을 떠날 때 겪게 되는 불확신, 두려움, 외로움 등에서 오는 영적인 고통을 지지해 주는 것이 호스피스의 사역이다. 누구든지 예외없이 환자가 되면 깊은 수렁과 같은 고통과 환란 속에 헤메게 되며, 누구하고라도 자신의 고통을 덜고 싶어하는 일반적인 욕구가 있다. 그러기에 이 시기에 누가 저들을 섬기느냐(Care)는 참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많은 무신론자나, 우상숭배자가 이 섬김을 통해 자신들의 만족(?)을 누리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아픔이 있다. 단지 사회 봉사적인 차원이나 우상 숭배자들의 손에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영혼이 맡겨진다면 이 세상에서도 소망없는 고통과 괴로움으로 고생하다가 마지막에도 그들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중에 우리가 주님 앞에서 셈을 하며 설 때 무엇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 호스피스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혼 구원에 있어야 한다. 이 사역은 환자 한 영혼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섬기는 사역이다. 전도할 대상의 단위가 가족 단위로 바뀌기에 그 열매가 풍성하며,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으로 섬기기에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큰 확신을 갖고 담대하게 다가갈 수 있다. 교회에서 훈련된 많은 자원을 재배치하고, 교회의 봉사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지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닌, 섬기며 봉사하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로써의 섬김의 삶을 실천할 수 있기에 이 호스피스 사역은 모든 교회가 꼭 책임져야 될 사역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호스피스는 하나의 보살피는 공동체요, 예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실천하는 훈련이다. 말기(암)환자로 마지막에 겪는 죽음에 이르는 단계로 부정과 분노와 협상과 우울과 수용의 단계를 일반적으로 거치는데, 이런 과정에서 낙심하고 낙담하며 고통받는 자들에게 공포가 아니라 평안과 소망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생각(예레미야 29장 11절)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합당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아름다운 크리스챤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들이 많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고, 언제나 예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원한다. 2. 사역을 통한 열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사역을 계속해 오면서 수천 명의 열매를 보며 우리의 고백은 언제나 “주님, 우리를 사용하심을 감사합니다. 항상 영광 받으시옵소서!”라는 것이었다. 92년 여름, 교회에 있는 한 자매로부터 육종암에 걸린 한 형제를 소개받았다. 이 형제는 예수님이나 교회에 대해선 정말 무지한 형제였고, 가족 9식구들은 모두가 불교에 열심을 다했고 목이나 손에 표식이 있는 금 목거리와 금 반지를 걸고, 끼고 있었다. 우리가 돌보던 형제는 결혼을 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후 다리에 종기가 났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실은 그 종기가 육종암의 시작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무료하게 투병 중이던 형제를 찾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 주며 고통과 염려를 함께 나누었다. 낙심하고 있을 때 위로할 말로 소망을 불어 넣어 주기를 두 달, 형제는 우리에게 자신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자신은 죽고 싶지 않고, 또 얼마나 무섭고 떨리는지 너무 너무 고통스럽다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괴로워했다. 형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알고 있는 우리는 그때 형제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 예수님과 함께 투병할 수 있기를 권했다. 그때 형제는 암이 다리뼈로 전이된 관계로 자신의 다리 근육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버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몸 따로, 부러진 다리 따로 움직이는 데서 오는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기 시작했다. 고통이 올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소망의 투병을 시작하더니 평안을 찾아 갔다. 우리의 이런 섬김을 처음에는 냉정히 거절하던 가족들도 차츰 마음을 열고 우리를 반겨 주었고, 환자가 평안해 하는 것을 보기 시작하더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를 청하게 되었다. 자신의 동생이 죽는다면 동생의 부인을 죽여 버리겠다고 폭언하던 형제도, 목과 손에 주렁 주렁 매단 저들의 표식도 아무런 효험이 없음을 알게 되고, 우리가 주선한 병실에서의 결혼 2주년 파티(?)를 치르던 날 환자는 자진하여 부모님들과 형제들 앞에서 떨리는 손을 들어 친필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나중에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하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장례를 치르며 가족들은 “우리 승재에게 어떻게 이런 평안함이 있었겠는가!” 하고 놀라와 했다. 한 사람이 밀알이 되어 떠나니 9명의 열매가 열리게 됨을 보며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돌렸다. 97년 봄. 복합적인 암을 갖고 있는 13세 소녀가 어느 병원을 통해 연결이 되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아버진 경상도 어느 산골에서 숯을 굽고, 어머니는 시내에서 구두를 닦아서 딸의 치료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아이는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면 혼자 집을 지키며 어머니가 아침 일찍 일을 나가며 차려놓은 밥상을 자신이 챙겨 먹어야 했다. 그러나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할 때가 많았기에 아이는 차려 놓은 음식에 손을 대지도 못하고 마는 때가 부지기수였다. 성남의 골목 골목을 찾아 들어간 우리를 보고 자신의 병명을 주욱 꿰며 말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늙은 어린애를 보는 심정은 너무나 아팠다. 우리 봉사자들이 요일을 정하고 짝을 지어 섬기길 시작했을 때 그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쉴 사이 없이 조잘거리는 그 많은 말들을 지금껏 어떻게 참아 왔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자기도 완치가 되면 우리처럼 자신이 다니는 병원의 어린 환자들에게 가서 봉사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루 하루 아이가 바뀌어 가는 것을 보던 아이의 어머니가 하루는 일을 나가지 않고 기다리고 앉아 우리를 맞이한다.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변할 수 있게 했는지 너무도 궁금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 어머니에게 예수님을 증거했다. 그후 그 어머니도 바뀌어갔다. 이혼하고 난 뒤 너무도 가난한 구두닦는 어미로서 병들어 고통하는 13세의 딸을 놓아두고 벌였던 자신의 투쟁을 눈물로 한탄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딸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하다며 오히려 우리를 대접하려고 했다. 우리는 대접을 절대 사양하고 6개월 가까이 그를 섬겼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 평안한 가운데 엄마에게 “먼저 갈게. 나중에 와요!” 헐떡거리며 유언하던 소라. 소라가 엄마의 손에 쥐어주며 나에게 전해 달라던 지갑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자기가 치료되면 병원에 있는 다른 아이들을 위해 쓸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언제부터 모았던지 구김 하나없는 이십 육만 오천 원의 헌금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이 헌금을 비슷하게 고통받고 있는 다른 어린 자매의 병원비로 드렸다. 소라를 화장하던 날 소라는 장례에 참석한 아버지에게도 그 옛날에 어린 시절 동네 교회에 나갔던 것을 기억나게 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함으로 세상에서는 떨어져 살았지만 이젠 함께 할 날을 소망가운데 기다리게 하는 마지막 사역을 다 하였다. 호스피스 사역은 수많은 열매를 통해서 증거하기를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게도 하시고, 회복하게도 하시고, 또 소망과 평안을 주셔서 우리의 눈물을 위로와 감사로 바꾸어 주셨다. 3. 사랑의 교회 호스피스 사역 사랑의 교회 호스피스는 1992년 2월 1일 자원봉사자 6명으로 시작하여 현재 교역자 1명, 남자 15명, 여자 120명이 자원 봉사자로서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모임은 여자는 목요일 10:00 - 13:00, 남자는 주일 09:00 - 10:00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환자와 봉사자들을 위한 중보기도와 봉사활동 보고를 나누고, 봉사자의 영성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소정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 교육은 매월 자체 교육 (상담, 치유, 전도, 건강 생활 등)과 의무 교육인 13-15주간의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호스피스 자원봉사 시간은 팀을 이루어 주 1-2회 지정된 환자 방문과 환자 임종, 장례 등을 도우며, 유가족들을 위한 사후 관리를 팀을 구성하여 하고 있다. 유가족 사후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 중에 어린이들의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한 치유켐프를 겨울 방학을 통해 3박4일 일정으로 아동상담이나, 아동 심리학자, 소아 정신과, 치유를 위한 레크레이션 등의 다양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켐프를 진행한다. 선발한 다섯 곳의 병원을 통해 소망을 잃어버린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전도하며 섬긴다. 우리는 매주 평균 50-60명(월 200-240명)의 환자를 섬기며, 섬기는 환자 중 소천하는 비율은 10% 이상이 된다. 봉사자가 봉사하는 데 원활하도록 매월 4-5만원(환자를 위한 간식 등 구입비)을 보조하며,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약간의 병원비를 보조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는 예산을 허락하고 있다. 또 우리 호스피스는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와 협력 사역을 구축하고 있어 장기이식과 기증을 위해 함께 사역한다.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매년 1-2회 호스피스 주관 전 교인 헌혈운동을 실시하여 많은 성도의 헌혈 참여 열매를 갖고 있으며, 급한 성분 헌혈을 위해서도 교회 청년들의 헌신적인 참여를 받고 있다. 호스피스에 동참하는 한국교회의 교역자들의 모임인 ‘한국 호스피스 교역자 협의회’를 통해 우리의 섬김의 대상인 연약한 환자들이 어디에서나 계속적인 섬김을 받을 수 있도록 협력하며, 다른 호스피스 단체들과도 긴밀한 협력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우리 호스피스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매년 12월 26일은 호스피스 가족의 밤으로 호스피스 봉사자, 대상자, 홀로 된 가정, 그리고 봉사자 가정과 유관 단체에게 그해 보고회와 함께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46. 병원 호스피스 선교의 새 장을 열다 환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는 우리에게 가장 간절한 소원이 있다. 원치 않는 질병의 고통 속에서 낙심하는 자들은 자신만이 재앙을 받은 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투병 생활이 전부가 아니라 그 재앙같은 현실 앞에서도 소망을 갖고 평안 가운데 투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 주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역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지 기도하기 시작했다. 1996년 가을, 삼성 제일 의료원에 문을 두드리며 어떻게든 그곳에서 투병하는 환자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을까를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 열매는 97년 3월 10일, 교회에서 자원한 43명의 봉사자와 함께 삼성 제일 의료원의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열리기 시작하였다. 병원에서도 여러 가지로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작은 인원이 시작했지만 자원 봉사 실적 건수가 8,000여 건을 넘어가면서 많은 환자들의 마음에도 위로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고통과 낙심의 장소는 소망과 평안을 주는 자리로 바뀌어 질 수 있었다. 이런 사역들 속에서, 53세 된 위암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 환자가 우리에게 소개될 때 그에게 주어진 생명의 연한은 2개월 정도였다. 그분은 말기 환자가 다 그렇듯이 너무나 큰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코에서는 위액이 계속 호스를 타고 흘러 나와 매달아놓은 병에 채워지고, 배는 광고를 위해 달아맨 큰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마음대로 몸을 뒤척일 수도 없었다. 장은 꽉 막혀서 끊어질 듯 아팠지만 변을 볼 수도 없었으며, 목에는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통증을 줄여 보고자 진통제의 줄을 붙이고 있었다. 몸의 구석 구석에 붙어 있는 5개의 호스는 남아 있는 생명을 고통의 “끄으끙” 대는 외마디의 신음 속에서 이어 주고 있었다. 이 신음 소리가 전부일 수밖에 없는 환자에게 우리는 평안을 위해 그리고 소망을 위해 예수님의 사랑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은 2,000여 년 전에 이 땅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절망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많은 채찍과 조롱과 손과 발목의 생살에 대못을 박히시며 갖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피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내어 주셨으며, 이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약속하시고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셔서 “네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망을 그 환자에게 안겨 드렸다. 몇날이 지나지 않아 환자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다. 신음소리가 전부이던 그 분의 입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불안하고 두려웠던 하루 하루의 삶이 이제는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소망을 위해 간절히 간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부풀었던 배는 푹 꺼져서 운동을 위해 복도를 거니는 그 분이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더라면 모를 정도로 외모의 변화가 왔다. 그분의 소망대로 병상 세례를 받고 오늘의 자신의 고통이 재앙만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이제 이 분들의 가족들은 주일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왜냐하면 그날은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불안과 고통의 신음이 평안과 소망으로 바뀌는 날이고 또 환자인 家長이 함께 교회를 가고 싶어하는 날이기에... 또 한 자매를 만났다. 32세 된 주부였다. 그녀는 아이가 없어 노심초사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몸에 약간의 이상을 느껴 병원에 찾아갔더니 자궁암이란 진단이 나왔다. 혹시나 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내린 선고는 자궁을 적출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예고없이 들이닥친 이 재앙 앞에서 자매는 병원 복도 끝에 앉아 친정 어머니와 함께 “꺼이 꺼이” 서럽게 울었다. 통곡하는 모녀를 껴안아 위로하기 위해 예수님의 사랑의 수혈을 시작했다. 모녀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이 지셨을 때는 고통이었지만 부활하신 뒤로는 영광이 되신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다. 모녀는 우리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 속에 예수님이 주신 승리의 소망을 간구했다. 오늘도 우리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연약한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며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오히려 평안과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헌신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고백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음에 행복을 느끼며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며 승리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 있는 당신을 지금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여 오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의 품안에는 평안과 소망이 있습니다!” 47. 고통에는 뜻이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어김없이 분홍색 가운을 입은 6명의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들이 주로 말기 암환자나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든 또 가족이 없는 환우들의 병상을 찾아 위로와 섬김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1996년 가을부터 우리 호스피스는 병원 사회복지과 협력하에 영동 세브란스에 입원해 있는 환우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처방을 들고 찾기 시작하여 매주 10-15명의 환우들을 섬기며 오늘까지 왔다. 항상 우리는 위로하며 섬김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봉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의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의 발걸음이 정말로 주님 마음에 흡족한 기쁨이 되었을까 하고 자문해 본다. 오늘은 특별히 그동안 그렇게 낙심하고 고통스러워 하던 J씨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 우리를 반기며 기도해주고 찬송을 불러 주길 요청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저만치 피어난 저녁 노을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감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 올라옴을 느낀다. 우리가 섬기기를 시작했을 때 김 미정(가명)이란 자매가 있었다. 그 병실에 들어서면 이 자매의 고통 속에 끊어질 것 같은 아픔의 표현이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자매는 언제나 두려움에 떨었고 허무 속에 자신의 삶을 비관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32세 된 자매, 병명은 위암. 그러나 전신에 퍼져 버린 암세포로 인해 이 자매에게는 소망이 없었다. 온 식구가 자매를 간병했기에 자매의 공포와 고통이 온 식구들의 낙망과 낙심이 되었다. 자매를 만나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 주었다. 말기 암의 두려움을 들어 주고 허무한 삶의 이야기를 정성을 다해 들어 주었다. 그리고 자매의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길 수 있도록 “고통에는 뜻이 있다(옥한흠 목사 지음)”란 책을 선물하고 예수님의 사랑의 위로를 드렸을 때 몇날이 못되어 자매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매는 서서히 자신의 남은 삶을 주님과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매는 지금의 고통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를 사랑하셔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의 중한 고통을 아무런 거부하심도 없이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평안이 있을찌어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확신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자매는 날마다 변했다. 자매는 언제나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살았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자매는 주님과 진지한 사랑을 나누다가 사랑하는 주님 품에 안겼다. 평안과 소망으로 안겼을 때 온 식구들도 같은 평안과 소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자매를 아픔 중에도 감사함으로 보낼 수가 있었다. 또 한 사람. 57세의 장석봉(가명)씨가 계신다. 예민하게 보이고, 지성적으로 보이는 분이다. 얼마나 과묵하신지 우리가 병실에 드나든지가 꽤 되었지만 말씀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기도하고 용기를 내어 “어떻게 편찮으세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도울 것이 없을까요?” 어렵게 말씀을 붙였을 때 대답하지 않을 것 같던 그분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약학대학을 다닌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꿈을 키워가고 있을 때, 결핵에 걸렸다. 그 결핵균은 척추를 손상시켰고, 그때부터 하반신 마비라는 엄청난 고통 속에 그를 집어 넣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돌봐 주시던 홀어머니가 병이 나셨다. 8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 온 어머니를 하반신이 마비된 자신이 간병하게 된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 간병하던 중 이번에는 자신의 척추가 주저 앉아버려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어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 이런 고통이 덮치는지 정말로 죽고 싶다고 한탄을 했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 외로움과 고통과 분노에 싸여 있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난 다음 이 분에게도 “고통에는 뜻이 있다”는 책을 선물했다. 거듭하여 읽은 결과 자신을 다시 살게 하는 용기와 소망을 이 책 속에서 찾았다고 고백했다. 그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고통과 분노만이 전부가 아니라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마냥 밝은 얼굴로 감사를 표현하였다. 소아병동 655호실. 백혈병에 걸린 6명의 어린이들이 모두가 항암제의 독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어떤 아이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있지만 머리칼이 한 올도 없는 민둥 머리이다. 병원생활의 무료함 때문인지 서로 이야기하며 떠들고 있었다. 그 중에 키가 제법 큰, 종이처럼 창백한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애처럽고 안쓰러운 마음에 슬며시 다가가 가만히 손을 잡아 주었더니 휙 손을 무섭게도 뿌리치며 너무도 귀찮다는 표정이다. 사춘기에 겪는 투병생활은 몹시 힘든 것 같아 더욱 관심이 쏠렸다. 우리는 그 아이를 위해 몇 주간을 찾아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로 관심을 나타내 보였다. 그 아이는 자신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교회 주일학교를 다녔다며 어느날 말문을 열었다. 먹으면 유난히 토해대니 침대 머리맡에 대야를 준비해 놓고 지내는 아이들, 하루에도 몇번씩 사지(死地)를 넘나들며 중환자실을 드나드는 이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권능이 임하여서 모두가 완쾌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모든 고통에는 뜻이 있었다”는 저들의 고백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우리 호스피스는 오늘도 저들을 섬기며 위로하고 저들의 고통에 어떤 뜻이 숨어 있을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한다. 호스피스와 환자.(호스피스 가족의 밤 희곡). 환자(유종혁):(망연자실 앉아서 혼자 센티해져서 독백을 한다.) 분명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어.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어! 내가 지금껏 소화가 안된 적도 체해 본 적도 없었던 사람이라구. 감기 한번 걸려서 몸져 누워 본적도 없고, 몸살 한번 알아 본적도 없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 이제 겨우, 겨우 집칸이나 마련해서 자식새끼들하고 좀 발뻣고 등 붓치고 살려했는데... (갑자기 황당해 하며, 낙심하며 독을 품은 듯 흥분된 소리로 독백을 한다.) 뭐? 내가 간암이라고, 순전히 돌팔이 새끼들! 알긴 그 새끼들이 뭘 알아! 내가 아직도 얼마나 건강한데. 분명이 그놈의 돌팔이 새끼들이 오진했을 꺼야! 내가 내일 다른 병원에 들려 볼꺼야! 만일 거기서 오진으로 판명이 나면 모두 그 돌팔이 새끼들 다 고발해 버리고 말꺼야! (장면이 바뀌고, 갑자기 쎈티해져서 낮은 목소리로.) 아!. 왜 이렇게 모두다 나를 버리려는 걸까? 내가 이제좀 마음 먹고 잘 살아 보고자 했는데 나는 왜 모두의 짐이되었는가? (갑자기 자기가 왜 이렇게 약해지나 싶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두 주먹을 불끈쥐고) 아냐! 내가 지금 환자라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 내일 다른 병원을 찿아가면 분명이 오진였다고 말할꺼야! (갑자기 소리를 천둥처럼 지르며 결단이라도 한 듯이) 그래! 그래 나는 환자가 아냐! 그래 잠을 자자! 잠을 자야해, 깊이 잠을 자고 나면 훨씬 나을 꺼야! ...............................................................................(계속 몸을 이리 저리로 뒤척인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몸부림 치면서 절망에 가까운 소리로) 자자! 제발 잠아 좀 오가라, 나는 잠을 자야 한단 말이야! (이렇게 궁상 떨지 말자는 식으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중얼 거린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신념의 사람였는데...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큰 고비를 싸우고 싸우며 살아 왔는데, 그때도 나는 해 냈었잖아! (갑자기 목소리가 들떠서) 그래, 나는 얼마나 잘 해왔는 데! 나는 할 수 있을꺼야!. (그러나 생각이 난 듯) 그렇지만 나는 간암 이래잖아, 간암. 그것도 3개월 빢에 살 수 없는 간암 말기라고하잖아! 내가 곧 죽을 것인 데, 무슨 수가 있다는 말이야!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잘 해왔지 않아! 그때 교통사고 때 내 차가 완전히 박살 났을 때도 그랬고, 언젠가 해수욕장에서 진탕 술을 먹고 취에서 바닷가에서 잠을 자다가 밀물 때 파도에 휩쓸려 갔을 때도 그랬고...... (진지하게) 가만있어 봐, 그 때마다 사람들이 나에게 말했었지. 저 사람은 하나님이 살려 주었다고, 정말 하나님이 있을까? 하님이라는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몰라, 그때는 내가 분명히 알지는 못했지만 신이 있어 나를 도와 주었을 지도 몰라!. 그럼 이번에도 지금껏 나를 지켜주었던 하나님? 신이 있어 날 지켜 줄지도 몰라! (너무나 간절한 목소리로)그래! 그래! 그는 나를 분명히 도와 줄꺼야! 그는 나를 나를 도와 주어야만 해!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지 않아! 내가 잘 모르는 신이시여! 아니 하나님 이시여 나를 좀 살려 주세요. 나는 아직 죽기는 너무나 젊잖아요! 내 나이 겨우 41살 빢에 되지 않했짢아요!(울음의 절규) (한참을 울고 나더니)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이 심해지는지 모르겠네... 혹시, 뭔가 정말 잘 못 된 것이? (두려움에 쌓인 목소리로) 가만, (명치 끝을 지긋이 누르면서) 구역질이 좀 심해지고, 소화가 좀 안되는 것 같은 때가 언제였지............ 아냐 !, 그럴 리가 없어! (크게 허풍스럽게...) 내가 간암 환자 일리는 없어! 나는 암 환자가 아니라고......!. (그러면서 무언지 모를 초조를 느낀다.) 왜 이렇게 아침이 더-디오는-거지........................!. ......................................................(자면이 바뀌며 전율하며, 분노와 적대감을 갖고) 도대체 내가 왜 하필, 내가 하필 간암에 걸려야 하는거야, 누가 말좀해봐 응...! 여보,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거야, 여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당신이 알잖아!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고 이제 겨우 살 만하잖아! 그런데 내가, 내가 간암이래. 암이래... 이제 나는 틀렸어, 틀렸다고! (주변의 모든 것에 증오라도 하듯) 내가 암이래, 내가 암이래! 내가...... (혼자 독백을 하고 쓰러진다.) 부인: 여보!. 그러지 말고 치료를 받읍시다. 한번만 치료를 해봐요...예? (간곡히 애가 타서 애원하시피 매어 달린다.) 필요없어! 어차피 죽을 놈이 무슨 치료야! (무엇인가 잡히기라도 하면 집어 던질 것 같은 기세로..) 이제 나는 끝난거야! 끝난거라구...! (일어나 분풀이라도 하 듯 장식장에 진열 되어 있는 양주병을 정신 없이 끄르더니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 병을 나발을 불 양이다.) (부인 이 깜짝 놀라) 여봇! 지금 뭐하는거요! 죽으면서도 술병을 들어요!( 확 술병을 뺏어 버린다) 나두어, 놔 두란 말이야! (남편은 술병을 빼앗기려 하지만 결국 부인이 술병을 빼앗는다) 그럼 나보다 어떻게 하란 말이야!(소리를 지르며) 어떻게 하라고! (빈정거리는 투로) 그래 나를 도와 주었던 하나님이 있었어! 뭐! 하나님이 당신을 돌\와 줄 것이라고? 어디 있어! 어디 있어 나를 도와 준단 말이야 응! 죽었어! 죽었어, 죽은거야... 나처럼 점점 죽어가서 죽은 거라고. (크게 공격적으로 소리 소리지른다.) 죽었어 !. (혼자 구석에 울고 있는 부인을 처다보는 환자의 눈에는 이글대는 분노가 있는 듯 경멸 스럽게 쳐다보며 빈정 거린다. ) 야! 너는 맨날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해 놓구선 그래 어디 살아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네가 불쌍해서라도 내가 왜 암이 걸리냐! 하나님 좋아하시내...(벌써 그의 손에는 언제 가져왔는지 술병이 들려있다._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지금 나타 내보라고 해, 그래서 내가 왜 암이 걸렸는지 좀 알아보자 엉!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나를 고쳐 보라고 해, 그래야 하나님 아니냐! 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 그래서 우리를 죽지 않고 영원히 살도록해...(웃긴다는 빈정 거림이다.) 그래 그냥 죽는 것이지, 하나님이란 존재는 오히려 내게는 재앙을 주는 자 일 뿐이야! ( 부인은 몸 둘바를 몰라하며) 부인: 주님!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소리 죽여 흐느낀다.) (부인은 분명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 주실 것을 독백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아버지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 믿음의 위로로 자신에게 이길 힘을 주시길 고백한다.) (그녀는 안정을 찿아가며 전화를 들고 교구 담당 교역자에게 상담을 한다. 교구 담당 목사는 호스피스에 연락을 해서 상황을 보고해 준다.) (사랑의 교회 호스피스 담당 목사는 환자의 가정에 전화를 하여 보호자와 잠시 상황을 이야기하며, 보호자가 도움을 요청하자 곧 심방을 약속한다.) ................................................................................................... (방안에 들어서자 멍하니 들어 누운 채 허공을 무의미 하게 쳐다보는 환자가 있다.) (잠시 묵상 기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호스피스 담당 목사: 유 종혁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랑의 교회에있는 박 목사입니다. . (살며시 손을 잡고) 그래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제일 불편하신 곳이 어디신가요? 제가 좀 도와 드릴 일이 없을까요? 저희는 유 선생님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래요! 유종혁: 그래 나를 낫게 해 주겠수!. 일없어요.( 돌아 누워빈다) 호스피스 담당 목사:물론 낫게도 할 수 있구요, 그렇치 못할 수도 있지요! 환자: (흥미가 있다는 태도로) 어떻게 의사도 안 된다는 데 목사님이 낫게 할 수 있어요? 목사: 어때요! 유 선생님은 지금 생각에는 하나님이 재앙을 주셨다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셔요. 하나님은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장래 소망을 주시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예레미아 29:11)말씀하셔요. 그리고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래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2가지를 말씀하시는 데 그 첫째는 너는 내게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대요. 하나님이 들으시면 재앙이 변해 평안과 장래 소망을 주신대요. 부르짖는 다는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에요. 신뢰하기에 자기의 문제를 하님께 전폭으로 맡기고 하나님은 나에게 평안을 주시고, 소망을 이루시는 분이기에 내가 이 믿음을 갑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대요. 두번째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찿고 찿으라 말씀하셔요. 그러면 하나님이 만나시고 하나님을 만나시면 재앙같은 현실이 변하여 평안과 소망을 주신대요. 전심으로 찿고, 찿으라는 말씀은 내 마음에 낙심과 염려와 두려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싸우고 또 싸워 이기면 우리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던 악한 방해꾼을 물리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만나시길 원하고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마난기만 하면 우리의 재앙같은 현실이 변해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소망으로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믿음을 말 할 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짐 못하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고 말씀하셔요. 또 이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게 하고 이 믿음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라 말씀 했어요. 하나님은 지금 유선생님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소망을 주시길 원하셔요.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내가 고통 당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이 나 대신 십자가에서 고난과 고통과 죽음을 맞게 하시고 내가 받을 죄악의 징계와 고난과 죽음을 다 해결하셨고, 삼일만에 부할하셔서 우리에게 평안이 있기를 축복하셨어요. 이 예수님을 믿으면 오늘 우리 주님은 유 선생님을 만나시고 분명 평안을 주시고, 소망을 주실 것을 분명히 믿어요. 오늘 유선생님의 고난과 고통도, 연약함도 질고도 질병도 예수님이 고난과 고통받으심으로 평화를 누리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을 위해 채찍에 맞음으로 형제가 나음을 입었도다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우리의 모든 허물에서 깨끗함을 주셨으니 어둠에 대해 두려울게 없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씀하시길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했으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모든 약속을 다 이룩하셨씀을 믿을 수있고 우리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다 맡길 수 있씀니다. 이제 유선생님의 모든 질병과 고통에서도 부활의 권세를 갖고 평강이 있을지어다!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위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어떤 증거와 실상을 증거로 갖고 있느냐가 참 중요해요. 예수님을 나의 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을 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 가시면서 우리게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성령 하나님을 유선생님 안에 거하시게 하실 것을 믿으십시요. 이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오늘도 우리를 도우실 뿐아니라 지키시는 분이요 모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분 이십니다. 유선생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 예수님과 함께 투병해 나갑시다. 내가 혼자는 감당 할 수 없지만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만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님을 나의 투병의 동반자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환자: 나에게도 소망이 있을까요? 정말로 나에게도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이 있을까요? 담당: 분명히 주님은 유선생님을 사랑하시기에 혼자 두지 않으셔요. 앞으로 원하시면 저희 호스피스에서 유선생님에게 예수님 안에서 투병하시도록 섬기기 위해서 일 주일에 최소 한번 이상 방문하실 것입니다. 환자: (흥분하며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투병하기로 작정합니다.) 호스피스 회의: 호스피스 담당:이제 기도회와 환자 소개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소개된 간암인 유종혁씨를 누가 섬기겠습니까? 예, 유권사님이 맡으시겠다구요. 성도 같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유권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랑의 교회 호스피스에서 봉사하는 봉사자 유권사에요. 유선생님이세요. 말씀을 듣기보다 훨씬 미남이시군요. 그래 지금 기분은 어때요? 우린 종씨네요! 우리 함께 하님께 기도하면서 열심히 투병해봅시다. 환자: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죄를 지은 것 같아요. 이제 열심히 투병하겠어요. 물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소망을 갖고 투병하겠습니다. 그래요 잘 하면 치료를 받는 것이고, 잘못 된다 해도 천국을 가는 것인데... 저를 도와 주십시오? 이제 참 평안을 누리고 싶습니다. 저도 치료만 돠면 여러분들 처럼 호스피스로 섬기거나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겠습니다. (환자는 그 후 5개월의 호스피스의 섬김과 지지와 가족들의 특별한 지지속에 천국을 향해 예정된 길을 떠났고 그 가족들은 호스피스에 속한 샬롬회를 통해 상실의 고통과 아픔을 추스려 가고 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새벽을 달려와 병실을 들어서니 3시간 후에 이뤄질 난소암 4차 수술로 언제나 우리를 위로하시던 자매님은 공포와 불안과 염려로 시선을 어디에 둘 곳을 찿지 못한다. 바로 옆 침대에선 어제밤 늦게 끝난 수술 후 고통과 통증이 외마디로 베어 나온다. 말씀을 들고 함께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며,마음 속 깊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소리를 듣는다. 얼마가 자났으랴 자매님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 오르고 자신감을 갖는다. 옆 침대 환자의 외마디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숨소리로 잦아들며 아멘 ! 한다. 함께간 호스피스 강도사님과 간절히 기도하고,자매님과 손가락을 걸고 서로 엄지 손가락 도장을 찍을 때 큰 안도의 한 숨을 쉬시며 “내 평생에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이제 치료의 마지막이 될 기회를 주심에 감사할 수 있다며 평안한 미소를 보여준다. 이번 기회로 완전한 치료가 이루어 질 것을 함께 소망하고 믿으며 돌아오는 마음 한 구석에 자꾸만 자꾸만 안쓰러움이 남는다. 왜 기약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어야 하지...? 자매님이 건너야 하는 저 고통과 불안의 터널이 얼마나 긴 것일까 ?. 환자들에게 있는 터널의 길이를 다 알 수만 있다면 좀 더 무엇인가를 더 도와줄 수 있을 텐데...... 오랫동안 이 사역을 감당할 것 같았는데 주님은 매인바 된 심령의 아픔을 주셔서 잠깐 이 사역을 놓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에 이 사역을 계속 하실 양 수봉강도사님에게 한가지, 한가지를 넘겨드리며 내가 갖었던 아픔과 고통을 해결 해주지도 못하는 안타까움 만은 전해 지지 않했으면 좋겠다. 지금껏 자신들의 가정생활을 희생해가며 너무도 헌신적으로 섬기던 남,녀 호스피스 여러분들을에게 무슨 단어를 나열하여 감사하고 칭찬 할 수있으랴! 다만 주님께 중보할 뿐이다. 언제나 섬김으로 갖는 기쁨이 더욱 충만하여 낙심된 자리의 형제, 자매를 계속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는 사명자들이길 소원한다. 아직도 병상에서 투병하고 계시는 내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어서 속히 일어나 모든 누워있던 자리를 털어 버리고 하늘 높이 감사와 감격의 찬송을 우리 주님 앞에서 부르기를 소원합니다. 자신들 원치 않했지만 홀로된 아픔을 돼새길 수도 없이 남은 한조각으로 자녀들을 돌보아야 되는 샬롬회 모든 가족들의 빈 공간에 주님의 풍성함이 “내 잔이 넘치 나이다 !.” 고백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사랑의 교회 모든 형제님, 자매님들에게 호스피스의 활동을 위해 많은 기도와 격려가 계속 되어지길 소원하며 글 줄을 닫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필요합니다. 여호아는 부족함이 없으시도다 여호아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93.6.1. 경희 의료원 중환자실 격리된 병상. 입에 굵은 호스를 물려 반창고로 고정시킨 후, 불가능한 호흡을 억지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온 몸에는 몇가닥의 링겔 주사약 호스가 형제의 믿음의 투병인양 팽팽하게 연결되어 한 방울 , 한 방울 형제의 혈관을 통하여 소망을 이어 주고있다. 나이: 22세, 이름:전 상국, 소속: 청년 2부, 병명:폐 결핵에 간이 너무 나빠 현재 치료 불가능 . 주일날 청년부 집회도중 교회 마당에서 각혈을 하여 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피가 호흡기로 들어가 절명. 설상가상 간 기능은 저하가 되어 투약을 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중환자실로 옮겨 강압 인공호흡을 시작, 중환자 실에서 강압적인 인공호흡으로 7일이상 넘긴 환자가 없었다는데... 호스피스에 연락이 온것은 병원에 입원한지 1주간이 지난 후 였다. 중환자실 격리방에 들어선 나는 너무도 가날프고 지쳐버린 그러면서도 어떤 힘을 갖고있는 형제를 만났다. 상국형제 형인 상출이 형제와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시편 23편을 갖고 말씀을 나누었고 상국이 형제는 시편 23편을 외우기위해 종이에 써서 침대옆에 세워 주길 원하였다. 2주마다 모이는 호스피스 모임 시간에 상국형제를 소개하였고, 누군가 이 청년을 섬길것을 말씀드릴 때 서로 돕겠다 하였으나 우선 두분 호스피스 민.최집사님을 연결하기로 결정하였다. 토요일 상국이 형제의 22살 생일날 다시 심방을 갔다. 격리된 병실에서 호스피스들과 두 형제와 생일 파티가 벌어졌고 비닐에 쌓인 장미와 십자가 선물도 주어졌다. 환자를 보면 가능한 눈물보다는 웃는 얼굴로 격려할 것을 잘알고 있는 우리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말씀을 나누면서, 기도를 하며 얼마나 모두들 울어 버렸는 지... 호스피스 집사님들은 모일때마다 형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민.최 호스피스 집사님은 자신들의 자녀인양 열심을 다 하여 섬기고, 애타하며 하나님이시여 우리 상국이를 살려 주십시오. 아직 너무도 젊습니다. 눈물의 몸부림들을치셨다. 청년 2부 교역자와 형제 자매들은 언제나 중환자실 앞에 여러명씩 짝을 지어 심방하고 기도하며 상국이를 살려주실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상국형제의 어려운 상황을 전해들은 집사님들중 몇 몇분은 기도해주시며, 물질로도 그의 부족한 병원비를 헌금해 주시므로 어려운 농부의 자녀인 그들에게 큰 힘도 주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총체적인 기도의 후원과 섬김과 상국형제에게 믿음을 주셔서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우리에게 엄청난 기쁨을 선물하셨다. 상국형제는 18일간의 강압적인 산소 호흡에서 X-RAY 사진에 나타나지도 않턴 그의 폐가 자가로 호흡을 할 수있게 되었고, 그 살벌한 중환자실에서 이제는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어 계속 투병중에 있습니다. 민집사의 고백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상국형제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부족함이 없으셨씀을 찬양합니다. 나의 힘이되신 여호아여! 나의 힘이...되신...여호아여...내가...주를...사랑...하나이다...여호아는...나의...반석이시요...나의...요새시요...나를...건지...시는...자요...나의...하나님...나의...산성...이시로다.(시편18:1,2) 93.2.12.영동 세브란스 병원, 막 수술을 끝내고 병실로 돌아와 마취에서 깨어날 때 이 집사님 첫 무의식의 고백, 끊어질듯 이어지는 암송 소리는 여리지만 당당한 찬송이었다. 2년 반 전에 처음 수술했던 유방암. 90년 6월 이 집사님은 가슴에 이상한 통증을 느끼고 혹시나하고 체크를 받았는데 다른 사람에게나 이야기로 듣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아직껏 감기 한번 앓아보지 않던 내가... “유방암”이라니... 서둘러 수술을 하고 나니 엄습해오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순장님등 주변 믿음의 식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안정을 찿은 무렵인 92년 4월 수술한 부위에 다시 이상의 징조를 느꼈다. 모든것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에 빠져들게 되었을때 이 집사님은 호스피스팀에 연결이 되었다.한 주간에 2-3회를 심방하며 낙망과 낙심의 수렁에서탈출할 수 있기를 위해, 말씀을 외우고 적용하는 숙제(?)를 드렸다. 집사님과 만남은 계속 되어 갔고 숙제 아닌 숙제도 점점 흥미롭게 받아 들이셨다. 어느날인가 부터 집사님이 하얀종이에 예쁜 붓글씨 체로 말씀을 적어서 냉장고에,벽에,장식장에 붙여놓고 외우고 계심을 확인하고 얼마나 우리 하나님께 감사 했는지 모른다.이미 능력의 말씀에 포로가 된 이 집사님을 위해 주님은 다음 단계를 준비 하고 계셨다.우리 하나님은 집사님을 우울한 안방에서 감사가 있는 환경으로 바꾸기로 준비하셨다. 이때 가정에선 남편께서 미뤄온 세례도 받게되었고, 마침 우물가 선교부에서 용인에 있는 경기 여자 기술원에 전도를 위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고, 봉사를 찿고있던 이 집사님을 위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응답으로 믿고 계획을 세울때 집사님을 위로하기 위해 몇 몇 집사님들이 동행을 해주셨는데, 이 동행한 모든 분은 지금까지 합력하여 한 팀이 되어 감사와 기쁨 속에서 그곳에 수용되어져 있는 자매들에게 찬양과 성경 공부의 리더로써 섬기고 있다. 찬양과 공부에 사용되는 챠-트를 집사님이 준비 하시며, 찬양과 공부를 하는 어린 자매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고 감사하고 있다. 현재 이집사님은 감사하며,사랑하고 섬길 수 있도록 집사님을 붙드시는 놀라운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며 투병하고 계신다.비록 지금껏 완치 되지 못하여 재 수술을 받고 회복중에 계시지만 우린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고 자신을 구원하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질고의 몸을 갖고도섬길 수있는 집사님, 이번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날 때 집사님의 찬송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시므로 집사님이 온전히 치료해 주실 것을 우리 호스피스 팀은 믿고, 섬기고, 간구할 것입니다. 화이팅 !집사님. 더욱 감사하시고 , 더욱 믿음을 갖고 찬송하며 승전가를 준비 합시다. 94.4.14.오후 6시 57분 신촌 세브란스 107-1039호에서 소천. 신장을 드리기 위해 기도해 주세요 I) 95년 1월 6일.아침 7시 30분. 수술실에 침대와 함께 실려 들어 가시는 하 경자 집사님을 붙들고 간곡히 기도하였다. 수술할 때 모든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성공적이길 위해, 그리고 쉽게 마취에서 깨어나길위해......... 아내를 침대에 누인 채 수술실로 밀고 들어간 한 석희 집사님은 이내 수술실의 간호사에게 쫒겨 보호자 대기실로 쫒겨 나오신다. 한 집사님은 앉으시자 마자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안고 어깨를 들먹이며 눈물을 쏟아 놓으신다. “차라리 내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이 백번, 천번 낫겠습니다....... 주머니에 들은 것 이라야 두개중에 하나를 쉽게 꺼내 주지요......“ 5분 정도가 지났다. 또하나의 침대가 수술실로 황급히 전 자매를 실고서 사라진다. 전 자매나 하 집사님에겐 이 아침이 너무도 큰 의미를 갖고있는 시간이리라 !. 지금가지 6개월 이상을 끌어온 우리 모두의 기도의 결론이 나는 시간이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자매에게 호스피스 봉사자로 심방한 인연으로 아무 조건없이 신장을 기증한다. 처음 호스피스 기도회에서 신장 기증의사를 밝히고 기도할 때 부터 기도의 패는 두 패로 갈리어 졌다. 전 미다자매를 생각하면 꼭 신장을 기증해 주어야만 한주간에 2번에서 3번씩하는 투석을 끝낼 수 있겠고, 하 경자집사님을 생각하면 9번 10번 반복되는 검사의 여러 고통과 수술해야 하는 고통등을 생각하니 잘 맞지를 않기를 ... 그러나 하나님은 하 집사님의 모든 신장의 조건과 전 자매의 신장의 조건을 하나도 틀리게 하시지 않고, 이 아침에 5시간여의 수술로 전 자매에게 새로운 생명의 경이를 누리게하셨다. “내게 10개의 신장이 있다면 더 많은 환자에게 나누어 줄텐데 2개밖에 없어서 한 사람에게만 줄 수 있음이 아쉽습니다.“라고 말씀하는 하집사를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시 한번 묵상하며 바라본다. II) 62세의 이 교수님은 조상 어른이 이 율곡선생님이시다. 이 교수님에게 예수님이란 4대 성인 중의 한 분일 뿐 그 이상은 용납될 수 없다. 더군다나 신앙적으로 유교의 전통을 사수해야 하는 집안의 대 종손의 위치를 지킬 변론가였다. 이 교수님은 당대 최고 학교의 현직에 계시면서 자재도 같은 학교 교수로 봉직하는 소문난 엘리트 가정이다. 당뇨를 갖고 계시던 교수님에게 오른쪽 발에 어느때 부터인지 이상이 왔다. 워낙 정열적이고 건강하셨던 분이기에 교수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으나 자꾸만 심한 통증에 시달린 나머지 체크를 위한 진찰에 너무나 큰 충격의 결과를 듣게 되셨다. “골수암” 진전은 너무나 빨랐다.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되었다. 수술날을 받아논 교수님에게 하나님은 조용히 다가겨서 그분의 마음에 평강을 심으시기로 역사하셨다. 친척 중 한분이 교수님의 귀에 골고다에서 생살에 못질 당하시던 예수님을 전하여 주셨다. 절단한 다리에서 오는 통증에 시달리면서 기도해 줄 것을 간청하시며 간증하시길 “내 다리를 자를 때,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며 참으시던 고통을 생각했더니 나의 통증은 아무것도 아나더라구요. 그리고 평강이 임하더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십자가를 붙들고 있습니다.“시며 손에 쥐신 십자가를 보이신다. 교수님을 심방할 때마다 이사야서 53:4-5을 되새기며 연한 순 같고, 고운 모양도 없고,풍체도 없으신 그 분이 간고를 많이 겪으셨고,질고를 아시기에 교수님을 찿으셨으니 다시 한번 예수님의 십자가의 권능이 교수님과 모든 환자들에게 나타나시기를 기도한다. 무의식 속에서의 눈물 정 모형제, 30세.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움찔,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야위어 휘어져 버린 팔과 다리. 가래를 빼내기 위해 수술해 놓은 목에서 계속적으로 들리는 파열음. 10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뼈만 앙상한 몸. 눈은 떠 있으나 전혀 초점이 없고, 입은 벌려져 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며, 교통사고로 인해 오른쪽의 손상된 뇌로 머리뼈를 수술해 움푹 꺼져버린 머리. 코에 길게 늘어져 있는 호스만이 오직 형제에게 음식물을 투입시켜 주는 생명줄이었다. 이 형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했다. 왜 하나님께선 이 형제를 우리에게 연결시켜 주셨을까? 이 형제의 부모는 이미 자신의 아들을 포기해 버린 상태였다. 차라리 쉽게 죽어 주지 않는 아들을 보지 않기 위해 처음에는 기대로, 다음엔 방치하길 1년 이상이나 중환자실에 내어 놓았겠는가. 그러다가 더 이상 병원비를 감당키 어려워 퇴원시켜 버렸다. 퇴원 후 환자를 간병하는 몫은 결혼한 지 2년도 안된 부인과 겨우 한 살도 안된 어린 딸에게 돌아온 셈이었다. 두 분의 호스피스 봉사자가 이 형제를 섬기겠다고 자원을 하였고 우리도 이 형제를 섬기기로 작정했다. 한 형제를 섬기므로 상처받고 깨진 형제의 가정을 구원할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형제에게 처음 섬기며 복음을 전하던 날 아무것도 알지 못하리라는 우리의 추측은 형제의 눈물로써 깨어져 버렸다. 눈을 깜박거려서 복음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응답을 줄 때 우리는 모두 흥분했고, 우리의 기도와 맛사지로 운동을 시킨 후에 부축하여 앉혀 주었을 때, 1년만에 처음 앉는다며 어린 부인은 감격하며 울먹였다. 그런데 부인과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질 않았다. 친정 어머니가 위독하다며 떠나버린 올케를 그 형제의 여동생은 그래도 이해하려 했다. 이젠 가까운 사람들이 다 떠나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형제의 영혼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다. 오늘도 우리는 그 형제를 찾아간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병동의 영적 전쟁 S병원 중환자실. 온몸에 칭칭 감긴 주사약의 호스가 조그만 몸을 억매고 있다. 왜 저 아이는 온종일 뛰기에도 하루 해가 모자랄 터인데 저렇게 몸부림을 쳐야 하나? 눈에 밟히는 아이, 아직 채 피기도 전에 무너지는 저 조그마한 몸뚱이. 혼자 항암제를 주사 맞고 너무나 고통스러워 몸을 둥그렇게 구부리고 고통 속에 언제일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간병을 기다리는 불쌍한 아이. 가난하고 불신앙의 부모로부터 방치된 저들을 눈이 시럽게 기억한다. 아픔과 고통이 몰려 오면 이것이 귀신들에 대한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여겨 저들 부모는 용한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인다. 저 불쌍한 영혼의 행진을 가슴이 아프도록 되돌아 본다. 급한 심방 요청이 왔다.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와 한참 시간을 잊어가며 병원에 도착하니 환자의 형수가 우리를 맞는다. 얼굴이 긴장 되어 있다. 심상치 않은 마음에 결론을 내렸다. 시어머니께서 시주하시는 절의 승려들 둘이 와서 심방(?)을 하고 있단다. 그들의 심방(?)이 끝나길 대기실 의자에 앉아 적지 않는 시간을 기다렸다. 묘한 영적인 대결을 느끼며, 병실에 올라갔는데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 같은 고통스런 형제를 만났다. 그의 고통을 맞는 우리의 심정은 너무도 착잡하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에 저의 갈 길을 안타까워하여 시어머니의 눈을 피해 우리를 부르신 환자의 형수되시는 집사님. 그의 애타하고 조마 조마한 심장의 고동소리가 우리 귀에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 우리는 내심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집요하게 할 수 있는 한 몇날을 총공격하였다. 형제는 고통 중에도 복음을 들었다. 그리고 고백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지막 임종의 시간에는 모든 식구가 그 형제의 곁을 떠나 있었다. 오직 형수되시는 집사님만 곁에 있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마지막 임종 때도 천국과 찬송의 영접 속에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큰 소망을 주신 기도의 제목은, 찢기고, 버려지고, 질병에 팽개쳐진 저 영혼들을 위해 간구하라는 것이다. 한 명의 환자를 통해 전 가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그리고 홀로 남은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회복되고 기쁨의 찬양을 함께 드릴 때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그래서 이제 우리 호스피스는 병원 선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준비되어진 자들에게는 피곤과 곤비함을 멀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을 잘 알고 있기에..... 신장을 기증하신 하 경자 집사님 검사를 받기 위해 옷을 걷어올린 자매의 팔에는 소나무의 뿌리같은 흉터가 온 팔에 선명하다. 30세의 나이라면 한창 삶의 기대와 비젼을 세우느라 얼마나 분주하랴. 그러나 자매는 자신에게 맡겨진 삶의 시간 동안 지루하고 피곤한 투석을 기다리며 산다. 전 미다 자매는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다. 소아마비로 장애를 얻은 것만도 그녀에게는 감당키 어려운데 패혈증으로 사경을 헤매다 청각을 잃게 되었다. 자매의 고난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신장이 거의 기능을 상실하여 이제는 일주일이면 두번씩 살아가기 위해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을 꽂고 피속에 들어있는 노폐물들을 제거하는 투석을 한다. 이 자매를 섬기기 위해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들 두분이 자원을 하셨다. 봉사를 위해 찾아간 첫날부터 호스피스들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밀려왔으나 그래도 위로가 있었다. 거의 모든 장기 환자들의 삶이 어렵고 힘든 것은 말할 수 없으나 이 가정에는 같은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남편의 지극하고 자상한 사랑이 있었다. 자매는 물기가 많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한다. 수분을 가능한 적게 섭쥐하기 위해 가능한 적게 먹을 수 밖에 없고 건빵이나 빵으로 연명을 한다. 자매를 섬기는 호스피스 봉사자 하 집사님은 자신이 지난해 신체검사를 할 때 의사 선생님의 판정의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시 그 마음을 때리기 시작했다. “특별히 신장이 건강하군요!” 하 집사님은 조심스럽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자매를 위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라고 하신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검사 결과 집사님의 기도대로 자매와 신장의 모두 부분이 똑같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매는 생명을 찾은 양 감사했고, 자매를 치료하시는 담당 의사 선생님은 오직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장기를 오히려 감사함으로 기증하겠다는 그 사실에 믿을 수 없는 충격을 받고 최선을 다하자고 약속한다. 호스피스 하 집사님의 남편 한 집사님은 자신의 부인이 신장을 기증하겠다는 결단에 큰 도전을 받고 남자 호스피스로 결단하고 훈련 중이시다. 여러번의 검사를 거쳐야 기증의 적합 판정이 난다. 검사 과정에서 두 사람이 너무도 잘 맞아가고 있다. 검사를 위한 새벽. 병원의 검사실에 환자와 남편, 호스피스 봉사자와 병원의 검사자들 모두의 마음은 모두 내 맘과 같았으리라. 표현하기 어려운 뿌듯함과 감사와 그리고 더 큰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고 계심을 느꼈다. 전 미다 자매는 신장이식을 위한 예비단계로 그동안 사용이 불가능한 방광을 인조 방광으로 바꾸기 위해서 치료 중이며 매주일 남편과 함께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여 감사예배를 드린다. 얼마후 우리에게 낭보가 들려 왔다. 한 주간 뒤 이를 아침 이식을 위한 수술에 들어 가기 전에 기도를 요청한다. 같은 시간 2, 3분의 시차를 두고 수술실 입구의 복도에서 수혜자인 전 미다 자매와 기증자인 호스피스 봉사자 하 경자 집사님의 침대를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하 집사님의 신장이 전 미다 자매에게 연결되었을 때 얼마 있지 않아 그렇게 신비하게도 그동안 한번도 시원스럽게 할 수 없었던 소변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절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수술이 끝난 후 기증하신 하 집사님은 회복을 위한 또 한번의 고통 속에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았다. 연약한 환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오늘 전 미다 자매에게 나타난 것처럼 모든 연약한 환자들이 주님께 감사를 돌릴 수 있기를 소원한다. 사랑하는 당신(엄 태상씨)께 보내준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요즈음 날씨가 환절기인데 건강하신지요(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순간 당신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뵐 수 있을까요? 당신은 내내 나에게 기다림의 연속인가 봅니다. 하루 속히 만나고 싶습니다. 이렇게 편지가 오고간 지 8년만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지요. 지금도 장롱 안에는 주고 받은 편지가 200여 통 있어요. 당신과 나의 사랑의 흔적이죠.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당신과 하루를 살아도 좋을 만큼 결혼을 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어요. 결혼 후 당신과 사는 동안 너무나 행복했죠. 그러나 당신과 나는 오래 살지 못하고(10년) 헤어졌죠. 당신은 천국에 나는 아직 이땅에… 당신이 천국행을 할 때 이 땅에 더 이상 발 붙힐 필요가 없다고 자책했어요. 당신 없이 나 혼자는 도저히 살 수도 살아갈 능력도 더구나 아이 둘까지, 빚까지. 당신 잘 알잖아요. 내 성격 철저한 이기주의, 자만심 허리 굽힐 줄 모르는 무식한 여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않았어요. 나에게 큰 메시지를 주셨어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계속 이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지요. 역시 하나님께서 이 말씀대로 힘 주셨어요. 당신 나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지난번 담임 목사님 설교 중에 누군가 뒤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실 때 나는 분명 당신이 기도하고 있다고 믿었어요. 당신이 투병 중일 때의 일이 생각나요. 박 목사님이 당신을 찾아갈 때마다 저 양반 뭐 하러 오신 분이냐고? 당신께 복음 전하려 오신 분이야. 당신은 그때 이해하지 못했죠. 하지만 당신은 날이 갈수록 목사님 말씀을 이해해 가는 눈치였어요. 저는 빨리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원했죠. 그것은 일순간의 제 생각이었어요. 당신이 비록 역선택을 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먼저 저희를 택해 주셨다고 믿어요. 철저하리만큼 유교사상으로 점철된 가슴이 녹아져 내리는 걸 제가 봤어요. 날이 갈수록 병 주신 것도 감사했잖아요. 당신 병이 다시 재발 했을 때의 심정… 이것은 하나님만이 아실 거예요. 일순간에 인생이 이것으로 무너져 내렸으니까요. 당신께 미안해서 가난한 집으로 장가와서 고생만하고 몸이 이렇게 아프게 되니 당신 나 만난 것 후회하죠 하며 물었을 때 무슨 소리야 내가 당신을 만났으니 이렇게 귀한 하나님까지 만나게 되었는데 다시는 그런 소리 말라며 내 말을 잘랐죠. 언제 저렇게 믿음이 생겼을까 하고 나는 감사했죠. 그때 하나님께서 물 붓듯이 사랑을 주신 것 같아요. 도저히 의학적으로 해 볼 능력이 없어서 당신은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샘물 호스피스」로 인도 되었지요. 저는 당신이 기도로 준비 했다고 믿어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처소를 다 마련해 주셨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당신 알잖아요. 영적으로 내가 무디다는 것…「샘물」로 가기 전 집에서 준비하는 동안 당신과 나는 껴안고 집에서 한참 울었죠. 당신 나에게 한 말 생각나죠? 이 시간 이후로 다시는 울지 말자고… 「샘물」로 인도 되어서 그곳에서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1초도 혼자 있게 두지 않았어요. 원 목사님 이하 모든 분들이 당신께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을 주었죠. 당신은 만족해 하고 내가 갔을 때 웃으면서 반겨주면서 낫기를 원했죠. 하지만 날이 갈수록 당신은 심상치가 않았죠 한번도 동요없이 굳굳이 기도로 준비하고 다른 사람 편에서 생각한 당신이 저는 참 대견했어요. 원 목사님께서 나를 불러놓고 자매님 엄형제가 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는데 자매님 때문에…하며 말 끝을 흐릴 때 나는 안돼요만 되풀이 했죠. 당신은 아픈 중에도 하나님과 교통하며 옥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며 성경읽기, QT 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고 특히 형제들의 구원을 생각하며 애통해 했죠. 당신 「샘물」에서 박 목사님께서 세례 주신 것 알죠. 세례 받고 기뻐서 나에게 전화 했잖아요. “나 축하해 줘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야” 하면서... 박 목사님, 박 권사님, 서해식품 사장님, 나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 특히 당신(사랑해) 그 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울리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면 이제는 박 목사님 일 도우며 자신처럼 병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했죠. 하지만 당신은 짧게 믿고 하나님 곁에 갔지만 믿음이 일평생 믿음보다 다 값지다고 믿어요. 당신 기도를 매 순간마다 응답해 주셨죠. 당신은 나에게 추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잠든 사이 하나님 품에 안겼어요. 하나님 품에 안길 때 나와 당신 곁을 떼어 놓으셨나 봐요. 이렇게 세심한 하나님이니까 제가 갈 길도 분명 잘 인도해 주시리라 믿어요. 마지막 순간 당신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어요.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쉬는 것 같았으니까요. 당신 딸 궁금하죠? 많이 컸죠. 두 아이 다 건강하고 아빠 있을 때와 똑 같아요. 명랑하고 하나님 말씀도 잘 듣고 당신 걱정 말아요. 그랬잖아요? 당신 나 없어도 잘 할 거라고… 절대 부끄러운 엄마는 안 될테니까 열심히 뛰어서 1등 엄마, 회사에서는 모범사원, 교회에서는 믿음 좋은 당신의 아내가 될 테니까요. 그럼 이만 당신의 아내 명희 올림 목마르거든/ 13시간 전 부르심. 어른은 항상 자신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셨다. 이 나라의 약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고 언제나 당신의 업적에 대해 말씀하시길 즐겨하셨다. 어른은 특별히 부대끼어 계통에 특별한 연구 업적을 갖고 계셨다. 양약과 한약을 함께 다루심으로 일찍이 어른은 환자들을 위해 당신이 터득하신 지식이 연약하고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최선의 비책이 되기를 소원하셨다. 그러나 지난봄을 지나며 자신의 몸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져 병원의 신세를 지는 형편이 되셨다. 지금까지 환자들을 위해 쌓아 두었던 당신이 연구한 비책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에 이 어른의 답답함은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온 몸의 통증만큼이나 자신을 괴롭혔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어른을 찾아 뵙고 위로하길 원했다. 그러나 어른은 완강하게 우리의 방문을 거절하셨다. 이유는 한가지 우리의 방문이 당신의 종교를 바꾸어야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였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어른을 위해 두 달 이상을 함께 기도했다. 기도의 응답이 왔다. 1998년 9월 15일 어른의 종교를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우리의 심방을 허락하셨다. 어른이 입원하신 J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00시. 병실에 들어가 어른께 인사를 드릴 때부터 주님은 그 어른을 지극히 사랑하심을 보이셨다. 통증을 호소하시는 어른의 하소연을 들으며 나는 도저히 무슨 말씀으로 어른을 위로 할 길 없었기에 주님이 먼저 이 어른에게 말씀하실 것을 기도했다. 순간 지혜가 떠올랐다. "어르신! 우리는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는 마음에 상자를 만들어 놓고 그 상자 속에 모든 아픔을 담아 밖으로 버려 버리는데, 어르신도 모든 고통을 상자에 담아 몸밖으로 버려 보세요. 제가 그 상자를 만드는 일을 도와 드릴께요." 이 어른은 어린아이처럼 그 상자를 만들어 모든 통증을 담아 몸밖으로 버리려고 열심히 노력하시는 것 같았다. 여러 번 시도를 해 보시던 어른은 자꾸만 몰려오는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성공 할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도움을 청해 오셨다. 나는 어른에게 마음에 통증을 담는 상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도라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 드렸다. 그 기도는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된다는 것도 알려 드렸다. 그리고 나의 기도를 따라 해 보시길 청했더니 어른은 순순히 기도를 따라하신다. 한참을 따라하시던 기도는 능력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이 확인되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호소하시던 통증이 점점점 사라져 견디실 만큼이 되셨다. 줄어드는 통증을 옆에서 지켜보시던 불심 깊은 부인이 오히려 어른에게 우리의 기도를 더 따라하실 것을 부축이신다. "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이렇게 능력이 나타나느냐면요 하나님은 어르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 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과 고난과 고통을 우리 대신 짊어지시고 해결 해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께 기도하시면 예수 님은 어르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고통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시고 믿으려고도 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이거든요. 이런 모든 죄를 용서를 구하시면 우리를 용서하셔요. 이렇게 용서받은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을 수 있고, 이 부활을 믿은 사람에게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고 이 천국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에요!" 모든 복음의 능력을 어른에게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어른은 이 능력을 어린아이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실세라 따라 하신다. 그리고 어른은 자의로 이 모든 것을 다 믿으신다고 고백하시고 또 기도를 따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길 마쳤을 때 시간이 한시간 반이 지났다. 어른은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많이 사라진 통증이 이제 평안으로 바뀌었음을 고백하시며...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목마르거든-1월.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먼저 간다고 우리 애들 기죽지 않게 잘 키우길 부탁하고... 먼저 떠나게되어 당신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정말 사랑하오 우리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다...시 만납시다. 여보 사랑해요 염려 말고... 평안히 가시고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다시 만나요! 그래 애들이나 우리 걱정 하지말고 평안히 가거라. 조금 있다 만나자 명수야...!” 1998년 9월 8일 아침 11시 30분. 형제는 마흔 한 살의 나이에 애끊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도 자신을 괴롭히고 억눌렀던 간암과 전이된 폐암의 굴레에서 주님의 초청을 받았다. 형제는 참 잘생겼고 깔끔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영화배우를 했어도 꽤나 인기를 누렸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약간 장난기 어린 감성적일 것 같은 깊숙한 눈빛, 준수한 외모에서 받는 여유로움. 형제는 그의 풍기는 외모만큼이나 우리가 만난 7, 8개월의 투병을 참 여유 있게 싸웠다. 동생이 원치 않았던 질병, 간암과의 싸움을 예수님과 함께 싸워 주기를 원하는 누나의 간절함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동생을 대할 때마다 안타까움이컸다. 우리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평안과 소망은 별로 투병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슬비에 옷이 젖어드는 듯 형제는 조금씩 오랜 유학생활과 세상에서 인정받았던 그의 지식의 껍질을 깨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가는 횟수가 더 할수록 그는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았다. 자주 집과 병원을 드나드는 그의 투병은 어느 날에는 좋아지는 것 같아 가족이나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쁨이 되었다가, 어느 날에는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을 반복하여 안타깝게 만들기도 하였다. 8월이 들어와 형제의 병세는 심상치가 안했다. 자꾸만 가성 혼수상태가 나타났다. 급기야 8월 31일 혼수상태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찾아간 병실에 형제는 보이지 안했다. 갑자기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 불안한 충격을 받았다. 아니 벌써...? 형제를 찾으러 간호사 실에 뛰어 갔더니 간호사는 처치 실로 옮겼다는 것이다. 갑자기 왠지 모를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오는 것 같았다. 최고급 병원이라는 병원들이 마지막 임종을 위해 처치 실로 만 가야 한다니...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자녀요, 가정에서도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 데. 그래 마지막을 꼭 처치실의 한 귀퉁이에서 맞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매번 당하는 분노이지만 누구에게 소리칠 수도 없는 우리의 모순인 것을. 형제를 찾아 처치 실에 들어가니 가뿐 숨을 들이 내쉬고 있는 또 한 분의 식구들과 어우러져 몸이 서로 부대끼어 움직이기가 힘이 들었다. 형제를 찾아 기도하고 그의 깨어나기를 간구하길 3일이 되는 날 갑자기 마음속에 찾아드는 성경의 말씀이 있었다. 로마서 8장 33절-35절, 37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말씀을 그의 귀에 입을 대고 읽어 주고 기도를 해주고 있을 때 그는 그때까지 그렇게 조용하더니 갑자기 온 몸을 흔들고 몸이 침대에 묶여 있지 안했다면 침대 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요동을 치고 있었다. 형제의 흥분된 상태를 진정 시키기 위해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형제는 이틀 후에 오후에 정말 기적처럼 혼수 상태에서 닷새만에 깨어났다. 깨어난 형제는 그날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오른손의 엄지를 펴들고 찾아간 우리를 향해 시위를 하는 듯했다. 그 의미를 모르는 우리는 아직 혼수에서의 행동이거니 했다. 그러나 그 의문은 다음날 풀렸다. 형제의 엄지손가락 싸인은 다름 아닌 승리의 싸인 이었다. 형제가 어느 통로를 따라 한 방에 도착했을 때 그 방은 아주 넓었는 데 방안이 모두가 감옥이었다는 것이다.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가 굵은 쇠줄로 묶여 너무 너무 고통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때 어디선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누가 송사 하겠는가?” 는 음성이 있었고 자기가 몸부림을 쳐 싸워 승리했다는 것이다. 형제의 말을 듣고 있을 때 갑자기 또 세례를 베풀어야 겠다는 감동이 왔다. 다음날 9월 4일 우리는 형제가 있는 처치실에서 형제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병상세례를 베풀었다. 세례를 받은 형제는 세례가 끝나자 말자 “나는 이제 진실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도다!” 감격의 고백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였고, 그동안 형제가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해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함으로 이 땅에서의 모든 묶임을 풀고 사흘 후 아직 어린 두 딸에게 또 부인과 형제와 부모에게 소망의 해후를 약속하며 아주 평안하게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목마르거든-2월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우! 해마다 오늘 우리 방문이 박집사님 병원에서 생활이 끝나길 소원하며 찿아나선다. 박집사님은 81년 머리의 통증과 현기증을 느끼며 병원을 찿았다. 결과는 듣기에도 소스라쳐 놀랄 뇌종양. 그러나 다행스럽게 위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수술 만 잘되면 앞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는 소망이었다. 그해 수술은 기대했던대로 아주 잘되었다. 오히려 소스라쳐 놀란 것이 우습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수술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가던 88년. 아주 불안한 통증이 기분 나쁘게 스칠 때 혹시나 불안한 가슴으로 병원을 찿았다. 박집사님 부부는 귀를 의심할 “재발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재 수술해야 합니다”는 판정. 재 수술을 위한 머리 삭발이 시작되었고, 뇌에서 다시 솟아난 종양을 제거하였다. 이번 수술도 대 성공이었다. 앞으로 더 이상 수술실에서의 조바심을 사양하기를 정말 소원하였다. 박집사님 부부의 기도대로 박집사님은 더 이상 아무 문제 없이 교회에서 훈련도 받고 다시 모든 염려와 두려움이 없는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냈는지 항상 기쁨이 충만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듯 너무도 다정한 한쌍의 잉꼬 부부로 소문이 났다. 남편 박집사가 있는 곳에는 항상 보이지 않게 부인 정집사가 아름다운 미소로 뒤를 쫒고 있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93년 이 아름다운 부부 사이에 또다시 재발이라는 고통의 시작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때부터 재발되어 다시 수술하고, 수술하기를 98년까지 매년 한번아니면 어느때는 2번의 수술대 위에서의 투병이 시작되었다. 10여번이 넘는 대 수술. 수술후 찾아간 중환자실의 박집사님. 온 몸은 수많은 호스로 연결되어 있고, 색색거리는 파열음 속에서 숨을 쉬고, 주사기로 공급되는 영양식을 통해 음식을 먹고, 중환자 병실에 가득한 환자들의 투병의 신음 속에서 투병하시는 박집사님. 하루에 정해진 두 번의 짧은 면회시간을 통해 하루 온종일 중환자실 대기자 숙소나 복도에서 조바심 내다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시간에 맞추어 불이나케 중환자실의 호명을 기다리는 정집사님. 호명을 받고 들어가서는 정해진 시간에 온몸을 마사지 해주고, 솜에 알콜을 묻혀서 온몸을 닦아주고, 그리고 하도 많이 한 수술로 더 이상 자신의 머리의 피부로는 아물지 않아 배와 다리에서 떼어온 살갗으로 이식한 머리는 머리뼈를 빼 놓았기에 푹꺼져버린 머리를 갖고있는 당신이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듯 불러보고 이야기를 시켜도 대답을 하지 않는 당신이지만, 10여번 이상씩 간이 떨어질 것같이 놀라게하고 간을 조리게 한 당신이지만 그래도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알우! 하며 얼굴에 뽀뽀를 해주고, 토닥거리며 귀에대고 사랑을 속삭이시는 정집사님.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수술의 연속 속에서도 박집사님 부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했다. 오히려 찾아가는 우리를 보고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은혜를 감사함으로 이야기 하신다. “아 글세 보세요. 우리 박집사가 오늘은 제가 한말을 알아듣고 얼굴을 소리나는 쪽으로 돌렸어요, 오늘은 눈의 초점이 생기가 났어요, 오늘은 좁더 움직였고...... 그리고 이번 졸업한 우리 아이가 L그룹에 취직이 되어 벌써 출장을 갔어요!” 새해들어 우리는 소망을 본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늘 정집사님처럼 아무리 무겁고 힘든 짐이라도 혼자지고 가지 않고 매일 주님과 함께 지고간다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사를 기쁨중에 더 많이 고백할 수 있으리. 아무리 10여번 이상의 죽을 것 같은 수술의 연속이라도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좋아지고 있다고 몸으로 보여주는 박집사님의 투병처럼 우리는 내 앞에 닥친 슬픔과 한숨을감당 할 수 있으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라”(요한복음 15:11) 목마르거든-4월 눈으로 말하는 아멘, 아멘 46세된 송 **형제. 혀를 포함해 몸의 모든 근육의 힘이 빠져 나가 오직 눈동자가 움직이는 위, 아래 방향으로 만 말할 수밖에 없는 “근육위축성 경화증 ALS”환자. 94년 8월 어느날, 테니스 경기중 갑자기 왼손에 잡고 있던 공이 힘없이 툭! 굴러 떨어질 때 순간 당황하여 “어어! 왜이러지...” 그렇지만 별것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루가 다르게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 듯 노근하기에 잠깐 쉬면 괜찮을 줄 알았다. 정신을 차리려 해서 그런지 며칠간은 기분이라도 좋아지는 듯했다. 자꾸만 떨치려해도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치료에 대한 기대를 갖고 2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호흡장애, 호흡할 수 있는 근육도 이젠 힘이 빠져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없게 되어, 목에 구멍을 내고 달아논 쐐애엑거리는 호흡기로만 호흡한다. 누군가 찾아와 비슷한 환자에게 치료할 수 있는 약이 개발되었다는 막연한 추측성 소문에도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기대를 했던지...... 그러나 이제 형제는 자신의 많은 기대하는 것들을 버렸다. 자신을 섬기기위해 찾아온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들려주는 예수님의 치유하심에 추측성 소문보다 온 생각과 마음을 다 주님께 드렸다. 아내와 딸과 어머니가 간병으로 지친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을 누워서 꼼짝 못하며 바라 볼 수밖에 없을때는 자신을 미치게 할 것 같았는데 이젠 이들을 모두 주님께 마음속의 기도로 맡길 수 있어 감사하게도 마음에 평안을 느낀다. 형제는 특별히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 찬송을 너무나 좋아한다. 자신을 찾아온 호스피스 봉사자를 눈으로 졸라 몇번씩이든 이 찬송을 부르게한다. 따라 부르고 싶어 입을 삐죽거려 보지만 입밖으로 삐죽이 빠져있는 혀가 움직이지 않으니 마음속에선 찬송이 울려도 밖으로는 소리대신 애가 타서 계속 침만 흐를 뿐이다. 형제는 한동안 무료함을 달래기위해 종일 켜져있는 텔리비젼에서 무작정 지나가는 프로그램이 그를 상대해 주던 전부였다. 그러나 이젠 성우들의 음성을 통해 흘러 나오는 성경테이프의 하나님 말씀이 점점 그 마음속을 뜨겁게 감동시키기 시작하였다. 찾아온 호스피스 봉사자에게 자신도 세례를 받고 싶다는 간절함을 눈의 말로 요청했다. 형제와 우리의 의사 소통은 학령전 아이들이 쓸 것 같은 숫자와 글자판을 손으로 짚어가면 위로 눈을 치켜뜸으로 “예”, 아래로 내려 뜸으로 “아니오”로 소통한다. 가족들과 호스피스 봉사자에 둘러 쌓여 “형제가 죄인이었고, 이 죄를 위해 오직 예수님 만이 형제의 주님이신 것을 확신합니까?” 그는 몇 개의 세례를 위한 질문마다 눈빛에 비장함과 힘을 주어 평상시보다는 훨씬 빠르게 눈을 위로 치켜뜨기를 수 없이 반복한다. “그렇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확실하게 고백합니다! 아멘! 아멘!...” 소리는 낼 수 없어 눈으로 대답하지만 쉴사이 없이 흘러 내리는 그의 눈물과 함께 그의 애써 짓는 표정에서 엄청난 큰 목소리 대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세례를 마치고 아빠 사랑해요! 딸의 입마춤과 축하합니다하며 몇컷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 넣으려 하는 데 형제의 눈이 갑자기 아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슨 큰 불편이 생겼나하여 우리는 형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마음이 급하여 무엇을 물어 보아도 계속 눈은 아래로만 내려뜬다. 몇분간의 실랑이가 벌어진 후에 우리 자원 봉사자가 형제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식구끼리 사진을 찍어 달라구요?” 형제는 금방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계속 눈을 위로 치켜뜨며 자신의 뜻이 통했음으로 오는 평안을 보일 때 우리는 아버지로써 가족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찾으시는 사랑을 다시한번 느낄 수가 있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한복음 15장 9절)” 목마르거든 5월. 이젠 되었어요 천국에서 쉬고 싶어요. 41세인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이맘 때였다. 앞산이 불그스레한 진달래로 물이 들어 가고, 노오란 개나리는 길가를 물들여 갈 때였다. 그녀가 투병하기전 까지만 해도 직업을 갖고 있었다. 종합병원 수술실 담당 간호사. 매일 벌어지는 수술을 통해 수 많은 암환자들의 고통의 절규와 낙심을 환자나 보호자들 못지 않게 보아왔다. 그리고 자신은 가정을 위해서도, 자기 앞에 그렇게 씩씩하게 잘 자라가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도 어떤일이 있어도 그 무서운 암이란 병만은 걸리지 않해야 된다고 자주 자주 되뇌였는지 모른다. 그녀는 시간을 쪼개어 가능한 운동도하고, 건강을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살았다. 아직은 풍성 풍성한 여유는 없어도 친정식구들이 들어 닥쳐도 언제든지 널직한 집도 장만했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일만 남아 있는 듯 살아가는 재미를 누리며 살아갈 차비를 갖추었다. 근무하는 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는 날이었다. 왠지 모를 불안이 쓱 지나갔다. 자꾸만 두려움이 솟아 오르는 것을 억눌렀다. 심호흡을 해가며 애써 태연하게 자신을 나무라며 모든 검사를 다 맞쳤다. 결과를 기다리는 몇칠은 왜 그렇게 안정을 찾을 수 없었는지, 괜시리 남편에게 생각조차도 싫고 더군다나 입밖에도 꺼내기도 싫던 말을 해보았다. “여보 내가 만일 죽을 병에 걸린다면 당신은 어쩔꺼야!” 쓸대없는 말을 한다고 남편이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이 어쩜은 위로가 되었던지 조금은 마음에 평정을 찾았다. 결과를 보던 동료 의사의 얼굴을 살피던 그녀는 가슴에서 턱 무엇인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의사의 얼굴이 약간은 심각해지고, 당황해지는 표정을 놓치를 않했다. “김선생님! 뭐 별거 아닐꺼야. 다시 한번 시험삼아 정밀 검사 한번 해 봅시다. 염려 말아요. 괜찮을 테니!” 몇번의 정밀 검사를 통해 밝혀진 그녀의 병명은 간으로 전이된 난소암 말기. 자신이 그렇게 두려워 하던 암. 그것도 초기가 아닌 말기 암. 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렇게 저주스럽게 보아왔던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한꺼번에 자신에게로 몰려오는 것 같은 공포가 그녀를 이리 저리 내팽겨치기를 시작했다.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한 순간에 버려버려야 할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그녀를 할트려는 듯 다가왔다.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워하는 언니를 버던 동생이 나에게 전화를했다. “목사님 언니 좀 도와 주세요!” 전에는 자기도 우리 교회에 나가던 자매인데. 지금은 시집의 형편상 교회를 나오지 못하지만 안니의 고통을 보면서 우리 호스피스에 연락을 했단다. 동생과 함께 찾아간 가정은 초죽음이 다 되어버린 환자가 죽음의 공포와 자신이 그렇게 두려워 했던 암환자가 되었다는 하소연을 다 듣고도 아무것에도 의지할 것이 없다고 거부하는 환자에게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이 안타까움만 갖고 그 가정에서 나와야 했다. 그로부터 간간히 전화를 통해 자매의 의학적 지식에서 오는 두려움을 벗겨 줄려고 시도하게되고 그 마음에 예수님의 평안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두어달 전에 우리를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너무도 반가워서 한다름에 자매를 찾아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동안 얼마나 죽음에 대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자매를 묶고있던지 쾡한 눈동자 위로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포기한 자만이 같는 공허함 속에서 그래도 아직도 포기되지 않은 미련이라는 아주 작은 소망이 우리를 찾게한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 호스피스 팀은 그 자매가 병원으로 가면 병원으로, 집으로 가면 집으로 찾아가 너무도 말라버려 삐뚜러져버린 손을 잡고 자매를 그래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러기에 오늘도 평안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매에게 소개할 때 자매의 남편도, 친정어머니도, 자매도 이제는 모든 두려움을 내려 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 평안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품에서 쉼을 얻고 싶었다. “이제 되었어요. 천국에서 쉬고 싶어요. 고통을 늘려 더 이상 고난당하고 싶지 않아요!” 진달래와 개나리가 흐드러져 옷에 물드는 이 봄에 자매는 너무도 평안히 자신의 두려움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신 주님 품에 남편의 다음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잠시 이별의 인사와 함께 안겼다. 목마르거든 5월. 이젠 되었어요 천국에서 쉬고 싶어요. (수정본) 41세인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이맘 때였다. 삭제⇒(앞 산이 불그스레한 진달래로 물이 들어 가고, 노오란 개나리는 길가를 물들여 갈 때였다.) 그녀가 투병하기전 까지만 해도 직업을 갖고 있었다. 종합병원 수술실 담당 간호사. 매일 벌어지는 수술을 통해 수 많은 암환자들의 고통의 절규와 낙심을 환자나 보호자들 못지 않게 보아왔다. 삭제⇒(그리고 자신은 가정을 위해서도, 자기 앞에 그렇게 씩씩하게 잘 자라가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도 어떤일이 있어도 그 무서운 암이란 병만은 걸리지 않해야 된다고 자주 자주 되뇌였는지 모른다.) 그녀는 시간을 쪼개어 가능한 운동도하고, 건강을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살았다. 아직은 풍성 풍성한 여유는 없어도 친정식구들이 들어 닥쳐도 언제든지 널직한 집도 장만했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일만 남아 있었다. ⇒(듯 살아가는 재미를 누리며 살아갈 차비를 갖추었다.) 근무하는 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는 날이었다. 왠지 모를 불안이 스쳤다. 삭제⇒(자꾸만 두려움이 솟아 오르는 것을 억눌렀다. 심호흡을 해가며 애써 태연하게 자신을 나무라며 모든 검사를 다 맞쳤다.) 결과를 기다리는 몇칠은 왜 그렇게 안정을 찾을 수 없었는지, 괜시리 남편에게 생각조차도 싫고 더군다나 입밖에도 꺼내기도 싫던 말을 해보았다. “여보 내가 만일 죽을 병에 걸린다면 당신은 어쩔꺼야!” 쓸대없는 말을 한다고 남편이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이 어쩜은 위로가 되었던지 조금은 마음에 평정을 찾았다. 결과를 보던 동료 의사의 얼굴을 살피던 그녀는 가슴에서 턱 무엇인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의사의 얼굴이 약간은 심각해지고, 당황해지는 표정을 놓치를 않았다. “김선생님! 뭐 별거 아닐꺼야. 다시 한번 시험삼아 정밀 검사 한번 해 봅시다. 염려 말아요. 괜찮을 테니!” 몇번의 정밀 검사를 통해 밝혀진 그녀의 병명은 간으로 전이된 난소암 말기. 자신이 그렇게 두려워 하던 암. 그것도 초기가 아닌 말기 암. 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저주스럽게 보아왔던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한꺼번에 자신에게로 몰려오는 것 같은 공포가 그녀를 이리 저리 내팽겨치기를 시작했다.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한 순간에 버려버려야 할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그녀를 핥으려는 듯 다가왔다.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워하는 언니를 버던 동생이 나에게 전화를했다. “목사님 언니 좀 도와 주세요!” 삭제⇒(전에는 자기도 우리 교회에 나가던 자매인데). 지금은 시집의 형편상 교회를 나오지 못하지만 안니의 고통을 보면서 우리 호스피스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동생과 함께 찾아가 죽음의 공포로 초죽음이 된 환자의 하소연을 들었다.자신이 가장 두려웠던 것이 암이었는데, 자신이 암 환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의지할 분을 거부하는 환자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안타까움만 갖고 나와야 했다. 그로부터 간간히 전화를 통해 자매의 의학적 지식에서 오는 두려움을 벗겨 줄려고 시도하게되고 그 마음에 예수님의 평안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두어달 전에 우리를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너무도 반가워서 한달음에 자매를 찾았다. (그동안 얼마나 죽음에 대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자매를 묶고있던지 쾡한 눈동자 위로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포기한 자만이 같는 공허함 속에서 그래도 아직도 포기되지 않은 미련이라는 아주 작은 소망이 우리를 찾게한 것이다.) 수정⇒(쾡한 눈동자를 보면서 그 동안 죽음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자매를 얼마나 묶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날부터 우리 호스피스 팀은 그 자매가 병원으로 가면 병원으로, 집으로 가면 집으로 찾아가 너무도 말라버려 삐뚜러져버린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자매를 그래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러기에 오늘도 평안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매에게 소개할 때 자매의 남편도, 친정어머니도, 자매도 이제는 모든 두려움을 내려 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 평안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품에서 쉼을 얻고 싶었다.) 수정⇒(이제 평안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품에서 쉼을 얻고 싶어 했다.) “이제 되었어요. 천국에서 쉬고 싶어요. 고통을 늘려 더 이상 고난당하고 싶지 않아요!” 진달래와 개나리가 흐드러져 옷에 물드는 이 봄에 자매는 너무도 평안히 자신의 두려움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신 (주님 품에 남편의 다음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잠시 이별의 인사와 함께 안겼다. ) 수정⇒주님 품에 안겼다. 다음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남편의 인사와 함께…. 목마르거든 6월 우리도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파요 “지난 세월 나는 참 외로웠다우. 신의주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딸자식을 하나 낳았지. 6.25가 터지자 남편과 우리 모녀는 남쪽으로 피난길에 들어 섰었어. 그때 갑자기 날아온 총탄에 남편은 피난길에서 그렇게 떠나버렸어...” 75세이신 선암이라는 판정을 받으신 박 인수 할머니. 눈가에 젖어드는 지난 세월을 애써 담담히 말씀하시지만 스며있는 슬픔과 두려움이 보인다. “내가 날 생각해도 난 참 지독하게 억척스럽게 살았지. 어떻게든 이 남한에서 저 딸과 내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 더럽고 악한 일만 빼놓구선 해보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어. 우린 친구들이라곤 이남에 피난온 너뎃되는 여고시절 친구가 전부여! 그래도 이 친구들이 우리외로움과 슬픔의 바람막이 든든한 벽이었지...” “어제 병원에서 의사는 내가 앞으로 한달 밖에 못산다고 그러는데... 보라구! 지금 나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데 한달 후 죽는다는 거야 도대체 믿을 수가 있겠소! 내 몸이 암 공장이래요. 어데서 암이 튀어 나올지 알 수 가 없다는 거야. 하루 하루가 다르게 변 할 거라던데... 오늘은 영 기운도 없고, 의사 말대로 금방 죽을 것 같아. 그런데 이렇게 죽기에는 왠지 모르게 억울한 생각이 든단말이야... 하긴 많이 살긴 살았지, 다만 우리 딸내가 이번 IMF 때문에 한국에서 괜찮은 회사에 다니다 구조조정에 걸려 외국회사에 나가 있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려. 내가 한달 후에 죽을 것 같다하니까 딸만 먼저 외국에서 들어왔는 데 매일 울기만 해......” 지난 4월 초순에 교회 복지관의 복지사로 부터 연락이 왔다. 가족이 아무도 없어 돌보아줄 환자가 있는데 우리가 돌보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일단은 환자를 찾아 만나 봐야 될 것 같았다. 환자를 만나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신상에 대해 인내를 갖고 들어 드려야했다. 내가 질문할 여유도 주지 않고서... 우린 환자가 자존심이 무척 강한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은 지금껏 누구를 도와 준적도 없고, 도움을 받아 본적도 없단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옆집 아주머니 성화에 못 이겨 교회라는 곳을 처음 나가 보았는 데 참 이상 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지금껏 살아온 방법은 내 것을 내가 먹으면 되고, 네 것은 네가 먹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왜 자신들을 이렇게 도와주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찾아와 주는 것과 자신을 돌보아 주는 것이 무척 고맙고 평안하시단다. 나는 환자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환자를 보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해 그리고 아무리 한달 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에 대해, 오늘 하루를 지금껏 살아오신 것보다 더욱 최선을 다해 감사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나눌 때 환자는 차츰 감정의 변화를 겪기 시작하였고 우리의 섬김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점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가끔씩 가성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때마다 딸의 흔들리는 두려움과 불안을 병상세례를 행하므로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기를 원했다. 세례를 받은 날 환자는 기적처럼 가성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딸은 자기 모녀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은혜를 베푸셨다고 완전히 흥분하였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지금껏 50여년이 넘도록 이렇게 살아보지 못했지만 우리들의 섬김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과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 후 환자는 일주일 정도를 그렇게 지난 후 너무도 평안히, 그리고 슬픔을 이제는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줄 아는 딸의 환송을 받으며 얼마 후 천국에서의 다시 만남을 확신하고 떠났다. 목마르거든 7월 주님 무슨 일이 일어 났어요? 지금까지 맞았던 어떤 항암제보다 오늘 맞을 항암제가 훨씬 강력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형제는 모든 입맛을 다 잃어 버렸단다. 형제가 49년 자신의 살아온 여정을 소개할 때 톡톡튀는 상쾌함이 있었다. 말을 타고 달렸던 이야기하며, 그에게는 솟아나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또 솟아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 욕망은 지금 섹스폰을 배워 멋지게 찬송을 연주하고 싶어하였다. 형제는 언론사에서 20여년간 PD로 근무했다. 방송사를 그만두고 사업이라는 것을 했다가 함게 동업하던 사람으로부터 사기를 당하여 완전히 기업은 도산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다시 언론사의 직장을 얻어 기획실장이란 직함을 얻고 4일간을 출근하다 점심식사 시간에 갑자기 각혈을 하고 쓰러지게 되었다. 바로 집 근처 종합병원에 후송되어 48시간의 정밀검사 끝에 탈진한 그에게 내려진 결론은 위암 말기에서 간으로 전이된 도저히 무엇으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고, 남은 생명의 연한은 1년이내라는 것이었다. 형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건강 하나를 믿고 왔던 자신의 말로를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나 결과는 1%의 확신도 없다는 치명적인 판독의 결과를 선포하는 의사의 당당함 앞에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지고 작아져서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선생님! 0.1%의 가능성이라도 없습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나에게 실험이라도 해볼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절규에 가까운 그의 간청에 1월6일 첫 번째 항암제가 그의 몸 구석 구석에 쏟아 부어졌다. 그의 몸은 한번의 항암제 투여에도 전쟁터의 폐허처럼 지쳐가기 시작하였다. 형제는 원래 하나님을 잘 의지하던 믿음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3년전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 하나님을 인정해서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니라 아내의 반 강요에 못이겨 나왔지만 나름대로 계획이 섰었다. 아내가 그렇게 입이 달토록 자기를 쇠뇌시키려 하는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꽁투리를 잡아 다시는 교회에 가자하는 소리를 못하게 만들려고 매주일 마다 목사님의 설교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집중하여 열심히 듣고 분석하고 하다가 자신의 삶이 변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난 40여년을 넘게 자기 맘대로 살아버린 지난날을 회개하고, 자신의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던 차에 이런 청천벽력같은 결과를 자기 몸에서 발견하게 되어 그나마 모든 것을 포기하여 버리지 않고 오늘은 싸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씀에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지금은 고백한다. 형제가 항암제를 투여 받고 입원하고 있는 중에 아내가 갑자기 속이 거북하고 너무도 고통스럽다고 하소연 할 때, 휠체어에 몸을 싣고 검사를 위해 아내와 함께 아래층 산부인과를 찾아갔을 때 자궁난소 종양인데 악성일 가능성이 많으니 빨리 수술하자는 통에 부랴부랴 수술실 옮겨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다. 형제는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체 수술실 밖에서 처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씀니다. 주님의 은혜를 갈급할 뿐입니다.” 형제의 아내는 다행이 악성은 아니었다. 수술 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몸을 이제는 남편을 위해 병상을 지키는 이들의 가정을 보면서, 이럴 때 여유있는 사람들은 간병인이라도 부탁을 하련만 안타까움이 밀려오나 어떻게 도울 수 없는 현실에 주님께 기도 할 뿐이다. “주여!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옵소서. 저들의 질병만이라도 고통스러운 투병이 되지 않토록 끊없이 솟아나는 소망을 주시옵소서. 저들이 지쳐 너무 많이 눈물 흘리지 않토록 저들의 눈에서 눈물과 입에서 쏟아질 한숨을 면케해 주옵소서.” 오늘 저녁때 울먹이며 부인이 전화를 했다. “목사님 항암제를 맞다가 열이 너무 나서 혹시 세균에 감염되었는지 모른다고 또 검사를 해야 된다나봐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내가 바로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너무도 답답하여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무슨 일이 일어 났지요? 저들을 지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목마르거든 10월 35세의 형제. 어릴 때 어머니는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잘 기억은 없으나 아버지는 간 질환으로 돌가셨고, 고아원에서 함께 자랐던 형은 18세 때 대형버스에 머리를 부딛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하나있던 여동생은 형제가 하사관으로 자원 입대한 후 춘천으로 결혼하여 고아원을 떠났지만 위장과 간 질환으로 고생하며 아주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형제는 7년전 갑자기 쓰러져 시립병원으로 실려가 위암으로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알게되고, 어느 전도사의 신학교 등록금으로 수술을 받고 주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신이 이런 은혜를 받았기에 형제는 자신의 투병생활을 통해 세상에 빚진 빚을 갚기 원했다. 형제는 바벨을 들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몸을 단련하여 94년도 미스터 서울 선발대회에서 당당히 3위로 입상함으로 많은 환자들에게 투병의 도전을 주었다. 형제는 외로움 속에서도 예수님의 위로와 소망을 통해 새로운 평안의 투병이 되었다. 형제는 자신의 평안과 소망을 전하기로 작정하고 작년부터 그는 “희망의 전화”를 개설하여 자신과 같이 투병하는 자들을 2,000여명에게 상담을 통해 섬기며 예수님 안에서 투병을 권하였다. 형제는 지난 6월 희망의 전화를 개설하기 위해 차용한 돈 1500만원을 갚기 위해 매월 80만원씩 붙던 8개월 분의 640만을 사기 당했음을 알고 암 환자들을 섬기겠다는 순수한 동기로 시작한 섬김이 낙심 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듣고 난 날부터 형제는 온 몸에 힘이 빠지고 하루가 다르게 갈비뼈 근방에서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형제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했다. 얼마전 형제의 선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며 TV방송사들에게서 취재의 대상이 되었을 때 검사를 통해 7년전 수술했던 위와 다른 부분들이 너무도 깨끗하다는 소견을 들었기에 순간의 아픔이려니 생각했다. 그렇지만 한번 수술한 경험이 있었기에 예방차원에서 찾아간 S병원에서의 결과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의외의 결과였다. CT에 찍혀 나온 그의 간 사진에는 수 없이 찍혀있는 크고 작은 암세포들의 군상을 보게되었다. 간암 말기. 지금 당장 입원하여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번에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 다해도 200-300만원 정도 들어가는 병원비도 문제이지만 자신의 섬김을 이용하여 사기를 친 사람들에 대한 아픔을 해결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것이다. 형제는 다 갚지 못한 남은 부채와 전이되어 재발한 간암 치료에 대한 혼동을 호소하며, 돌아오는 11월이 되면 한 주간을 택하여 부산 서울간 자전거 행진을 계획하여 고통받고 소망 없는 자들의 투병에게 작은 희망과 용기를 주겠다고 계획했던 계획이 100m를 걷는데도 너무도 힘이 들어 몇 번씩 쉬어야 되는 지금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 오라 하시면 담대히 갈 수 있기에 이 땅에 남을 육체는 자신과 같은 환자들을 위해 의학도들에게 남겨 주기로 했다고 약속을 남긴다. 들고 가기 힘든다며 극구 사양하는 형제를 달래어 필요한 몇 가지의 물품들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밀려오는 허탈함을 느낀다. 주님! 이 형제를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까요? 이 땅에 의지 할 곳 없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자 애쓰는 35살의 저 형제에게 무엇으로 용기를 주고 다시 한번 투병할 은혜를 줄 수 있을 지를...다만 할 수 있는 일은 힘들여 한 발자국씩 딛는 그의 발걸음에 기도와 간구를 통해 힘있는 발걸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가 이제 형제에게 소망과 용기를 줄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시옵소서 그래서 형제의 평안한 투병을 섬기게 주의 은혜를 허락하소서 기도한다. 목마르거든 11월 “앞으로 하나님께서 나 같은 것을 어떻게 쓰시려고...!"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연신 화장지를 빼어드는 그의 손과 몸이 전율로 파르르 떨린다. 그는 어린 시절 지냈던 고향 바닷가를 자주 찾아가고 싶어한다. 형편은 꽤나 어려웠지만 항상 마음은 풍성함을 누렸던 시절, 그 어릴 때부터 한번도 어머님을 거역하지 않던 모두가 인정하는 효자였다. 2년 반전 자신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음으로 처음으로 어머님의 생각과는 다른 결정을 함으로 순간의 갈등을 갖어야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결정은 언제나 그랬듯이 어머님과 온 가족을 살리는 확실한 선택임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주저함은 별 문제가 되지 않했다. 그는 몇 년 전 통일 한국의 농업정책을 입안하기 위해 중국 연변에 있는 대학으로 국가에서 파견된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고, 그에게 찾아온 예수님은 그의 삶 전부를 바꾸어 버리게 하셨다. 그는 국가에 사표를 제출하고 아예 전보다 비교도 안 되는 박봉의 열악한 환경인 연변 과기대 경제학 교수로 자신과 가족들이 저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정치적 문제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자신의 믿음을 떳떳이 밝히며 학생들에게 자신을 따라 오라고 말할 수는 없는 환경이지만 자신의 변한 삶을 통해 저들에게 소망이길 원했다. 그는 항상 너무도 기쁘고, 감사하였기에 오늘의 약간의 부족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로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움도 염려도 없이 항상 주님이 인도하신다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전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는 몸에 이상한 증세를 느껴 진찰한 결과 귀국하여 시설이 좋은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고, 공항에 자신을 염려하여 나온 학생들에게 자신을 위해 공개적으로 기도를 부탁하였다. 그는 귀국하여 H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하여 있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많은 학생들이 기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일이 잘못된다해도 자신은 꼭 잘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거니 했다. 결과는 “급성 임파성 백혈병”. 치료의 순서를 따라 항암제를 투여하고 나니 뼈 속을 깎아 내는 듯 아파 왔다. 아무리 항암제가 자신을 괴롭히고 고통으로 몰고 간다 해도 자신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고난에야 비할 수 있겠느냐 생각할 때 주님의 은혜가 새롭게 기억나서 소리내어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주님 내가 무엇이 간대 나에게 이런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까! 저를 어떻게 사용하시려고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주님 저를 온전하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고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낙심 할 줄 알고 위로하며 우리가 함께 투병하자고 권하러 온 나를 무색하게 그는 오히려 내게 은혜를 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분명 자신을 사용하셔서 지금 보다도 더 크게 자신을 쓰실 것이라는 확신을 이야기 할 때 나는 감격스럽게 하나님의 임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맞습니다. 그래요! 김 재민교수님 당신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입니다.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요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이심을 믿습니다. 매일처럼 치료하고 고쳐 낫게 하시며 하나님의 평강과 성실함을 풍성하게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 다시 찾아간 오늘도 교수님은 어제 밤 비몽사몽간에 자신을 찾아 오셔서 두려워 하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라는 주님의 임재하심을 간증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