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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박남규 목사 수필모음/ 목마르거든(3)2022-08-06 00:47
작성자 Level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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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티켓이 여기에...

한 교우가 좀 난감하고 답답한 부탁이 있다고 연락을 했다.

무슨 일이기에 난감하고 답답할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참으로 궁금했다.

고향 친구의 이야기였는데 요즘 한참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일 이었다.

이야기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러했다.

그 아들은 군에 가려고 2학년1학기를 마치고 휴학계를 냈습니다. 2003년 입대하여 2005623일자로 만기 전역했습니다.

복학 준비를 하던 중 제대한지 한 달 이십 여일 만에 소화가 잘 안되고 아프다고 해서 동네 병원에서 위 내시경을 한 결과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신촌 S병원 응급실로 가서 절차를 밟아 검사를 했는데, 검사결과 위암 말기란 판정과 수술 불가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거기다 살수 있는 기간은 한 달에서 두 달이라는 의사의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신장이 190이 넘고 몸무게 98킬로로 입대하여 만기 전역한 아들이 두 달도 살 수 없다고 하니 그 말을 믿을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오진이길 바라며 실낱같은 심정으로 담당 선생님을 붙들고 사정을 했답니다. “이제 23살입니다. 수술이나 한 번 해보자.”고 통사정을 해 수술을 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을 만큼 진행되어 죽을 날만 기다려야한다니 이런 기가 막힐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들을 이대로 가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치료라는 것이 진통제만 의존하며 남은 시간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했습니다.

아비로써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더더욱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어디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감정만 앞서, “이 나쁜 놈들이 멀쩡한 아들을 군대에 데려가더니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울분이 치밀어 올라 잠을 못 이뤘는데 그때 생각난 사람이 변호사인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울분이나 법적 대응은 후에 할 일이고 먼저 아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 물었고 없다하니 그럼 내가 환자들을 돌보시는 목사님을 연결시켜 줄게 좀 기다리시게하고 실은 나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교우의 이야기를 듣던 나도 무언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다리는 보호자를 생각하니 그의 말처럼 참으로 남감하고 답답한 일이었다.

다음 날 병원으로 형제를 만나기 위해 방문했다.

수심이 가득하고 고통이 역력해서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 형제의 아버지를 만나니 자신은 전통적인 종가 집에서 자라왔고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돈만 쫓으며 오십 년을 넘게 살아왔다며, 그는 그게 인생의 전부인양 그렇게 살았다 했다.

그리고 아내가 교회를 간다고 할 때 두들겨 패서라도 아내가 교회 가는 것을 막았는데 목사님을 이렇게 목사님의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다 하며, 아들은 너무 힘들어해서 잠시 바깥 공기를 쐐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나갔다고 곧 돌아 올 것이라며 아들에 대해 묻기도 전에 피를 토하듯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조금이라도 일찍 정밀 체크만 되었어도 이렇게 억울하지 않겠다는 그 넋두리 앞에 숙여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아들이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병실에 들어오자 아버지는 언제 넋두리를 했냐는 듯이 금방 아들을 향해 조금만 참으면 괜찮을 것이고 곧 치료 될 것이라고 위로를 잊지 않는 것을 보게 되니 아버지의 깊은 정을 느끼며, 마음이 저려오는 짠할 아픔일 수밖에 없었다.

23살의 아들은 훤칠한 키에 야윌 데로 야위어서 광대뼈가 유난히도 튀어 나왔다.

청주 대학 2학년 환경 공학과를 다니다 군에 입대했는데 지금 그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겨우 겨우 부축을 받고 어렵사리 침대에 눕자마자 코에 박혀 있는 콧줄을 통해 위()에 고여 있던 응고 된 피들이 계속 썩션 통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물 컵을 내려놓은 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계속 일어나는 구토 때문에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조금 전 마셨던 물을 토해 내기 시작한다.

지금껏 수도 없이 보아온 광경이지만 이 아들을 보니 왜 그리 마음이 아픈지, 구토가 잦아지길 기다렸다 이 아들에게 계속 열심히 치료하도록 의사 선생님을 위해 그리고 이 고통이 잦아지기만 위해 위로하고 기도할 뿐 더 이상 아무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다.

한 달 동안 우리 봉사자들과 함께 열심히 이 아들을 섬기기 위해 병원으로 다녔다.

병실을 찾는 아픔을 느끼는 만큼 아들은 점점 기력을 잃어가고 더 이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주 토요일 오후 이제 겨울의 컴컴한 밤기운이 서서히 밖의 모든 풍물을 삼키기 시작할 때 눈도 뜨지도 못하고 계속 혼수상태 같은 아들을 향해 이제 죽음이 찾아 올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했다.

우리의 삶이란 이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또 하나의 삶이 있단다. 영원한 또 하나의 삶은 예수님이 네게 천사들을 보내실 때 시작 될 것이니 염려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하나님이 비추어 주시는 밝은 빛이 보이면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예수님만 의지하라고 듣지도 못할 것 같은 아들에게 권면할 때 갑자기 눈을 치뜨더니 숨을 멈추는 것이다.

깜짝 놀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 곧 아들은 가늘지만 숨을 뒤돌려 어리고 가느다란 몰아쉬기 시작했고, 점점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임종 할 것을 대비해 온 가족과 함께 마지막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아들을 하나님 손에 의탁을 들이고 돌아왔다.

하루를 넘길 수가 없을 것 같았는데 아들은 월요일 이른 아침, 지금껏 한마디도 하지 못하던 아들이 입을 열어 온 식구들이 다 들을 정도의 소리로 저 많은 천사들을 봐요, 저 천사들... 이제 나는 천국 들어가는 티켓을 받았어요! 그런데 나를 붙잡고 못 떠나게 하는 저 것들과 싸워야 해요.”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싸움이 끝났던지 얼마 후 너무도 아름답고 평안하게 떠나게 되었다고 아버지는 슬픔보다 흥분이 되어 아들의 임종을 알려 주었다.

이젠 믿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아들을 확신하는 부모에게도 이제 소망이 생겼다. 아들이 가 있는 천국을 위해 자신도 믿음의 삶을 살겠노라고...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브리서 114)

 

 

0602 와퍼 하나를 먹을 수 있다면...

우리 호스피스 사역 섬김이 열다섯 해 중, 섬기던 환자들의 남은 가족들을 열 두해 섬기던 사별가족 섬김. 이들을 섬기다 보니 팔년 전 아이들의 상실감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고, 이 아이들에 대한 아픔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랑의 울타리 사역이 시작되었다.

이 사역에 칠팔 명 형제자매들이 헌신을 약속했고, 그 중 와퍼를 하루에 한번이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 와퍼에 푹 빠져 있는 외교 쪽 전문인 자매가 지원을 했고 다른 지원자들도 그랬지만 사랑의 울타리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동역자 같았다.

이 자매는 밤에도 낮에도 아이들이 아픔을 호소하면 그 아이들과 함께 하며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정이 있었는데, 문제는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 소화불량과 빈혈 등으로 고생하는 자매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동역자로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문제였다.

어린 나이에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유수한 대학에서 짧은 시간에 학위를 마칠 정도로 유능한 자매였고, 그 나이에 비해 국가 외교에서 비중 있는 일을 맡아 처리하는 인정받던 미혼의 20대 후반의 자매.

삼년 전 어느 날 상담을 요청할 때 자매가 너무 바빠 사역을 포기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와는 달리 자기가 얼마 전 골수 기증을 서약했는데 일본에 있는 한 어린 아이가 자기 골수와 맞기에 기증을 하려는데 내 기도와 마음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무 건강이 좋지 않기에 생각 같아선 말리고 싶었지만 또 하나의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고귀한 뜻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겠다는 약속과 기도하게 되었다.

그 부모님도 참으로 훌륭하셨다. 한 아들을 입양하여 아들로 삼고 고통 받는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 같은 의학도와 결혼시켜 의사로서 그들을 돕게 하기 위해 파송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이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다.

낮에 병원에서 부부가 진료하고, 밤에는 아들이 혼자 무료 진료를 하다가 기독교를 전한다는 문제로 이슬람 사람들의 습격을 받고 아들이 허리가 부러지는 중태에 빠져 급히 독일로 후송이 되었다. 독일 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급히 독일로 가셔서 아들의 병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병간을 하시던 어머니가 몇 달 후 독일에서 급성 백혈병을 일으키시게 되었다. 어떤 골수도 맞질 안했다. 다만 딸인 이 자매의 골수만 맞아 시술을 하려다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일본에서 두 번의 골수 공여로 어머니를 위해 골수 체취를 하려면 한달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한달을 견디시지 못하고 이년 전 시월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이메일을 받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안타까워 할 말을 잃었다. 그 때 자매는 대통령의 외국 방문의 선발대로 참여했다 갑자기 독일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충격을 받고 귀국을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몸은 더 형편없이 여위어 있었고 심상치 않은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자매에게 폐렴이 찾아 왔다는 소식과 요양을 위해 자매 아버지 친구가 의사로 계시는 강원도로 옮겼다는 이메일을 받아야 했다.

찾아 가고 싶었지만 도대체 자기의 거처를 알려 주길 원치 안했다. 누가 된다고...

그리고 삼 개월이 지나 너무나 비통한 소식을 들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동안 나의 전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다만 문자 멧시지를 확인 했노라고.

그리고 얼마 후 자매의 아버지는 자매를 독일 병원으로 이송했고, 그리고 일년 후 그 아버지가 격리된 병실에서 소독된 종이에 딸이 나에게 연락을 해달라며 메모와 함께 잘 투병하고 있으니 염려 하지 말고 사랑의 울타리 위해 기도한다는 이메일을 보내게 되었다.

거기에 아버지는 딸의 상태를 이야기 하며 구년 전 자기 막내 이모가 만성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신장을 막내 이모에게 공여해 이모는 건강한데 자신은 지금 투석을 해야 되는 데 그 상황이 되었고 여의치 못하다고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다.

어린 나이지만 자매는 테레사 수녀를 존경하며, 인도의 그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해서 유엔의 세계 식량기구에서 앞으로 사역을 하며 인도를 섬기는 비젼을 나와 나누었는데, 지금 유엔의 식량 기구에서 함께 사역을 하자고 제의 받았지만 자매는 오늘도 힘들고 고통스런 독일의 병원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며 인도인을 위해 성경동화를 번역하여 인도에서 출판을 들어갔다는 소식과 며칠 전 날아온 이메일에는 와퍼 하나만 먹으면 병이 다 났겠다며 웃지만 더 건강이 악화되어 간다고, 그리고 나에게 자기 물건을 정리해서 보내 달라고 한다는 소식에 내 마음이 안절부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주여! 자매를 우리에게 돌려주시고, 우리 아이들의 비젼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치료하고 고쳐 낫게 되시는 힘이 되길 소원 합니다 눈물과 몸부림으로 기도할 뿐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0603 겉은 아무렇지 않아요

이 어른을 섬기로 갈 때마다 거의 7년이나 지난 오래전 기억을 더듬게 된다.

당시 32살의 아내와 5살 딸, 그리고 4살 아들을 두고 방광암으로 삼년을 투병하던 중 우리의 섬김을 받던 그 해 그 어르신은 아들을 그 가슴에 묻으셨다.

형제가 떠나간 후 그 아내와 아이들은 사별 모임인 주바라기 모임과 아이들은 사랑의 울타리 모임 안에서 삼년 동안 남편과 아버지를 떠난 보낸 상실감을 회복하기 위해 참석했다.

어느 날 자매는 나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다며 한 형제를 데리고 왔다.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오랜만에 참석한 동창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그리고 형제는 먼저 떠난 남편을 대신하여 자매의 시집에는 새로운 아들로서 살겠다고, 그리고 두 아이의 아빠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약속을 듣고 주례를 허락하였다.

그 어른도 며느리이지만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자신의 아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자신들이 소유한 꽤나 많은 재산을 손자들과의 삶을 위해 아낌없이 떼어 주셨다.

얼마동안은 이 새로운 가정은 자주 내 사무실을 다녀가며 그 어른들의 안부를 종종 전해 주더니, 헤어졌다는 이상한 소문과 함께 모든 가족이 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뭔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은 죄스러운 마음에 그 어르신을 댁으로 찾아 갔다.

며느리가 헤어졌고 아이들과 함께 외국으로 떠난다고 공항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어르신 자신이 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고 얼마 전 수술 받고 첫 번째 항암제를 끝냈다는 것이다.

왜 진즉 연락을 주시지 안했느냐고 여쭙기도 죄송스러웠다.

아픔을 간직한 채 어르신을 우리 환자 명단에 올리고 섬기기를 시작했다.

어른신은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어디인지를 모르는 외국에서 살고 있는 손자 손녀들이 보고 싶다고 눈물 바람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괜스레 소식도 없이 떠나 버린 자매에 대한 원망이 생겨 주례를 서 주었던 것에 대한 자책이 들어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마음이 졸여왔다.

그래도 그 어렵고 힘든 아픔을 믿음생활의 깊이로 잘 감당하시기에 자원 봉사자도 그 어른을 뵙고 올 때마다 오히려 위로를 받고 오게 된다고 보고를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도 영감님! 대단하십니다. 잘 감당하시는데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이젠 자주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소식과 함께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으로만 바뀌었다.

전화가 왔다. 서울에 있는 손자들이 어떤 경로로 연결을 했는지 모르나 S국에서 살고 있는 손자 손녀들하고 메일을 주고받게 되었고 할아버지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어린 것들이 할아버지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고 그리고 벌써 손녀가 중학생이 되어 자신을 만나러 나온다고 연락이 왔다고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것이다.

어르신은 그로부터 한 해 동안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아 안심을 했고 이대로 우리 섬김도 끝나길 바랐다.

항상 뵐 때마다 만면에 웃음을 머금으신 옛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는 가 싶으시더니 얼마 전부터 다시 그 분의 모습을 교회에서 통 뵐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어른을 찾아뵈었더니 겉은 아무렇지 않은데 영 속이 이상해 다시 무엇인가 잡히기 시작해서 체크를 했더니 재발이 되었되...” 헛웃음을 웃으시지만 갑자기 밀려오는 공허함이 엄습해 와 힘을 쭉 빠지게 했다.

다시 항암제가 투여되고, 음식을 통 먹을 수가 없다며 하시는 말씀이 겉은 아무렇지 않아요, 그런데...”말씀은 하시지 못하지만 다 이해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그리움을 볼 수 있다.

그 집을 돌아 나오며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의 심정을 통해 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죽음으로 우리와 맞바꾸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어르신 강건하십시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강건하시고 빛난 몸을 입으신 것처럼 겉만이 아닌 모든 것이 어르신에게도 그렇게 되실 줄을 믿습니다.” 축원을 드린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한복음 1724)

 

0604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여인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분명 벨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주며, 여보 지금 왔어 춥겠다! 하며 대문을 열었더니 갑자기 찬 바람만 확 들어오데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누군가 여보 여기 자리 있어 앉아! 하는 순간 눈을 돌려 창문 밖만 바라보고 내릴 때까지 한번도 그 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고 내렸지

나는 한동안 집에 들어가기가 싫고 혼자 있으면 너무 무서워 조카들을 들였더니 이제 조금 낫기는 한데 아이들을 챙겨야 하니까 또 그것도 자유롭지 못하고...”

남편들이 암이라는 질병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후 2년 미만 된 자매들의 모임인 주바라기 모임이다.

세상만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자고 이름 붙인 이십 육 명이 모인 모임이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다 오늘 주바라기 식구 중에 32세 된 이 모 자매로 모여졌다.

지난 8월 말경 잠을 자던 남편이 심장마비로 준비되지 못한 급작스런 부름을 받게 되었다.

남은 가족은 당시 31살인 이 모 자매와 4살과 15개월 딸 이렇게 세 식구가 남았고, 지난 연말 둘째 딸 아이가 자꾸만 구역질을 했다.

이때 만해도 갑자기 보이지 않는 아빠가 그리워 문 여닫는 소리만 들려도 두 딸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야 아빠다!” 라고 소리 지르며 안방에서 마루로 뛰어나가던 딸들, 이 급변한 환경 때문에 예민하여 져서 자주 체 한다고 동네 병원에서는 소화제만 처방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토요일 갑자기 경기를 하고 구역질을 하니 종합병원에서 MRI를 촬영하고 나서야 아이의 숨골을 누르고 있는 큰 종양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숨골을 누르고 있던 종양이 계속 자랄 것이니 아이에게 너무나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급히 S대 어린이 병원으로 이송을 하고 당일에 바로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실로 찾아간 나에게 아이의 엄마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눈물까지 말라버렸다고 그리고 수술은 잘 되었다는데 너무 위험해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것이 걱정이라며 금방이라도 쓸어 질 것 같은 핏기 없는 얼굴의 창백함을 보고서도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답답함이란 뭐라 표현할 수 없이 막아 서버린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자나 머리에 붕대로 엮은 모자를 쓰고 가느다란 호스를 머리에 꼽고 계속 칭얼대는 아이를 병실에서 만났다.

아이쿠 얼마나 고생했어?” 하며 손을 내밀어 아이 팔을 쓸어 주자 금방 자지러지게 울어 대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내가 잘 못하여 어디에 꽂혀있는 주사 바늘을 건드렸나? 하는 놀라움을 갖고 있을 때, 엄마가 말하길 아이가 수술과정과 치료 과정에서 계속 맡는 주사로 인해 누군가 자기 몸에 손만 대도 놀라고 무서워서 이렇게 울어 댄다는 것이다.

이런 어린 딸의 고통을 보아야 하는 젊은 엄마, 3-4개월 전에 남편이 자기 곁을 떠나 하나님께 가버렸어도 그 애도나 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새로운 고통 가운데서 눈물도 말라버려서 흘리지 못하는 가련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수술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 치료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남편의 직장에서 산재처리라도 되면 한결 나을 턴데 그나마도 남편 직장에선 산재 처리 불가라는 판정을 내렸다니 정말 막막함을 이런 때 쓰는 단어 같았다.

부랴부랴 몇 몇 지인들과 호스피스 팀에 파발마를 돌리고 이 가정을 위한 중보를 부탁했다.

얼마간 모아진 적은 액수지만 병원비로 보내고 한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갑자가 자매가 전화를 했다.

그동안 연락 두절 상태가 지속되었기에 너무나 반가워 아이의 형편을 물으니 갑자기 통곡하는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리더니 자매는 어떻게 해면 좋으냐고 아이의 지난번 제거한 종양 중 남아 있던 부분이 다시 크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하다.

왜 나는 이런 일을 감사함으로 섬기게 해달라고 기도했던가.

다시 한번 주님의 긍휼하심을 부르짖으며 사랑스런 아이의 온전한 투병을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기에...(로마서 828)

 

 

 

 

 

 

 

 

 

 

 

0605 수연이를 향한 벚꽃 향연

신경모세포종.

일반적으로 듣기에도 생소한 병명이다.

6살 이 딸아이를 우리에게 소개한 사람은 얼마 전까지 간호사를 하였지만 교회생활은 아직 해보지 못한 그러나 교회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아이의 엄마였다.

한번 회복이 된 듯하여 너무 기뻐했었는데...... 아이가 일어서질 못해요. 그래서 병원에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갔더니 왼쪽 다리뼈로 전이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병원이라며 찾아와 도움을 줄 수 있냐며 아이 앞에서 참아보려 애쓰는 울음소리,

말을 이어 가지 못하는 전화 저편의 상황을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S병원 준 중환자실에 들렸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처럼 귀엽고 예쁘기만 해야 되는 때,

머리칼 한 올 없는 쪼그맣고 둥근 머리, 천정 형광등 빛에도 반사되는 머리, 어른 침대에 반쪽만 차지하고 누워 항암제 부작용으로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그 고통으로 계속 칭얼거리는 아이, 자기 나이보다 훨씬 자그마해서 보기에는 3살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고 침대 옆에 서있자니 뭐라 표현하기 힘든 아픔이 그간 얼마나 힘든 투병을 했을지 가슴을 헤집고 지나간다.

엄마는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교회 목사님이 우리 수연이(가명) 아프지 말라고 기도해 주러 오셨네...” 말하지만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괴롭고 귀찮을 뿐 이었다.

돌아눕지도 않고 침대 난간을 붙잡고 엄마 아파!, 아이 아파!, 엄마 으윽 토하고 싶어!” 아이의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듣는 나는 아이에게 날 돌아보라고 하는 엄마의 주문이 너무도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 그냥 그대로 두세요!” 말을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몸은 항암제를 하고 다리에는 그동안 방사선도 하다 보니 피부는 검게 되어 도무지 아이 피부 같지 않다.

왜 하나님은 이 아이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셨을까?

의문이 나지만 그동안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가정이 이일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의지하려 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보면서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는 예레미야서 332절 말씀을 기억하며 이 아이에게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께 이 아이를 맡기며 섬기기로 했다.

아이와 엄마를 만나고 3개월, 6개월이 지나도록 계속 되는 항암제와 방사선과 퇴원과 입원의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투병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고난의 행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난이 크고 고통스러운 만큼 가족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점점 수연이를 하나님의 품에 맡길 준비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음에 위로를 고백하기 시작하며 아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 보다 하나님 품에서 완전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음에 소망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로마서 817-18절의 말씀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苦難)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바꿀 수 없도다란 말을 기억하고 그 말씀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지 않는 영정 사진 아래에서 딸을 하나님께 맡기는 천국 환송 예배에서 엄마와 아빠의 고백이 되었다.

수연아! 먼저 가 있어 조금 있으면 엄마도 아빠도 우리 모든 식구가 하나님과 함께 만나자!..... 그리고 거기에서는 헤어지지 말고 영원히 함께 살자. 엄마 울지 않고 수연이 위해 잘 참을게......!”

오늘 눈부신 햇살아래 흰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 잎의 향연이 수연이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의 손짓이리라.

0606 천국에서 온 스승의 문자메시지

벌써 천국에 도착했네. 생각보다 가까워. 내가 가까이 있으니 너무 외로워하지들 말어...”

지난 12일 밤 10 52, 대전의 목원대 사회 복지학과 조교와 학생 10여명은 문자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발신인은 오랜 암 투병 끝에 사흘 전 눈을 감은 고()심 재호 교수.

이 내용은 모 일간지에 실린 내용이다.

우리에게 심 재호 교수가 소개되어 환자 명단에 오른 것은 지난 3월 중순이었다.

둘째 조카사위라고 소개하던 집사님은 아직은 젊은 43살의 사회복지 전공 교수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다는 그 안타까움이 마음에 와 닿는듯했다.

대장에서 간으로 그리고 복부 전부에 다 퍼져 버린 암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투병을 하고 있다는 소식만 갖고 병원을 찾아 갔다. 병원에 찾아 갈 때만 해도 대전이 집이기에 그 곳에 있는 교역자가 쉽게 찾아오긴 쉽지 않은 곳이기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자는 뜻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 너무도 당당한 환자와 그 젊은 아내를 보고 묘하게도 이 사람들을 이렇게 섬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들은 그 중병 앞에서도 너무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아는 귀한 믿음의 가족들이었다.

심 교수는 사회복지과 학생 사이에 친형이나 다름없는 인기 짱이었다. 학생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스스럼없이 다가가 믿음의 본을 보여 주기도 했고,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참여했다고 했다. 이런 심교수가 지난해 9월 갑자기 강의를 하던 중 너무나 몸이 좋지 못해 수업을 중단하고 학생들을 돌려보낸 것이 학생들과의 마지막 이별이 되었다.

이런 그의 이력 때문이었을까 처음 본 나에게도 자신의 몸의 상태를 이야길 할 때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인공항문도 보여 주고 상처 부분들을 그리고 몸에 꼽혀 있는 주사바늘들을 세어가며 설명하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우리 봉사자들이 그를 만나고 오면 오히려 자신들이 심교수 때문에 섬기로 간 것이 아니라 위로를 받았노라고 할 정도로 그의 상황은 너무도 아니올시다인데도 그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고통에도 멋지고 아름답게 여유로운 투병생활을 해 나갔다.

통증이 찾아와 잠을 도통 이룰 수 없다고 하소연할 때도, 너무나 참기 힘든 통증 때문에 강한 통증 조절로 인해 몽롱한 잠에 취해 있을 때도 그는 좀처럼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예수님 때문에 감당할 수 있다는 투병을 위한 고백을 하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남편의 그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 또한 남편 못지않은 믿음으로 투병하는 남편을 소망 가득한 얼굴로 간병에 헌신하는 그 아름다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도 심 교수에게 다음을 약속하고 병실을 떠나 올 때 항상 문 밖으로 나와서 남편의 병이 점점 중해진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점점 무너져가는 아내로서 아픔을 눈물로 찍어 낼 때 무어라고 위로하기에는 너무나 여리고 연약해 보여 병실 안에서의 그 담대함을 위해 얼마나 많은 아픔을 참아야 할까 생각하면 표현하기 힘든 고통을 볼 수 있었다.

지난 58, 점점 의식이 흐려지는 심 교수의 손을 잡고 애타던 아내의 애절함 속에서 후일 천국에서 다시 만남을 위한 헤어짐 속에 그 아내는 제자들이 심 교수의 휴대전화에 많은 격려의 문자 메시지와 애도를 읽으며 장례를 마친 후 심 교수 연구실 조교의 자매에게 온 문자 메시지에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고 답장을 보내게 된 것이다.

교수님 평안히 가셨을 것을 믿습니다이 문자 메시지에 벌써 천국에 도착했네. 생각보다 가까워 네가 가까이 있으니 너무 외로워하지들 말어...” 답장을 보내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믿음의 고백이 헤어짐이 아니라 잠시 기다림을 위한 영원한 생명을 믿기에 드려지는 아름다운 위로요 고백임을 확신하며 아름다운 섬김은 치료를 위한 섬김보다 그저 함게 있어 줌으로 오는 회복을 위한 동행이었음을 기억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

0607 눈물을 빌려 주세요

오늘은 아이가 힘이 하나도 없이 추우욱 늘어져 잠만 자네요...!

하루하루 아이의 상태를 묻지 않고는 마음에 큰 숙제를 남겨 놓은 것 같아 꼭 안부를 물어야 된다. 안부 대상자는 우리 일백여명의 환자들 중 가장 나이 어린 뇌종양 21개월 된 아이.

지난 해 여름, 아이 아빠가 잠을 자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자, 31살의 젊은 엄마에게 닥친 시집식구들의 의혹이란 따가움 속에 그 아픈 슬픔을 다 삭일 수 있는 여유도 없이, 경기하는 아이를 안고 급히 찾아간 병원에서, 악성 뇌종양이 두 군데나 발견이 되었다.

1차 수술을 하면서 모든 종양이 다 제거 될 줄로 알았다.

그러나 수술 후 집도의사는 안타까워하며 말하길 90%는 제거했지만 10%를 제거하지 못했다며, 10%는 숨골 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시간을 두고 기다려 보자고 했단다.

사 개월이 지나자 그 조그마한 뒷머리에 거의 10cm 이상 길게 뻗은 흉터를 피해 작은 달걀만한 종양이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했을 때 어찌 그리 어울리지 않는 것이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자기의 존재를 보란 듯이 알리려 노력하고 있는지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시간이 흐리며 종양이 자라가자 뇌압이 올라가고 아이는 점점 머리가 아프다고 머리를 양손으로 잡아 뜯으며 머리를 방바닥에 대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한웅큼씩 그 연한 머리칼을 뽑아 놓아 엄마의 눈에 눈물을 하염없이 흐르게 만들어 놓는다.

아이는 병원에서 처음 수술 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고통스러움을 기억하고 있는지 택시만 타도, 흰 가운만 보아도, 집에서 물건을 챙겨들고 자기를 업고 나가려만 해도 아이는 겁을 집어 먹고 벌써 소리 소리를 다해 끊을 수 없을 것 같은 울음을 터뜨리고 보는 것이다.

병원을 가기 위해 잡아 탄 택시는 결국 중간에서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번번이 벌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21개월의 아이 맘을 다 헤아릴 길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

이럴 때는 아이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전화를 한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려다가 너무나 울어버려서 뇌압이 더 올라 갈까봐 도저히 갈 수 없어 돌아왔다고 그리고 그 아픔을 소리죽여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을 때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무능함에 답답함을 느낀다.

갑자기 아이가 눈을 뜨지 못하고 발이 접히고 일어서지를 못한다고 연락이 왔다.

올 것이 왔나?

서둘러 응급실로 아이를 데리고 가보니 아이는 탈수 증상이 와서 그렇다는 것이다. 병실에 있을 때 아이는 맛 좋은 과자를 손에 들고 맛을 보지만 먹히지도 않고, 먹을 수 없기에 짜증스럽게 과자를 던지던 아이가 생각이 났다. 얼마나 먹고 싶을까? 그러나 마음 같지 않게 먹을 수 없는 아이의 입맛을 어떻게 하면 돌려 줄 수 있을까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가 갑자기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나서 상태가 좋아졌다.

잘 놀고, 잘 웃고, 그리고 전혀 아픈 것과 상관이 없는 목소리로 하나님과 함께 살겠다고 엄마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를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 같다며, 차라리 감사하다고 한다. 자신보다 더 아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자기 아이를 이렇게 아프지 않게 또 밝은 목소리로 아이를 돌봐 주실 것을 믿기에 하루하루를 더 잘 감사하게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내가 훈련을 시키고 있는 교회 집사님들에게 이야길 들려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엄마를 위해 기도부탁을 했다.

훈련생들은 얼마나 애통함으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정성스럽게 이름도 밝히지 말아달라며 아이의 구좌에 투병에 도움이 되었음 좋겠다고 마음들을 쏟아준다.

아이 소식은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엄마를 대신하고, 아이를 대신할 눈물이 되어 오히려 하나님이 자기를 위로해 주신다고 감사하는 믿음의 아이 엄마의 눈물을 대신 빌려 흘려 주고 감사만을 남겨 주는 따뜻한 위로자가 있어 오늘도 우리는 행복한 사역을 감당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3,4,7)”

 

 

0608 목사님의 딸 투병기

지난 이월이 날개를 접고 삼월로 넘어가려는 때,

대학부에서 리더로 섬기고 있는 딸아이가 부탁이 있다며, 매년 여름과 겨울 농활을 가서 알게 된 교회 자기 동생뻘 되는 목사님의 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20살의 아름다운 나이에 백혈병이란 병으로 투병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는 것이다.

딸아이의 부탁도 있지만, 시골에서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목회하시는 목사님과 그 가족의 아픔과 그 교회는 어떨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와 가르쳐준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딸의 상태를 여쭈었다.

처음에는 당황하셔서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셨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특별히 열악한 농촌 목회를 하는 입장에, 처음에는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백혈병이란 고통을 받는 것도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데 자신의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의 반응이 과연 어떨까도 염려가 되었었다고 말씀하셨다.

목사이기에 그 가족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많은 사람들은 긍휼과 안타까움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냉소적이고, 점점 더 악성 루머를 만들어 퍼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기에...

그러나 그동안 목사님의 성실하신 목회가 하나님과 동네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성스러웠던지 농촌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인정을 많이 받으셨나보다.

비난하고 고소해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동네 많은 사람들은 목사의 딸이 어려운 병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십시일반 농촌에서는 꽤나 큰 금액을 모금하여 목사님께 드리며 딸이 속히 쾌유하길 소원했단다.

병원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질문하시기에 그동안 십 수 년 간 섬겼던 환자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해 드리니 목사님은 흡족해 하시며 자신을 갖게 되셨다며 모든 불안에서 평안을 찾게 되셨다고 했다.

목사님의 딸을 방문하려 했지만, 아직은 무균실에서 좀더 격리가 필요한 상태이기에 찾아 가는 것은 뒤로 미루고 먼저 섬길 수 있고, 중보 기도할 수 있는 팀으로 편성했다.

한편으론 적십자사와 연계해서 이 딸을 위해 성분헌혈(헌혈 중에 특정 성분만을 위해 하는 헌혈)을 요청하는 포스터를 붙이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도들이 줄을 이었다.

일차 관해(몸에 암세포 없도록 하는 조치)를 위해 과연 이 딸이 얼마나 잘 견디어 줄까? 염려는 했지만 모이는 대학부와 호스피스 그리고 내가 지도하는 사역반 등등 여러 곳에서 기도하며 어려운 상황을 하나, 하나 짚어 가며 간절히 중보 기도했다.

기도할 때마다 올랐던 열은 내리고, 위험한 고비 고비 마다 잘 넘기고 있다는 소식을 받으며 더욱 열심히 딸을 위해 기도했다.

삼십여 kg 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고통의 시간 들었을 것이나, 이 딸은 너무도 잘 감당하고, 123차 관해를 너무나 잘 감당해 나갔다.

마침 중간에 퇴원하는 기회가 있어 집으로 딸을 찾아 갔다.

넓은 마스크에 온통 얼굴을 가리고 가능한 멀찍하게 떨어져 말씀을 나눌 때, 나는 자매의 연약함 속에서 강렬한 삶의 의욕과 치료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볼 수 있었다.

함께 기도할 때, 자매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간절함으로 다가서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전해주는 물질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딸이 확신 있는 투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치료자가 되시는 것을 믿는 믿음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 같은 현실 속에서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 분인 것을 알아가야 하는 것이다.

치료의 속도는 빨랐다.

이제 마지막 다지기를 통해 완치되었습니다!” 라는 판단 만을 기다리는 귀한 따님에게 더욱 강건함을 축원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11435)

0609 “어머! 잠을 자고 있네요!”

이 달 초, 뇌종양 수술 후 얼마간의 시간을 끌어 줄지 알았던 아이, 우리 마음에 섧도록 기도하게 하던 24개월의 아이를 주님 품에 안겨드렸다.

떠나기 전날, 병원에 찾아간 날 보더니 눈물도 흘리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입을 삐쭉거리며 어린양하는 것처럼 울음을 우는 시늉을 하던 아이, 이제 눈에만 어렴풋하다.

 

작년 여름 아빠가 갑자기 잠을 자다 심장마비로 곁을 떠났어도 아이는 아빠를 찾지 안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부터 아빠를 찾고, 그 아빠가 자기 곁에서 함께 있다고 했다. 이제 32, 새댁 같은 아이 엄마는 자꾸만 불길하다고 아이가 자기 곁을 떠날 것 같으냐고 묻고 또 물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여 11개월 밖에 되질 안했던 아이가 기억을 한다면 얼마나 하나 싶어 아무렴 잘 기억도 나질 않는 아빠를 찾겠냐?”며 마음 한 구석에 아련한 아픔 갖고 위로했다.

그런데 아이는 더욱 확신 있는 몸짓으로 아빠를 찾고 손가락을 가리키며 아빠의 존재를 자꾸만 엄마에게 확인 시켜주려 노력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아빠를 찾나 싶어 확인하던 중 아이가 아빠라고 말하던 분은 아이 곁에 찾아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너무나 아픈 고통 속에서 가질 수 있는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었다. 어린 딸아이가 겪는 투병의 고통이란 늪에서 모든 것을 평안으로 책임져 주시길 원하시는 그 사랑으로 인해 엄마는 위로가 되었다.

이 이야길 듣던 우리 봉사자들에게도 참으로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었다.

 

졸지에 남편을 떠나보낸 지 3개월도 안되어 아이가 뇌종양이란 판정을 받고, 수술할 때 숨골을 누르는 종양은 너무 위험한 부위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남겨 둔 10%의 종양이 다시 예전 크기보다 커진 상태로 재발이라는 가장 고약한 상태를 맞을 때도 왜 하나님은 나를 괴롭게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할 줄을 모르던 엄마였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런 어려운 일에 내몰려쳐진 자신을 돌보아 주신다고 믿음을 고백했고, 정말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확신하였기에 우리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어떻게 어린 엄마가 그렇게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지 칭찬이 자자했다.

 

아이가 위급하다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길이 왜 그리도 오래 걸리던지, 그동안 수많은 사연들이 줄줄이 흘러갔다. 병원에 도착해 아이가 있는 중환자실에 들어가니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중환자실 아이가 누워 있던 침대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수도 없이 흘리고 싶었던 딸을 주님께 맡겨야 되는 마음이 눈물이 되어 이제야 터져 버렸는지 애통하는 모습을 차마 그냥 둘 수 없어 할 수 있는 대로 몸을 감싸 안아 주었다.

얼마든지 마음 놓고 울어버리도록... 한참을 울던 자매는 아이의 그 하얗고 예쁜 작은 발을 부여안고 마음은 하나님 우리 딸 받으셨죠 하지만 그 발을 놓지 못하는 엄마의 눈물이 너무 커서 어찌해야하나 하다, 아이의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금방이라도 그 애교 섞인 목소리로 엄마!”하고 불러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갖고 있던 전자수첩에 있는 카메라를 꺼내 너무도 평안이 잠들고 있던 아이를 촬영했다.

그리고 그 엄마를 향해 이 사진 좀 봐요하며 촬영된 사진을 보여 주자 애통하며 흘리던 눈물을 눈가에 달고 사진을 보던 엄마는 ! 우리 아이가 너무도 평안히 잠을 자고 있네요!” 하더니 그렇게 놓을 것같이 보이지 않던 부여잡았던 발을 풀어 주며 아가! 잘 가 있어 엄마도 곧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 서서히 체온이 식어가는 아이의 몸을 담당 의사선생님께 맡기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국환송을 위해 모인 마지막 새벽,

마지막 찬송을 부를 때 난 찬송가 88장을 부르자 했을 때, 엄마는 아이가 힘들어하던 그날 하루 종일 불러 주었던 곡이라며, 끝까지 우리를 버려두지 않게 하신다던 그 약속을 주님이 이루셨다며 감사해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 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편31-3)”

 

 

 

0610 호스피스 사역은 하나님의 선물...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건강한 사람들을 위해 사역을 하는 사역자로 만족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특별히 소외될 수 있고, 낙심할 수 있는 불치병이라는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 편이 길 원하시는 뜻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환자 곁에서 20여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 말하기 힘든 고민이 찾아 왔고, 왜 나는? 이란 질문을 하게 되었다.

호스피스 사역을 시작한지 15년의 세월을 달려오며 그동안 수많은 내 마음에 벅찰 정도로 아름다운 봉사자들을 참으로 많이 만났었다.

그 중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역을 함께 지켜오는 꽤나 많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봉사자들이 여전히 지금도 최선을 다해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섬기고, 우리 호스피스 사역을 섬기고 계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봉사자들 중 우리가 섬겨야 될 환자들이 생기는 것이었다. 봉사자를 환자로 섬겨야 되는 나 자신만이 아니고 다른 봉사자의 마음도 똑같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아픔을 가졌지만 그래도 그분들이 투병에 성공하여 다시 봉사자로 섬기기 위해 회복하시고 복귀할 때는 너무 감사하고 모두 승리한 것처럼 축하할 수 있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러다, 요즘 우리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계속 마음 졸이며 안타까워해야 하는 분들이 하나, ... 늘어나면서 해결되지 않는 아픔을 갖게 된다.

지난 모임 때,

계속 투병 중이시던 권사님이 참석하셨다. 그동안 항암제, 방사선을 넘나들며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찾은 주치의 앞에서 치료 실패라는 듣지 말아야할 말을 듣게 되었고 오늘 자신의 얼굴이 덜 상했을 때 우리들이 보고 싶어 나왔다는 고백을 들을 때, 며칠 전 수술을 했지만 너무도 당당하시던 집사님이 오늘 너무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고통을 호소할 때, 또 한분의 권사님이 악성 뇌종양으로 치료가 불가능이란 결과 앞에 나는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지금 이들의 아픔을 어찌할 수 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터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통곡이 봉사자들 앞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하여 나는 다른 목사들 같지 못하고, 매일 보고 듣고 만나는 일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고통의 아픔을 부르짖는 소리와 그런 사람들만 만나야 되는 것이지... 왜 나는 이분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으면서도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인지... ? ?” 라는 질문만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의식적으론 이것은 아니다. 이러면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눈물은 흘러나오는지......

겨우 겨우 진정하고 모임을 마무리 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은 나를 향해 권사님 한 분이 닥아 오셨다.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니 오늘 다시 호스피스 봉사자 인 것이 새삼 새로워 졌다고 말씀하신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사역을 하고 있는 나는 너무나 행복한 사역자가 아닌가! ? 라고 질문하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왜 잠시라도 혼란스럽게 했을 까? 내가 이정도 아플 때 우리 주님은 얼마나 더 아파하실까? 연약해진 나를 다시 세워주는 동역자들께 더 큰 사랑의 감사가 솟아났다.

그래 누가 이일을 하라고 해서 했던 일도 아이었지 않았던가, 오직 주님이 내 마음에 기쁨과 감사를 주셔서 시작했던 일 아닌가?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봉사자들과 15년을 넘게 이 사역을 이끌어 오시게 된 것이 나에게 주신 가장 멋진 선물이 아닌가! 그것만이 아니고 새로운 비젼을 주셔서 또 전인치유쎈타를 통해 환자들을 더 잘 섬기도록 땅도 허락하셨으니 이루실 날에 대한 감사도 기다려야지...” 다시 한번 하나님의 선물에 감사하는 섬김을 다짐한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라(요한복음 1511)”

 

 

0611 이제 하나님께 올릴 감사의 찬송을 준비해야지

저서: “절망 끝에서 발견한 감사

얼마 전, 한 병원의 원장님은 자신의 병원에 근무하시는 40세가 된 마취과 과장이 백혈병이 되었다는 것과 설상가상 폐렴이 와서 고온에 시달리며 환자가 병의 예후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또 투병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투병 의욕을 버리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말씀하시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원장님과 통화를 하며 뭔가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알려주신 환자 어머님과 전화를 시도했다.

모든 병원의 중환자실은 출입이 상당한 통제를 받게 된다. 그 중 S병원은 그 중에서도 중환자실 출입이 참으로 까다로운 병원이다. 1030분부터 11시까지만 가능하고 또 밤에 7시에 가능하다.

환자 어머니와 통화를 시도한 시간이 1030분이니 오전 중환자실 출입은 당연히 어려울 것 같아 저녁 출입 가능 시간에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환자 어머니는 지금 급하니 지금 와 주길원하셨고 또 간절히 부탁을 하신다.

갑자기 마음에 깊은 감동과 함께 나의 대답은 알겠습니다! 지금 최대로 빨리 달려 가보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고 시간을 보니 1037.

최대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도로의 정규 규정 속도를 조금 무시하고 달려가고 있는데 모든 신호등도 나를 위해 작동하는 것 같이 계속 파란 불로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달려 병원 중환자실에 도착하고 보니 1055.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모든 보호자들이 다 병실에 들어가고 없으니, 중환자실 규정에 환자 일인 당 2명의 보호자 밖에 들어 갈 수 없는 규정을 알기에 조금은 비굴해 진다해도 경비에게 부탁을 해보려고 환자의 이름을 말하였더니 보호자가 일인 밖에 들어가지 안했으니 들어가도 된다는 것이다. 조금은 이상한 일이지만 어떻게든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나로서는 너무나 왜 이럴까? 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 벌써 손을 알콜로 소독을 하고 간호사의 안내로 환자의 침대에 가보았더니 보호자가 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동생 두 명이 벌써 그 안에 있음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 자매에게 간섭하신다는 확신이 왔다.

자매에게 나를 소개하자 아주 힘들게 눈을 뜨더니 조금 멀리 떨어져 쳐다보고 있는 날 향해 무표정한 표정을 짓더니 원장님 소개와 교회 목사라는 사실을 알고 내 손을 잡고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간절함으로 하나님이 자매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과 예수님과 함께 투병을 할 수 있기를 주문했을 때 자매는 산소 호흡기 등으로 말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나의 기도를 다 따라 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투병을 약속하였다. 알지 못하는 평안이 몰려 왔다.

무엇인가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것을 확인하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병실의 환자를 돌아보고 돌아와 왠지 기분 좋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삼일 후, 너무나 놀랍게도 자매는 일반 병실로 나왔다.

한 주간이 흐른 후 다시 자매를 찾아 갔다.

병실은 일 인실 이지만 소독을 하고 찾아가야 하는 면역력이 아주 낮은 상태이니 감염에 주의하며 마스크와 소독을 하고 병실 침대 가까이 갔다.

박 목사입니다!”라는 인기척에 자매는 그 많은 주사약 줄이 목에 걸려 일어나기도 어려운데 누워 있어도 괜찮다는 나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무릎을 꿇고 앉아 나가 전할 말씀과 기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매는 처음 나를 만난 날 자기는 지옥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무서워하고 있을 때 나를 만나게 되고, 내 기도처럼 자신이 평안을 찾았고, 기도 내용대로 이렇게 회복을 맛보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했다. 어느새 믿음이 이렇게 급성장했나! 감탄했다.

자매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차도를 보이고 있더니, 오늘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에 퇴원을 해도 좋다고 하네요!” 너무나 감사한 말이다.

퇴원하는 것이 완전히 치유되어 나가는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간섭함이 여기까지 왔다면 앞으로 이 자매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받을 것을 믿으라하신 히브리서 116절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이제 하나님께 올릴 감사의 찬송을 준비해야겠다.

 

 

 

0701 실수까지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은혜

그 환자를 알게 된지 벌써 두해가 지났다.

시간을 정해 놓지 않고 함께 말씀도 나누고, 힘든 자신의 처지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며 너무나 열린 마음을 갖고 있던 환자였다.

그런데 투병을 시작하고 한달 정도가 지나자 환자는 이런 저런 핑계로 우리의 방문을 미루고 찾아가는 것을 점점 반겨하지 않더니 급기야 거부하게 되었다.

환자들 중 투병을 시작할 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느 시기가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낙심이 찾아오고 투병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며, 가족들에 대한 묘한 죄책감 같은 감정이 형성되어 간호나 진료 자체를 거부하고 그러다가 결국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되고 상황은 환자나 가족들 그리고 봉사자들 모두에게 어려워진다.

보통은 환자들이 겪는 하나의 통과의례이기에 우리는 조금은 떨어져서 투병의 두려움들을 이겨내고 또다시 적극적으로 투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혜라 믿기에 그때를 기다리며 조금은 간격을 두고 섬김을 계속한다.

그런데 이 환자는 예상과는 달리 봉사자나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밀려들어 오는 다른 환자들에게 산경을 쓰다 보니 서서히 나의 기억 속에서 이 분을 지금 꼭 섬겨야 한다는 것에 대해 무뎌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그렇게 거리낌 없이 자신의 병에 대해서도, 자신이 치료가 되지 못해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두려움 없이 그 부르심에 응하겠다고 하시던 당당한 믿음 좋은 집사님이었기에 우리 모두에게 부담스럽지 않던 분이었지만, 지금은 믿음도 어떤 섬김도 그저 거부하기에 바쁜 나약하기 그지없는 그런 환자 일뿐이었고, 만나 뵙기는 해야 하는데 하는 막연히 환자 명단에 계시는 그런 부담스러운 분으로 남아있었다.

가끔 교회 마당에서 주일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만나 그 남편의 근황과 안부를 전하는 부인 권사님도 거부가 점점 심해지는 남편의 형편에 대해 걱정만하고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쉬다 잠깐 같이 기도하고 돌아가시길 두해가 다 지나 갔다.

이러다 보니 환자는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려 할 때쯤 폐암의 주 증상인 호흡에 이상이 오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져 Y병원에 입원을 하셨다는 것이다.

병실을 찾았다. 코에 끼어진 호흡기의 도움이 없다면 호흡도 너무나 힘들어하시는 집사님, 거의 두해 만에 만나고 보니 그동안 그렇게 거부하던 것 때문에도 그리고 몰라보게 그 변해버린 병색이 완연한 외모 때문에도 서먹서먹했다.

그때 처음 만났을 때 나의 실수가 생각이 났다.

환자를 소개하던 분이 버클리를 하고 계신다는 말만 들었는데, 나는 오버하여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대학에서 공부를 하셨던 분이라고 혼자 생각하여 예전에 내가 그 곳에 있을 때 이야길 하며 어디에서 얼마나 살다 오셨냐? 또 무엇을 전공이 하셨냐? 계속 이상한 질문을 해대니, 본인들 가게 이름이 버클리였을 뿐이었고, 그 곳에는 가본적도 없다고 하실 때 나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다른 이야기로 그 황당한 시간을 모면했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던 환자도 웃고 나도 웃고 나니 서먹서먹함도 겸연쩍은 감정도 사라지고 다시 처음 만나 안타깝고 힘든 투병에 대해 이야기 하던 시절로 돌아 갈 수 있었다.

환자는 자신이 두해동안 거부하던 때를 이야길 하시길 너무 힘들었지만 도저히 자존심이 가족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자신의 약함을 보이고 싶지 안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이었고 이제라도 남은 시간을 모두에게 편안함으로 함께하고 싶다고 하셨다.

정말 그 후로 삼 개월은 가족이나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되었다. 만날 때마다 서로 격려하고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 때문에 행복해하고,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있음으로 믿음으로 인해 기대되는 이 시간을 감사할 수 있기에 그 감사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해 하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실 땐 처음 믿음처럼 다음에 그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시며 나의 손을 잡고 마지막 찬송을 들어 주시던 분을 위해, 실수투성인 것까지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오늘은 더욱 그 분이 기억이 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다서 120-21)”

0702 아름다운 봉사자의 투병기

폐암 4기라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난 후 자신에게 공장이 하나 생겼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 공장인지 궁금했는데 그것은 바로 눈물 공장이었다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 이야기 하려고 만하면 눈물이 나서 대화를 이을 수 없게 되었다 했다.

심한 허리 통증으로 1년간 척추 협착 디스크 치료를 받았는데 친구들은 그의 걸음걸이가 노인 같다 하며 걱정을 했는데, 한 병원에서 진찰 결과 그의 병이 파킨슨이란 결론이 났다.

그런데 그의 체중이 몇일 사이에 7kg이 줄어 혹시 하여 종합검사를 받은 결과 페암이란 결과가 나왔고, 그의 아내는 놀라서 쓰러질 듯 떨고 있어 오히려 의사가 미안해했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었다 했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서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빌립보서 46-7절 말씀같이 평상시와 같은 마음을 주신 하나님이 제일 좋은 것으로 자신에게 주실 것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병원에서 주치의를 만났을 때 폐암 말기는 6개월 정도 생존이 가능하니 사업과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그는 가게와 공장을 정리하고 치료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는 주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행 기차를 탄다면 아내와 막내딸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되었지만, 그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선한 길로 인도하여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남에게 부탁 하나 하지도 못하던 아내가 교인들에게 남편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고 교회에 중보기도를 적어 내기도 하고 남들이 우리 가족을 위해 새벽예배에 나가 기도하는 데 내가 누워서 자고 있으면 안 되지 하면서 벌떡 일어나는 변화를 보며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나님은 아내의 믿음 생활을 바꾸는데 자신의 폐암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고 고백하며, 그 가족들이 변화된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그는 시편 51편을 묵상하면서 욕심대로 정욕대로 살았던 지난날들,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날들, 꼭 사랑하여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했던 일들, 건강 할 때는 봉사하지 않고 요리 조리 피해 다니면서 제 멋대로 살았던 자신, 이제 중병이 들어가지고 무엇을 하겠다고 자책하는 자신을 회개하게 되었다.

3인 딸아이 친구들도 친구 아빠의 건강을 위해 전화로 돌아가면서 기도하기도 했단다.

지난 해 호스피스의 밤에 환자로 초대를 받았다.

그는 봉사자들 중에 암환자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같은 처지니깐... 의사는 6개월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사는 날까지 봉사자로 섬기기로 결단했습니다.

항암제를 열두 차례 맞았는데 타성이 생겨 약을 바꾸기로 하고 2달 쉬게 되었습니다. 입안이 다 헐고, 병원에서 돌아오면 늘어져 잠 속을 헤메고, 그의 아내는 혹시 죽은 것이 아닌가 하고 흔들어 보고, 어지러워 길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날라가고, 손톱이 하나씩 뽑히고, 발톱도 손톱의 모양을 닮아가고, 피부가 한 커풀 벗어지고, 상처는 잘 아물지 않고, 실핏줄이 터져서 손과 무릎에 멍이 들어 흔적이 문신처럼 나타나고, 얼굴은 퉁퉁 부어서 형태가 변했으며 수저를 들 수가 없을 정도로 입맛이 달아났고, 밥 먹고 약 먹고 잠자는 것이 반복 되고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삶이 그에게는 이어 졌습니다.

그때 그는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항암 치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선생님은 왜 이렇게 만나기 싫은지 쉬는 2달을 이용해 아내와 같이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16주간 일주일에 한번 네 시간씩 받는 교육은 그에게는 중노동이었습니다.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으니까요. 어떤 분은 암환자에게 이 교육은 말기의 고통을 자세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런 것은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고, 지팡이를 집고 교육을 받는 그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과연 교육을 끝 까지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을 갖었지만 그는 16주간의 교육을 수료했읍니다. 수료식 때 눈물이 나고 목이 메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 고백했습니다.

봉사자 뺏지를 그의 옷에 꼽아 줄때 그 분은 정말 감격해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의미 있고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봉사자로서 아무도 알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을 않고 보이지 않는 사랑을 나누는 현장에 서 있고 복음을 들어야 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학문이 정한 6개월이 훨씬 지난 지금 그는 청년처럼 환자들을 찾아 나선다.

호스피스 아름다운 봉사자 박 준효 안수집사님!

위대한 승리자로 그는 고백한다. 저는 호스피스 봉사자로 말기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고통을 나누며, 마지막을 장식하길 원 합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 69. 71)

 

0703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53:5)

축하합니다! 다 나으셨답니다!”

의사들이 미팅을 하면서 한말을 우연히 들었다면서 병원 복도에서 만난 간호사가 한 말이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말인가.

그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그는 아내와 얼싸안고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투병하는 동안 자신을 두 번이나 찾아오셨던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밤새 뒤척이며 잠 못 이루다 새벽에 깨어 앞으로 해야 될 투병을 생각하며 깊은 두려움과 상심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격에 사로잡히며 그렇게 자신을 괴롭혔던 두려움과 모든 염려가 사라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기도하면서 찬송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자다말고 갑자기 일어나 기도하고 찬송하는 남편을 보고 아내는 놀래 깨어나 여보,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하고 울먹이며 어깨를 흔드는 작은 소동까지 벌어졌다.

또 한번은 꿈에 무슨 노래를 연속 두 번이나 부른 것 같았는데 그 이튿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무리 생각해내려 하여도 꿈속에서 부른 노래를 기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똑 같은 꿈을 꾸며 내일 아침까지 반드시 기억해야하는데, 오늘은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했었지만 아침이 되고나면 허사였다.

주일날이 되어 교회에도 갈 수 없는 처지를 알고 있기에 호스피스 봉사자가 찾아와 예배를 드리자며 찬송가 410장을 부르길 원했다.

무심코 찬송의 곡을 쫒아 가다 아니! 이 찬송은 내가 꿈에 부른 노래와 같다라며 봉사자에게 그동안 꿈 이야길 했을 때 봉사자는 깜짝 놀라며, 아침 집에서 나올 때 오늘 병상에 찾아가면 이 찬송가를 불러주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교회에 갔는데 주일 예배시간에 주보에는 다른 찬송가가 인쇄되어 있었음에도 사회 목사님이 찬송가를 바꿔 부르자면서 찬송가 410장을 불렀다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이상하다며 이것은 분명한 주님의 간섭이라며 놀라워했다.

특히 그 찬송가 후렴에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라는 이 가사가 자신을 계속 감싸고 있었다고 환자는 감격했다.

 

그는 처음 위암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분노하며, “남보다 더 성실하고 착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암이란 벌을 내리시다니 당신 너무 하신 것 아니십니까? 세상에 못된 사람도 잘 먹고 잘사는데, 당신은 사람을 분명 잘못 보셨습니다!” 라며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그가 투병 중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가면서 오히려 암이 하나님의 벌이 아니라 은혜였다!”라고 고백하는 은혜로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병원에서도 3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생명임을 선고했었고, 심장이 약해서 남들처럼 항암제도 제대로 맞지 못하며 부실한 치료를 했었는데 이렇게 큰 은혜 주신 것에 감격하며 낙엽하나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아닌 것이 없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을 알게 되어가며 투병의 용기를 재 다짐하게 되었었다.

그는 이제 환자들을 섬기는 봉사자가 되어 환자들이 무얼 먹고 치료 되었느냐 묻게 되면 병에는 식보가 약보 보다 좋고 마음의 평화가 식보 보다 좋은데 그 평화를 위한 식보는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병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게 될 주변의 연약한 지체들에게 오늘도 간증하며 용기 있는 자로 승리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

 

0704 나 중 된 자가 먼저 되고

사업을 성공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은 그녀에게 언제나 완벽하게 생각해야 되고 행동해야 한다는 긴장되고 불안함이 연속되는 삶을 강요했다.

남편과는 IMF의 환란 속에서 사이가 벌어져 결국은 남남의 삶이되어 살아가고, 외국에 떠나있는 두 아이들은 이제 각자 자기들의 삶이 바빠 엄마에겐 무감각한 것처럼 느꼈다.

자신이라도 건강을 지켜야 한다 싶어 건강 검진을 받은 결과를 보기위해 찾아간 의사 선생님의 얼굴 표정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두려움을 느꼈다.

폐암 3기입니다. 바로 입원을 하셔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합시다.”

아니 내가 폐암 3기라니 보통 상식이라면 기침을 한다던가? 아니면 내가 담배를 피웠다던가? 무슨 자각증상이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말도 안 된다고 아무리 수 십 번 머리를 흔들어 봐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생각들이 정말로 만감이 교차 한다는 의미를 그때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어떻게, ,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걸까?” 세상이 끝난 것 같아서 울다가 실감나지 않는 혼돈 속에서 다시 또 웃고... 도저히 믿겨 지지 않는 꿈속 같은 상황 속에 죽음이란 단어가 떠올랐고, 자신의 죽음을 보고 있는 것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가슴의 고통을 갖고 호흡이 이루어지지 않아 너무나 두렵고 떨려 하루하루의 시간이 수년씩 한꺼번에 지나가는 힘든 시간을 살아가게 되었다.

자기 자신만을 믿고 살던 그는 항상 완벽하게 할 수 있다했는데 더 이상이 아무것도 아닌 온통 머릿속에는 칙칙한 검은 천이 헝클어진 허탈감에 자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살려 주세요!” 갈급한 마음이 되어 그동안 별로 관심도 없던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자신을 돌아봐 줄까 싶어 교회에 무작정 전화를 돌렸는데 우리에게 연락이 된 것이다.

찾아간 병실의 자매는 우리를 보자마자 우리가 자신의 생명을 보장이라도 하는 양 너무도 간절한 눈빛을 볼 때 오히려 부담감에 눌려 어떻게 섬겨야 되나 염려가 되었다.

자매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며 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니 또한 살아서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라(요한복음11:25-26)”는 하나님의 뜻을 설명해 주었을 때 사형선고를 받았던 비참함에서 참으로 편안함으로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매는 자신의 교만함이 재산이나 명예가 아닌 건강을 통해 낮아짐을 알았다며, 그동안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사람들에게 화해와 사랑을 나누겠다고 했다.

돌아보면 불행이 자신의 전부였고, 왜 한번도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하지도 못 했는가 질문들을 하게 되었다며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는 족하다고 말하게 되었다.

항암제를 맞으면서도 아무 것도 먹지 못할 때도 우리가 찾아가 기도해 주면 그것이 오히려 무엇을 먹었을 때보다도 더욱 힘이 난다고 말하게 되었다.

십자가에서 그 모진 고난과 고통의 멍애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처절하심이 마음에 와 닿았다며 그 십자기 위에서 나를 위해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직 치료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꼭 완치만이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 방법 안에서 질적인 삶을 사는 것이 승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하루하루를 찬송하는 삶에 감사를 드리고 있다.

자신은 지금껏 알지 못했지만 고난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 불행도 행복으로 다룰 수 있는 큰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말씀할 때는 지금껏 불평이 많던 나의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자매는 지금 우리에게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표현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할 때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태복음 19:30)”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자매의 투병이 온전한 승리를 이룩하길 섬기며 기도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 4)

 

 

0705 어머니의 소원 그리고 우리의 소원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커피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화를 했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음료수 석 잔을 앞에 놓고 기다리던 그들의 눈시울은 한 주 전 떠나신 권사님을 찾는 듯 붉어 졌다.

어머니의 소원을 꼭 이룰 수 있게 해 주세요!” 간단한 안부를 묻자 아들과 아버지가 권사님이 떠나기 전 준비해 놓으신 작은 것이라며 봉투 하나를 내어 놓고 말을 이어 간다.

권사님은 대장암으로 지난 3년을 투병하실 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항암제를 맞아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거야! 퇴원하고 집에 돌아가면 음식 냄새로 또 이런저런 피곤으로 쉴 수가 없어. 제발 환자로 마음 놓고 쉴 곳이 있다면 좋겠는데... 그래야 다시 또 다음 치료를 하지...” 14년여 동안 호스피스 봉사자로 섬겼을 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일이었는데 환자가 되어 투병을 하다보니 어디 한 곳 다음 치료를 위해 편안한 회복의 장소가 없다는 것에 항상 마음 아파하셨고,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난 항상 짐을 진자 같은 마음의 무거움이 내게 있었다.

이 짐은 십 삼년 전으로 올라간다.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 봉사자 몇 분과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 일본 등 몇 나라 호스피스 현황을 돌아보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절망 가운데서 고통 받는 환자나 그 남은 가족들에게 좋은 섬김을 다 할까 한 참 마음에 뜨거움이 있을 때였다.

돌아보는 곳곳마다 우리는 누구만이라 할 것 없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돌아가면 반드시 우리 환자들에게 이런 소망의 자리를 만들어 주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부지는 어느 봉사자의 헌신으로 마련을 해 놓고도 아직도 마음의 준비만 하고 있기에 항상 마음의 소원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 권사님은 삼년 전 대장암이란 판정을 받고 투병하시게 되었고, 권사님은 환자를 위한 쉼터가 항상 자신의 소원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사역 열여덟 해 만에 받은 안식년을 뉴욕에서 보내기 위해 서울을 떠나던 전 날, 권사님께 점심을 대접하며 돌아 올 때까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도 열심히 투병하며 강건하셔야 한다고 그렇게 약속을 하고 떠났는데 갑자기 너무 상황이 어려워 졌다는 봉사자의 연락이 왔고 급히 권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너무나 보고 싶은데... 내가 떠나기 전에 만나 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전화선 넘어 들리는 권사님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꺼져 버릴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돌아와 권사님 댁으로 봉사자 몇 분과 함께 방문을 했다.

생각지도 못했다며 이렇게 빨리 돌아와 주어 고맙다고도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토해내는 위액들로 인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빨리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하시며 오늘이 꼭 한 달째 물도 한 모금 넘어 가지 않아...”하셨다.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억누르며 권사님의 귀 가까이에 입을 대고 그동안 애쓰셨으니 하나님이 편안함을 주시기 위해 부르신다면 이젠 우리가 더 이상 잡지 않을께요약속했다. 그때 권사님은 나에게 약속해 줄 것이 있다 하셨다.

작년 15회 호스피스 가족의 밤에 오셔서 환자 겸 봉사자로서의 경험을 간증하며 자신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환자와 그 가족이 쉼을 얻고, 가능한 회복할 수 있는 우리의 비젼인 사랑의 호스피스 전인치유 쎈터가 꼭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일이 소원이라고 반드시 이루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의 나와 봉사자의 섬김을 받고 찬송가 469장 마지막 절을 다 불러드린 그 밤, 연로하신 어머니와 남편과 두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나의 전송을 받으며 조금 늦게 도착한 친구 봉사자들의 아쉬움 속에 조용히 마지막 숨을 접으셨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몸을 흙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눕혀질 자리를 다듬고 있는 일군들의 손놀림과 주우욱 둘러서서 온통 너무도 심각해 있는 우리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전 할 테니 걱정마란 듯 너무도 환하게 웃고 계셨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편 374-6).

 

 

 

 

 

 

 

 

 

 

 

 

 

 

 

 

 

 

 

 

 

 

 

0706 빚 진 오늘 점심 다음에는...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울 때 찾아와 주셔서 평안을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감사...”

헨드폰 문자 도착알림 진동과 함께 날아 온 글이다.

그해 22명 사역훈련생을 받아 훈련하는 중 공교롭게도 여러 가정의 자녀들이 크고, 작은 장애를 안고 있었다. 훈련하는 비 장애 부모들도 꽤나 힘든 과정인 일년 동안, 자녀들이 장애를 안고 있는 부모들이 훈련에 임하는 그 진지함과 열정에 훈련을 맡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말할 수 없는 도전과 감사를 배우며 서로 사랑하며 예수님 제자로서 섬김을 배워 갔다.

그 중 한 지매는 특별했다. 본인 자신도 어릴 때 얻은 장애에다 자녀도 장애가 있고, 또 몇 년 전에는 유방암으로 투병한 자매가 있었다.

시작은 누구나 그렇지만 이야기도 없고, 조금은 숨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조용조용하며 수줍음으로 다른 훈련생들과 함께 마음을 합치기는 조금은 어려워했지만 곧 우리 속에 안착했다.

그리고 얼마 전 자매에게 걱정이 생겼다며 전화가 왔다. 검사결과 다른 한 쪽으로 재발이 되었다는 것이다. 잠깐 동안 이것은 아닌데...!”하는 염려가 생겼다.

다시 9년 만에 맞는 항암제의 부작용은 예외 없이 나타났다.

머리칼이 빠지니 누군가를 만나려면 항상 모자를 써야하고, 음식을 먹기는 어렵고 항암제를 맞고 나면 어릴 때 얻은 장애로 다리는 점점 더 힘을 잃고 육신은 통증으로 고통스러워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자녀가 장애를 갖고 있으니 그 또한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일이건만 가족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씨도 좋고,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이 좋은 남편으로 인해 모든 투병을 잘 감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일이 벌어졌다.

한 전화를 받았는데 자신과 똑 같은 병을 앓고 계셔서 연락을 했는데 정말 잘 참고 지내셨네요. 나는 지금 숨이 차고 힘이 들어 죽겠는데...” 등 등

자매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며칠 전 의사선생님이 자신에게 질문을 하던 질문이 생각났다. “혹시 숨쉬기는 괜찮습니까? 답답하지는 않으세요?”

자매는 다른 환자의 고통스러운 하소연을 듣는 순간 숨이 막히고, 숨을 쉬는 것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괴로움이 찾아왔다. 나도 저 사람처럼 힘들어 할 수밖에 없고, 이제 저 사람처럼... 저 사람처럼...”

차마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했던 두려움과 염려가 갑자기 어디에선가 다시 살아나고, 도저히 그 힘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우울함이 찾아 왔다. 모든 세상이 이제 마지막을 향해 돌진해 가는 것 같았다. 멈출 수 없는 가공할만한 힘으로 너무나 세차게 끝도 없이, 밑도 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어제 밤 나는 갑자기 자매를 찾아보기로 하고는 연락이 잘 되지 않고 있음이 생각났다.

조금은 늦은 시간에 연락이 되었는데 자매가 너무나 반기는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다.

오늘 자매를 찾아 이런 이야길 다 듣고 나니 너무도 자매를 위해 가장 가까이에서 간섭하고 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 할 수 있었다.

자매에게 나는 먼저 부정적인 말에 속고 있음에 대해주의를 환기 시켜 주었다.

자매의 이 두려움과 고통을 위해 십자가에서 가장 처참한 고난과 고통을 다 당하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분이 자매를 위해 그 고통 속에서도 다 이루었다!”말씀하셨던 말씀을 기억하라고 그 후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네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자매 가운데 계시는 성령님을 통해 들어 보라고 말씀드렸다.

자매는 금방 환한 미소로 잃어버렸던 평강을 회복했노라 감사하는 것이다. 또 회복한 자매를 위해 내가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했더니 다시 병원에서 허락한 주문식단을 먹겠다며 사양을 한다. 그리고 갑자기 두려워하고 혼란스러웠던 것에 속았던 자신을 회복했다.

나는 자매에게 내가 오늘 사주기로 한 점심을 빚졌으니 나중에 조금 더 건강해지면 그 때 사줄께요!” 가볍고 감사함으로 돌아왔더니 한 시간도 안 되어 문자로 화답하는 것이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과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던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117-19)

 

 

0708 진경이가 부르는 샤론의 꽃 예수

고통으로 담이 삥 둘러쳐진 삶을 살아 갈 때도 나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느냐에 따라 그 고통 속에서도 회복이라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특별히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자들에게서 느껴지는 고통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지도 못하는 안타까움과 슬픔과 공허가 저려 있다.

하루 저녁은 메일을 체크하다가,

그 메일을 읽으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열대야에 지친 밤 깜깜한 칠흑 같아서 보이지는 않지만 모처럼 쏟아지는 소리와 느낌이 있는 소나기 같았다.

“ .....중략....

진경이와 매일 밤마다 예배를 드립니다.

진경이를 보면서 성령님이 이 어린 딸에게 역사하심을 보면서 제가 큰 은혜를 받습니다.

어느 날 함께 부를 찬송가를 고르는 중,

진경이가 고른 "샤론의 꽃 예수"를 부르기로 하고 함께 불렀는데,

진경이는 그 찬송가를 처음 부르는 것이었는데도, 갑자기 너무 좋다고 하면서 부르는 도중에 진경이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엄마! 갑자기 눈물이 나, 나 이 찬송가 너무 좋아, 샤론의 꽃 예수님이 너무 좋아"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저희들의 부족한 예배도 흡족하게 받으시고, 저희들을 감동시키셨답니다.

이젠 제법 성경말씀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혼자서 대표기도도 하고, 어리지만 믿음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주님이 진경이를 볼 때 많이 사랑해 주시고 이뻐해 주시는 것이 제 마음속 깊이 느껴져 감사했어요.

하루하루 참 감사할 것이 많음에 오늘도 찬양을 드립니다.

나의 소망은 주 경외함 내 마음을 다해 주 경배해 ......” 찬양을 흥얼대 봅니다.

목사님!

아무쪼록 건강 돌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목사님께 넘치시길 기도하며.

진경맘 올림.”

 

진경이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이다.

어느 날 아빠와 동생이 연이어 해를 달리하며 하나님의 부름이란 호출을 받고 자신들의 곁을 떠나 버려 우리의 사랑의 울타리 모임과 함께 하는 아이다.

어느 날은 아빠를,

어느 날은 동생과 함께 지내었던 날들을 기억하고는 아직도 두 사람의 떠남에 자신도 추스르기 쉽지 않은 남은 엄마를 당황하게도 그리고 때론 마음 아프게도 하지만 그렇게 아픈 여린 마음들을 회복이라는 자신들 만의 시간으로 끌고 가고 있다.

엄마는 슬픈 속에서도 ? 나여야 만 했고, ? 우리 가정이어야 만 했는지어디에다 누구를 잡고 하소연 해 볼 여력도 없었다.

다만, 한번만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기도 쑥스럽게 느껴져 혼자만으로 감당하는 것이 자신이 받아야 되는 책임이라면 족하다며 몸부림치며 일어나려 할 때, 또 자녀를 암이란 것에 내어주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딸을 주님이 맡아 주시겠다고 하셨을 때 안 됩니다 하지 않고 믿음으로 내어 드림으로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그 아픔과 외로움, 허망함은 쉽게 잠을 자고,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만들었고 다만 모든 것이 피곤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아빠와 자식이 가 있는 곳을 바라 볼 때마다 믿음으로 다가가기 위해 하루하루 그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을 부를 때, 거기에 들리지 않던 그들의 음성이, 보이지도 느낄 수도 없었던 그들의 체취와 느낌을 그 곳에서 만 날 수 있기에 오늘 부르는 찬송 가운데 맡으신 이의 은혜로 위로를 받고 회복이란 소망을 삼는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시편 10313-14. 17)

 

*사랑의 울타리 모임 - 부모 중 한 분 이상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난 가정의 남은 자녀들을 사랑의 울타리가 되어 섬기기 위한 모임으로 고3까지 아이들을 매월 모임과 치유캠프를 통해 섬기는 호스피스의 사별사역이다.”

 

 

 

0709 스코프에 나타난 파장의 약속

삼년 전 이맘때 동생이라며 누나가 폐암 말기로 진단이 나왔는데 불행하게도 누나는 믿음도, 의지할 때도 없어 우리의 섬김이 꼭 필요하다는 간절함을 품고 찾아왔다.

두 명의 환자가 커튼을 사이에 두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누나의 침대 옆 환자는 무슨 사연 인 줄은 모르지만 보호자는 환자의 등을 다독거리고만 있고 환자는 계속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병실의 분위기가 처음 찾아가기에 무척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들어가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어찌해야 되나 머뭇거리다 병실에 들어섰다.

다행이 내가 만날 누나의 침대는 문 쪽에 있었다.

눈을 딱 감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환자는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보니 몹시도 병실의 분위기와 자신의 폐암말기 판정이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웠나 보다.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하고 나의 존재를 알렸다.

어떤 변화에도 관심이 없다는 표정의 누나는 한번 눈을 떴다 이내 감아 버리며 관심을 주지 않으니 정말로 이 병실에 들어온 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먹서먹한 이방인이 되었을지라도 한 참을 끈기 있기 기다려 보았지만 누나는 별로 변화가 없다.

나는 나에게 말을 했다.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아직도 만나야 할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도 이 자리를 떠나야 돼!”

그런데 막상 자리를 떠나려 하자니 여기까지 와서 그만 돌아 가야한다는 것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 한번만 더 환자에게 접근을 시도해 보자. 그제서야 누나가 반응을 한다.

정말 지금 저는 너무 괴롭고 힘드니 간단히 끝내시고 돌아가세요.” 반갑게 들리지 않는 소리였지만 그래도 반응이 있었다는 것이 감사해서 기도만이라도 해드리고 가고 싶습니다 말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이 누나의 괴로움과 고통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시고 다 이루어 주셨다 약속하셨으니 평안과 자유를 주십시오. 또 모든 질병을 감당하시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으니 이 병을 잘 감당하게 해 주시길 위해 기도했는데 기도가 끝나고 나니 놀랍게도 이 누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다음에 다시 오겠노라 약속을 하고 병실을 나올 때는 어찌나 가볍고 빨리 이 지리를 떠나고 싶어 한 달음에 계단을 통해 병원 밖으로 내 닫았다.

! 한 주간은 왜 그리 빨리 돌아오는 것인지.

이직은 이 환자를 다른 봉사자에게만 맡기기는 부족하여 지난 주 환영 받지 못한 감정을 그대로 갖고 환자의 침대 곁에 섰다.

~, 지난주에 찾아 왔었는데 기억하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며 반갑게 맞이해 줌으로 달라진 상황이 생소할 뿐이다.

누나가 지난주와는 백팔십도로 변해서 너무도 반갑게 내 손을 잡아끌며 침대 옆에 앉게 하기 위해 꽤나 수선을 피우시더니 지난 주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을 시작하신다.

지난주에는 폐암 말기인 줄만 알았는데 척추에까지 전이가 된 것이 확인되고, 그리고 옆 침대 있던 자궁암인 자매가 너무나 울어 너무 힘들어 그랬다며 용서를 구하니 그동안 긴장했던 마음과 몸이 갑자기 힘이 쭉 빠져 내려 밀려오는 피곤이 감당하기가 힘들어 졌다.

그날 그 누나는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 고통스런 지금의 불편함들을 쏟아내어 놓는데 말들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그렇게 그 누나는 마음 속 두려움과 힘들어함과 통증과 가끔씩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2, 3번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더니 어느 날부터인지 아예 허리 밑으론 전혀 쓸 수 없고 말도 어눌해 져버리는 중증의 환자로 바뀌어 버렸다.

거의 삼년의 시간이 다가올 쯤, 누나는 복수가 차고 혼수상태가 왔다.

이젠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이 누나도 우리가 떠나보내야 되는구나 생각하며 이별을 준비할 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이 되고 전에 알지 못했던 수다스러움으로 나와 우리 봉사자들의 섬김에 감사와 칭찬을 민망하여 듣기 힘들 정도로 육 인실 병실의 다른 보호자나 환자들께 풀어놓는 것이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사야 431절중반-3절 초반)

어렵고 힘든 투병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자꾸만 혼수상태가 잦아지더니 더 이상 깨어나지를 못하고 가슴에 부착된 심장 박동기만이 아직은 호흡을 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환자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이젠 우리가 헤어져야할 준비를 잘하자며 환자에게 이제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자매를 기다리는 예수님을 만나면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을 할 때 침상 앞에 놓인 스코프의 파장은 얼마나 요동을 치는지 그 파동 속에서 자매는 내가 알았고 그렇게 만나자!”는 약속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0710 마지막으로 전하는 복음

 

"고난 당 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 67, 71)

우리 모두가 사랑하던 집사님이 항상 외우며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셨던 말씀입니다.

우리 봉사자 모두가 사랑하던 집사님은 언제나 해맑게 웃으시던 분이었습니다. 말로는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이 찾아오면 ! 너무 아파하시면서도 눈이 마주치시면 언제나 그랬듯이 그렇게 웃으셨습니다.

집사님은 울보였습니다. 언제나 울었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해서 울고, 병상에 누군가 자신을 찾아 와 주면 예수님 사랑 때문에 울고... 언제나 자신의 투병 때문이 아니라 항상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그 사랑 때문에 감사해서 울었습니다.

걸음걸이가 옛날 노인 같다며 걱정을 했더니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중이 며칠 사이에 7kg이 줄어 혹시나 했는데 검사결과 폐암말기라고 주치의가 말할 때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하시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이었다 고백했습니다. 다만 진찰결과에 너무나 놀라는 아내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라 했습니다.

, 3이었던 딸 아이 방에서 밤1시가 되었는데 전화 소리가 들려 고3이 공부하지 않고 뭐하느냐고 야단을 쳤더니, 친구들이 아빠의 건강을 위해 전화로 돌아가면서 기도하기로 해서 그랬다는 말을 듣고는 집사님은 그 사랑 때문에 감사하여 펑펑 울었다고 고백했습니다.

6개월 여유 밖에 없는 폐암 말기라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난 후 집사님은 결정을 했습니다.

나 같은 환자에게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도구로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그리고 집사님은 한 주에 3시간 반짜리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 교육을 16주간 받을 때 항암제 맞는 시간과 겹쳐진 두 번 인터넷을 이용했지만, 언제나 이른 시간에 지팡이에 의지하여 부인과 함께 정말 열심히 봉사자로서 준비해 나갔고, 6개월 시한은 점점 시한을 넘겨 2년 동안 환자와 봉사자들에게 행복을 준 봉사자로 그의 기도제목처럼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항암제를 열두 차례 맞았는데 4차 항암제를 맞았을 때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모든 입안이 다 헐고, 병원에서 돌아오면 늘어져 꿈속을 헤매고, 아내는 혹시 죽은 것이 아닌가 하고 흔들어 보고, 어지러워 길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다 빠져 날아가 버리고, 손톱이 하나씩 뽑히고, 발톱도 손톱의 모양을 닮아가고, 피부는 한 꺼풀 벗어지고, 상처는 잘 아물지 않고, 실핏줄이 터져서 손과 무릎에 백혈구와 싸운 흔적이 시꺼멓게 문신처럼 나타나고, 얼굴은 퉁퉁 부어서 형태가 변했으며 밥맛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온 그도 수저를 들 수가 없을 정도로 입맛이 달아났습니다. 밥 먹고 약 먹고 잠자는 것이 반복 되고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삶이 집사님에게 이어 졌습니다.

8차 항암 치료 후 의사 선생님과 만나서 진찰결과를 들을 때는 중죄인이 재판장에 서서 판사의 판결을 듣는 기분이었다 했습니다. 죽음은 두렵지 않은데 항암 치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선생님은 진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가족예배를 드리면서 주님 내게 오시면 어떻게 대할까?” 찬송을 부르실 때 집사님은 눈물이 터져 더 이상 찬송을 이어 나 갈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인데 나는 너를 구원해 주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냐고하나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찾을 수가 없어 침묵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호스피스 대상 환자이지만 호스피스 봉사자가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봉사를 받는 자리에서 봉사 하는 자리로 바뀐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라고 집사님은 자주 말했습니다.

하루,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집사님을 만나러 그의 병실을 찾았더니 그 퉁퉁 부어오른 다리와 전이된 뼈의 통증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 하시더니 남자 간병인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간병인을 보시며, 지치고 힘이 없어 잘 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지만 분명하게 종교가 뭐예요, 예수님 믿으세요. 믿고 천국가요...” 집사님의 마지막 힘을 다해 전하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느끼며 참으로 행복한 집사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새벽 320분에 내가 보고 싶다하셔서 한 시간 넘게 천국 가실 때 주님이 천군천사와 함께 하실 것을 예기하며 그 때 만날 것을 약속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집사님은 주님 품으로 너무나 평안히, 그 해맑은 미소와 함께 영원한 쉼을 위해 떠나셨습니다.

 

 

 

0711 아름다운 47년 그리고 영원한 생명

야야! 이 젊디 젊은 것이 어찌 이러고 있단말이냐 어서 일어나거라... 이러고 있지 말고 어서 일어나거라, 야 좀 봐라 어서 일어라래도, 넌 참으로 나쁘구나 나빠 왜 이렇게 혼자 떠나야 되느냐 애비와 두 딸은 어떻하라고......!”

 

한 낮을 지나 세상은 이제 서서히 일상을 정리하려고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는 그 때, Y병원 신관 6층의 한 병실은 47년을 열심히 달려온 시간과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깊은 숨을 쉬고, 이젠 영원으로 떠나가는 사랑하던 며느리의 핏기 없는 얼굴을 한참이나 자신의 얼굴로 부비며 애끓는 시모의 몸부림이 친정어머니의 통곡과 함께 왈칵 밀려나오는 내 눈물로 밀려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게 멍하니 귀에 묻혀버린다.

지난 해 말 이때쯤이었다.

한해 전 남편이 심장질환으로 떠나시고 혼자 남으신 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호스피스의 아름다운 봉사자 권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막내 동생이 소화가 안 된다고 해서 병원에 왔는데 아무래도 불안하다시며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동생은 위암 판정을 받았다.

너무도 신실한 건강했던 젊은 집사님의 하루하루의 위암 투병은 많은 성도들에게 안타까움이었고 또 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듣는 것 같았다.

병상에 찾아간 어느 누구에게든지 위로를 받기 보다는 오히려 믿음의 도전을 주어 집사님을 만나고 오는 날에는 자신들이 이런 분을 만났다는 것에 감사를 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던 집사님이었다.

지난 봄을 지나면서 우리에게는 너무도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치료하던 항암제가 집사님의 암세포에 너무도 잘 맞아 치료가 잘되고 있다는 것이고, 이제는 거의 모든 암세포가 소멸이 되어 얼마 되지 않아 치료가 끝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섬기며 암 특성상 치료가 되었다고 하는 발표가 왠지 불안했지만 나의 기우일 것만 같아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너무 마음을 놓지 않기를 권했다.

그러나 환자는 너무나 문제가 없이 두 달, 석 달이 지나갔다. 그리고 염려했던 생각이 서서히 나의 기우였다고 믿고 집사님을 생각할 때만 해도 안도하며 감사했다.

이런 와중에 교회에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잔치가 벌어졌다.

집사님은 자기의 가장 친구 둘이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함에 대해 마음과 생각이 미치자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집회기간 동안 친구를 위해 애쓰며 힘썼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우리 집사님을 따라 교회에서 말씀을 듣는 중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지금까지 왜 그렇게 자신들이 예수님을 거절했던가 하며 감격의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친구들을 위해 이제 어떻게 양육을 할까 계획하던 다음날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말 할 수 없는 고통이 서서히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갔다.

주치의에게 연락을 하니 급하게 병원으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 도착하여 검사를 해 본 결과 뇌에서 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하루하루 결과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니 우리 모두에게 난감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쏘여지는 방사선 치료에 집사님은 혼수상태에 들어갔다 깨어나고를 반복하는 고통의 시간을 통해 집사님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재 입원을 한지 한달도 되지 않아 급한 전화를 받았다.

상태가 너무나 좋지 않아 위급하다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병실에 도착한 순간에 집사님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고 하얀 얼굴은 천사가 막 내려와 평안함을 보여 주는 듯싶었고, 그 방안에는 아직 집사님이 머무는 것을 실제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고린도전서 1514-15)

08-01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섬기던 환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섬김이 기다린다.

그 섬김은 사별하고 남은 가족들을 섬기는 일이다.

어른들의 사별관리 하던 중 특별히 십여년 전,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아이들에 대해 부담을 주셨고, 우리가 사랑이라는 울타리가 되어 주자고 사랑의 울타리라는 모임과 사랑의 치유 캠프를 열게 하셨다.

사별한 어른들은 그래도 어느 시기가 지나면 회복이라는 과정을 거쳐 아프지만 일상으로 되돌아가려는 몸짓으로 우리의 섬김에 보답하기라도 하듯이 추슬러 일어나신다.

그렇지만 남은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픔과 혼란을 깊은 가슴에 묻어 버리고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려들지만, 그렇다고 상실감은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후일에 너무나 아픔이 되어 알게 된다.

이 상실감이 다시 고개를 들면 결정적인 순간에 감추어지고 갇혀있던 아픔과 혼란이 다시 터져버리는 진통 앞에 방황이라는 어찌할 줄 모르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울타리 아이들을 어린 2살짜리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아이들을 섬긴다. 그리고 이 아이들 끊임없이 섬기다가 울타리 아이들 중 대학생이 되면 사랑의 울타리를 섬기는 보조 교사가 되어 다시 자신들이 받은 회복을 다음 아이들에게 돌려준다.

이 사랑의 울타리 아이들과 혼자 남은 엄마나 아빠들 중 원하는 분들과 함께 사랑의 치유캠프를 연 중 행사로 떠나게 된다.

이 캠프는 처음 시작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두에게 아주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한다.

그 경험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언제나 치유캠프를 통해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확인 시켜주신다는 것이다.

겨울 캠프의 특성은 여름과 달리 좀 긴 여행과 함께 회복과 치유라는 이벤트를 갖고 본격적인 캠프를 실시한다.

매년 행사장소는 중복되지 않게 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캠프를 통해 마음껏 웃고, 뛰고 풍성함을 누리며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과 부활의 권능으로 상실감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특징이다.

캠프 준비는 여름 단기간의 캠프가 지나고 나면 겨울을 위해 준비한다.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자주 하나님은 이 캠프를 위해 소원을 만들어 주신다.

어느 때는 갑자기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함께 비행기를 태워주고 싶다는 강한 소원을 주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재정적이나 형편은 우리에게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나에게 계속 포기하지 않게 하시더니 배편 값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어느 항공사와 연결을 시키시고 우리의 뜻에 감동을 받았다며 작은 비행기 한 대를 전세 내주어 제주도에서 삼박 사일의 아름답고 기억나는 캠프를 시켜 주시더니,

지난 연말에도 우린 사랑의 치유캠프를 통해서도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다시 확인하였다.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스키캠프를 또 소원하고 계심을 응답으로 주시는 것이다. 열심히 계산 해 보았다. 아무리 계산을 해 보아도 아무래도 계산이 나오질 않는다.

마음 한 구석에 이번 캠프는 조금은 나의 한이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했다. 왜냐면 내 아들 딸들은 사회인이 되도록 장성하게 되었지만 아빠로서 언제 한번 스키캠프를 계획도 세워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재정이나 형편에 맞는 계획으로 수정하려 했다.

그런데 캠프를 한 달 앞에 놔두고 캠프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법한 한 분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하길, 혹 이번 캠프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어느 스키장에 자신이 초청하는 것이 어떠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알았다. 내가 할 수 없다 포기하려했더니 하나님은 아니 아버지는 직접 그 분을 동원하셔서 아버지로써 책임져 주심을 확인시켜 주셨다.

뒤뚱 뒤 뚱 스키를 신고 걷는 5살짜리 꼬맹이 울타리를 보며, 겁도 없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슬로프를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우리 울타리 아이들과 행복하게 왁자지껄 너무나 신이 나있는 엄마들을 바라보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니 언제나 되어야 나는 어느 순간에라도 아버지를 온전하게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신뢰할까? 다시 한번 나를 다스리는 시간이었다.

캠프는 너무나 아름답게 진행되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과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이 합하여져 사랑의 울타리 아이들과 엄마들에게는 정말 잊지 못할 캠프가 되었다.

날씨까지도 책임지시며 항상 염려하지 않고 기뻐하라시며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오늘 다시 누리게 하셨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 4-7)”

 

 

08-02 당신은 누굴 가장 사랑해?

오늘도 힘들게, 힘들게 오르내리는 혈압이 오랜 시간 마음을 졸이게 하더니 안정을 찾았다.

안정이 되자 점점 혼미해 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아내는 확인 하고 싶었던가 보다.

여보! 누구를 가장 사랑해?” 한 번, 두 번 질문을 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옆에 서있던 내가 조금은 거들어야 할 것 같아 대답을 잘 해야되...!” 말했지만 내 속에는 형제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벌써 나름대로 답을 갖고 있었다.

형제는 아내를 너무 사랑했다. 또 하나 밖에 없는 외국에서 공부하며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형제가 무어라고 대답할 것을 유추하기는 너무 쉬웠다.

벌써 혼수상태인가? 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형제는 아주 분명히 내 생각과 다른 대답을 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고, 또 그의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얼른 훔쳐보아야 했다.

1년 반 전 처음 직장암으로 수술한 형제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상황이 내리막길로 달려가 이제는 복부 주변과 수술한 인공항문까지 암세포들이 비집고 올라오기 시작해 대장 루 주변에 너무 골곡이 많이 생겨 장루 봉투가 붙여 있어야 할 자리에 붙어 있질 않는다.

주변으로 새어 나오는 오물을 닦아내는 아내 손이 파르르 떨며, 남편에게 아프지 않게 하려고 정성을 다해 닦아 내는 것을 옆에서 보며 저렇게 사랑하는 부부가 이제 얼마 있으면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아프게 마음에 닥아 왔다.

형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더 이상 아프지 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나 아프다.” 했었다.

얼마나 그 고통이 심하였던지 형제는 계속 통증 조절을 위해 몰핀을 요구했다. 그러나 줄줄이 늘어 뜨러진 수액 줄과 몰핀 줄, 몸에 붙여진 통증 조절을 위한 팻취. 그 많은 투여되는 약물은 의사가 처방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도 잠깐의 시간만 형제에게 평안을 줄 뿐이다.

형제는 대중음악과 연극, 영화 등 장르의 전 분야를 넘나드는 음악을 창조하는 작곡가로서 셀 수 없이 많은 노래들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불려지게 했던, 그래서 그 이름 앞에 달려 있는 수식어가 시인이요 한국이 낳은 팝 발라드 개척자요 등등 사랑을 많이 받던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우리가 섬기는 모든 환자들이 어느 한 사람 안타깝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만 나는 이상스럽게 너무 순수하여 어린아이 같은 형제의 성품과 재능에 매료되어 방문하며, 섬기며, 기도할 때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고 투병을 독려할 때마다 친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착각을 갖고 있었기에 이십여 년이 넘게 환자를 섬기는 요즘, 환자들을 떠나보낼 때 예전과는 다르게 주체치 못하는 눈물과 함께 아픈 감정을 많이 갖게 되는 나.

이 형제와 얼마 후 잠깐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 어떻게 이별을 준비해야 하나? 참으로 어렵고 힘들 것 같았기에 형제 아내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까 순간 긴장이 되어 대답을 듣자마자 그의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훔쳐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잠깐의 생각하는 시간이 지나자 당신!, 아님 아들의 이름을 부를 줄 알았는데 분명하게 하나님!” 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순간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나 하던 아내도, 아들도 그리고 그 방안에 있던 부모님과 형님 내외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데! 하나님을 사랑한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두가 안도하는 가장 정확한 대답을 함으로 그를 하나님 품에 맡겨 드릴 수 있도록 했고, 아주 긴 이별이 아니라 우리 다시 만날 소망을 함께 나누는 확신 있는 시간을 갖게 했다.

그 밤 12시가 넘어 잠깐 짐에 갔는데 새벽 256분에 급하게 연락이 왔다. 10여분 만에 급히 돌아간 병실에서 그의 아내는 말하길 막 잠을 자려 준비하는데 무언가 이상하여 보니이제 그 고통의 자리에서 평안의 자리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막 천국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미소 띤 얼굴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후일 다시 멋지게 만날 것을 위해 안타깝지만 다시 만납시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를 사랑하던 수많은 팬들의 하늘에 날리는 하얗고 노란 풍선을 소망을 실어 그가 가장 사랑하던 하나님께로 보내 주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으로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디모데후서 47, 8)”

08-03 이제 내가 더 하나님을 사랑할게...

삐리릭, 삐리릭...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미명의 시간인데 문자메시지 수신음이 울린다.

어제 밤 너무 힘들었습니다. 호흡이 잘 안되고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잘 견뎌 냈습니다.” 전화를 드려 보았지만 들리는 것은 산소호흡기의 파열음뿐이다.

3개월 전 폐암 말기 선고를 받았던 집사님의 상황은 하루하루 급속도로 어려워져 갔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던 날 집사님은 전화를 하셔서,

믿음 없는 남편 때문에도 투병을 잘 감당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을 알려 달라는 것이다.

자신의 남아 있는 생명의 길이가 얼마나 남았는지 두려워할 수도, 염려할 수도 있는 그 시간에 가족들, 특별히 믿음 약한 남편이 자기의 병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시험 들까 하여 노심초사하는 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경외스럽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집사님의 투병은 그리 쉽지가 않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할 시기가 지났으니 공기 좋고 조용한 곳에서 편히 쉬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고 사는 날까지 살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처음에는 버려지다시피 입원 시켜주는 것도 거부했다.

그때도 집사님은 낙심하지 않했다. 그렇다고 흥분하여 공포에 질리지도 않했다. 오히려 주변에서는 더 이상 어렵다 할 때에도 오뚜기처럼 일어나 새로운 주님의 은혜를 기다렸다.

찾아가 만났을 때는 산소호흡기에 가려진 얼굴에로도 애써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손을 들어 파이팅!”을 외치는 여유를 보여 주어 함께 사역하는 목사님은 그것이 그렇게 눈에 선하단다.

집사님은 특별히 찬송가 16내 주는 살아 계시고찬송 부르시길 좋아 하셨다. “...내 안에 주님계시고 주 안에 나 있어 그 한량없는 기쁨과 참 안식을 얻도다. 아멘!” 찬송을 부를 때면 모든 고통과 염려를 주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음으로 부활을 통해 얻는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과 참 안식을 누리기에 그 커다란 눈망울에 맺힌 눈물은 감사의 고백이 되어 오히려 우리 모두를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문자를 받고 달려간 그 아침, 집사님은 산소호흡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산소로도 호흡하기에 부족하던지 헐떡이는 숨이 안타깝게 보여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물었더니 평안하길 위해 기도해 주길 원했다.

그때 그렇게 믿음이 약해 늘 염려했던 남편이 옆에 서서 아내의 손을 지긋이 잡으며 하는 말이 여보! 나는 당신을 너무 많이 사랑했어, 그런데 나 보다 하나님이 당신을 더 사랑하시는 가봐! 그러니까 당신을 이렇게 빨리 불러 가시려고 하잖아! 그래도 이제 내가 더 하나님을 사랑할게 당신은 염려하지마!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면 당신이 하던 말대로 정말 편하게 해 주실꺼야!” 그 사랑의 고백은 지금껏 그의 아내가 염려하던 남편이 아니었다.

나는 집사님의 손을 잡고 축하합니다! 그동안 기도하시던 제목을 이런 아름다운 고백으로 들을 수 있도록 애쓰셨습니다!” 그때 난 집사님의 산소마스크 뒤에 숨겨진 얼굴에서 감사가 넘치는 멋진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감사 기도하기 위해 움직이는 집사님의 입술을 보았다.

너무나 가볍게 그리고 감사함으로 그 병실을 나와 사무실에 도착한지 한 시간 반 후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갑자기 호흡을 멈추셨지만, 그러나 너무나 평안한 모습이었다고...”

천국환송예식을 진행하던 나는 남편이 아내에게 고백했던 고백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 남편의 고백이 얼마나 아내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었던지 그토록 고생스러운 호흡 속에서도 삼 개월 간의 투병을 온전하게 내려놓고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위로의 고백이었으니 우리 모두가 증인이 되어 함께 그 고백을 지켜 나가자고 권면했다.

남편은 다시 한번 하나님을 앞으로 더 사랑함으로 아내가 있는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함께 누리겠고, 하나님의 품에서 남편을 맞는 신부처럼 아름답게 변화된 아내를 만나고 싶다고 다시 한번 영정의 아내 앞에 고백함을 잊지 않았다.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이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6~8)

08-04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일반병동을 거쳐 암 병동으로 올라갔다.

이 커다란 암 병동이 환자들로 넘쳐나 제시간에 입원이 안 된다는 불안의 소리가 들린다.

10층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자지러지게 들려오는 기침소리.

그 기침소리 주인공을 찾아가는데 나에게 바로 길을 안내해 주는 소리였다.

폐암 말기로 토해내는 기침소리는 환자를 완전히 소진시켜버리기에 충분했다.

휠췌어에 널브러지다시피 쳐진 그 조그만 몸뚱이를 보니 너무도 안타까워 어디에 눈길을 두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아직은 좀 더 평범하지만 재미있고 풍성하게 살아도 될 50대 초반의 나이인대도 서서히 하루하루 남은 날들을 세고 있다.

처음 이분을 만났을 때만해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고, 자신이 폐암 환자가 되었단 것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던 사람, 예수님도 자신에게는 별로 필요한 분은 아니라고, 다만 주변에서 하도 박 목사를 만나 보라고 해서 만나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당당하던 분이였다.

처음 만나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지금은 별로 기억도 없지만, 그 당시 암 환자로서 기본적인 상식을 이야기하고 주의할 점과 긍정적인 투병을 위해 믿음을 갖고 함께 투병해 보자고 했던 말에 별로 나쁜 말은 아니네요!” 하던 말만 기억날 뿐이다.

그리고 한 6개월을 아무 소식 없이 지내기에 점점 잊혀가던 어느 날,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덧붙여하는 말이 자기도 병상세례를 받을 수 있냐는 것이다.

준비하고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더니 그곳에는 믿음이라고는 전혀 없던 환자를 위로하고 믿음으로 투병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애쓰셨던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환자는 쇼파에 비스듬히 앉아 터져 나오는 기침과 호흡이 어려워 산소 발생기 호흡기를 코에 꼽고 있는 힘든 상황인데 오늘 자기가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를 알았다고 했다.

죽을 것 같이 터져 쏟아지는 기침과 숨을 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기에 한 시간을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는지... 그때 누군가 내 곁에 있어주길 원했어요.”

누군가 자신 곁에 온전히 있어 주길 원했지만 아무도 도움이 되질 못했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인가 딸이 자신을 위해 너무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기다가 자기와 별로 친한 사람도 아니다 했는데 교회 다니는 주변 사람들이 아무 조건도 없이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도움도 부담으로 닥아 왔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자기는 언제나 주면 돌려주고, 받았으면 또다시 되돌려 주어야만 하는 것이 세상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자기에게 요구하지 않는 다는 것에 대해 그냥 자기 필요를 채워주고 이렇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츰차츰 예수님이 자신에게 누구이신가를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거들떠보지 안했었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이렇게 찾아오셔서 자기에게 투병할 의욕을 주셨다는 것이다. 아니 자신이 왜 투병해야 되는지 또, 어떻게 투병해야 되는지를 알게 되었는데 이것을 처음 알도록 해준 몇 달 전 나와의 만남을 기억하고 병상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었다 했다.

환자를 찾아가 성경의 말씀을 통해 투병하도록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오늘 자신의 고통이 자신의 삶의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자신은 이제 이 땅에서 만의 삶이 아닌 영원한 삶이 있을 살아갈 확신이 있다했다.

그 삶을 위해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삼일 만에 살아 나셨다고 고백했다.

그 기침을 심하게 하던 그 마지막 복도에서 만난 다음 날 누군가 크게 이야기하면 그 진동 때문으로도 고통을 느끼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동안 너무나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며 더 이상 고통과 눈물과 아픔과 병이 없는 오직 생명만 있는 그 곳, 자신의 본향으로 되돌아갔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08-05 주님을 통해서 완벽해 질 수 있었어요

가장 행복할 때 고난은 시작되었습니다. 골육종이란 판정을 받았습니다. 골육종은 일종의 뼈 암으로 주로 십대 청소년들이 걸리며 암세포가 뼈들을 변형시키면서 일으키는 병입니다......”

오늘 봉사자 모임에는 특별한 시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일년여 동안 투병하던 한 딸아이가 치료를 끝내고 완치가 되어 그동안 자신을 위해 기도하며 섬겨 준 봉사자들에게 승리한 투병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했고, 그 보고를 받는 우리는 이 딸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확인하며 새삼 감격의 시간을 갖고 있다.

 

한 해 전,

어린 딸아이가 미국에서 유학중 학교에서 운동을 하다 다리가 부러지고, 그 부러진 이유를 검사하다가 다리에서 골육종이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 딸아이는 심하게 변형된 무릎에 다리까지 부러지면서 그 고통은 몰핀이 없이는 견딜 수 없었고, 급기야는 산모들이 분만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쓰이는 척추 몰핀을 맞아야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열일곱 조그만 여자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찼다. 그래서 눈을 뜨게 되면 시작되는 고통이 싫어서 할 수 만 있었다면 눈을 뜨고 싶지가 않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의사와 자신의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겠네 하나님께 의지하고 믿음을 갖고 감당해 보자는 당찬 결론을 내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회장과 지휘자, 달리기 대표선수, 미국 유학 중에도 항상 1등을 하던 지신감이 충만했던 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해야 했을 때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긴 생머리에 예쁜 구두에 스커트를 입은 아이들의 활보를 볼 때마다 그 마음은 수천갈래가 되어 병실에만 꼼짝 않는 아이가 되어 갔다.

이런 낙심과 고통 중에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어린 딸을 위해 특별한 처방전을 준비하고 계셨다. 옥한흠 목사님의 저서인 안아 주심이었다.

내가 네 곁에서 네가 힘들어 할 때도 너 보다도 나의 마음이 더 찢어지고 아프고 아프단다. 네가 너를 절대 놓지 않으리니 기운을 내거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니 나를 따라만 와 주겠니매일처럼 그 부드러운 음성이 진통제로도 듣지 않던 그 고통 중에도 엄마가 옆에서 읽어 주시던 시편의 말씀과 함께 평안함으로 자신을 유지 시켜 주는 큰 선물이 되었다.

미국의 의사 선생님들은 어린 딸이 미국에서 치료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있는 한국에서 치료받는 것이 더욱 안전하겠다고 결론을 짓고 귀국을 권하게 되었다.

귀국을 기다리던 두 달은 불안하고 두려운 너무도 긴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은 사랑하는 딸이 비행기를 타도 문제가 될 수 없을 때까지, 또 이 딸이 비행 중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말을 하는 미국의사 선생님까지 준비 시키시는 기간이었음 확인하고 나서야 그동안 왜 이리도 더디냐하던 불평과 불만을 온 가족들은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을 선택하고 신뢰했다.

“A”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항암제가 투여되고 치료가 시작되었다.

항암제가 자기 몸속으로 스멀스멀 들어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이 여린 딸아이는 두 손을 꽉쥐고 이 약이 발휘할 수 있는 효과보다도 배로 효과가 일어나 암세포를 죽이되 다른 건강한 세포들은 주님의 손길로 보호하여 주소서간절히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했단다.

힘이 없고 늘어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마다 주님 저 힘이 없어요!” 기도하면 가장 가까이에서 안자하신 모습으로 사랑하는 딸을 위해 평안함으로 안심하라고 위로하고 계셨다.

지난 해 오월은 이 어린 딸에게 위기의 시간이었다. “다리를 절단해야 될지 모른다는 둥, 온 몸에 암이 다 전이가 된 것 같다는 둥 여러 소식들이 주위를 맴돌았지만 로마서 8:28절과 31절의 말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런즉 이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란 말씀을 부여잡고 투병하였더니 오늘 이렇게 주님을 통해서 완벽해 졌습니다!. 고백하는 사랑하는 딸에게 최고의 찬사와 박수를 보내며 어리지만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든 이 아이의 복학이 조금은 문제가 있지만 속히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한다.

 

 

08-06. 내 잔이 넘치나이다

“1230분에 잠시의식을 잃었다가 일어나 아직도 시야가 안 좋은 듯 이상하지만 목사님께 안심하시라고 연락드립니다.” “오늘은 세 번 의식을 잃었다가 돌아 왔습니다. 윤희가 목사님께 알려달랍니다.” 헨드폰의 문자 멧세지의 문구들이다.

지난여름, 푹 푹 찌는 더위 속에 답답하기에 이를 때 없는 쪽지 하나가 배달되었다.

36세의 한 자매, 아직 2살 밖에 되지 않는 아이의 엄마가 폐암말기로 척추에 그리고 뇌에 전이된 진행성 암으로 고생하고 있으니 섬겨 주길 원하는 쪽지였다.

어머니는 간호사 출신이신데 딸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음에 큰 낙심으로 상심하기를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그 얼굴에 가득 차 올라있는 수심을 보니 차마 위로의 어떤 말도 쉽게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일까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보기만 해도 믿음직한 남편은 얼마나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고 사랑하는지, 내 그들보다 훨씬 나이 먹었음에도 그와 같지 못해 날 부끄럽게 하는 형제였다.

침대에 누워 있던 자매가 기어코 일어나 앉아서 말씀을 나누겠다하니 호흡이 잘 되지 않기에 간단히 방문을 마쳐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마태복음 625- 34절로 말씀을 나누었다.

예수님은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 말라하시며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그것들도 하나님께서 기르시고, 입히시는데 너희는 그것들보다도 훨씬 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또,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시며 믿음을 크게 갖도록 권면하신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말씀하시며 오직 너희의 구함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만 구하게 되면 그때에 너희의 필요 위에 더하심을 기억하되 내일을 염려하지 않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자매와의 믿음의 대화는 거의 한 시간 삼분을 넘겼는데,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것은 그동안 일분에 한번 씩 하던 기침을 하지 않고 겨우 두세 번 밖에 콜록, 콜록할 정도였음을 기억하게 되었다.

자매도 어머니도 남편도 신기해하며 감사했지만 성경 말씀이 끝나고 다시 투병 이야길 하니 일분이 멀다하지 않고 계속 터져 나오는 기침으로 다음을 약속하고 돌아 올수 밖에 없었다.

봉사자들이 모이는 어디에서든지 자매에 대한 안부는 모든 관심의 전부였는데, 모두가 다 엄마 마음이 되어 자매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기에 당연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자매는 조금은 공기가 좋은 곳, 일산의 아름다운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전에 섬기던 목사님이 그 근방에서 개척교회를 하신다고 교회까지 옮기게 되었지만 우리 봉사자들은 한결 같이 자매를 찾아가 열심히 섬겼다.

이사를 하고서 그곳 암 쎈타에서 들리는 소식이 놀라왔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다 회복이 될 것처럼 소식이 왔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 기뻤다.

새롭게 처방 받은 이레사라는 약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약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던 기침이 멎고, 교회에서 어느정도 훈련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니 얼마나 감사하는지 이젠 우리 환자 명단에서 빼내어야 되는 것 아닌가하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기뻐하고 감사하길 서너달이 지났다.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새로운 기도제목이 날아 왔다.

불길한 생각이 현실이 되어 자매는 뇌압의 상승으로 인해 누군가 크게 말을 하여도 그 진동으로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자매를 만나 고통스럽고, 힘든 것 때문에 두려워 말고 그대로 인정하며 한 순간 순간 믿음으로 이겨나가길 기도하자고권면하고 돌아왔을 때 얼마 만에 이런 평안이 왔는지 너무나 감사하다며 한 주간을 잘 지냈다하더니 헨드폰 문자판의 문자처럼 내 마음에 조바심을 주더니 그날 아침에 병원에서 그렇게 나에게 웃어주던 모습으로 평안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장례를 위해 찾아간 영안실 영정의 사진을 보는 순간 시편 235절의 말씀처럼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고백하는 자매가 잘 외우던 음성을 듣게 됨으로 슬픔과 아쉬움 속에서도 이젠 내가 위로를 받았다.

 

08-08 그녀가 디자인 한 설교 복을 기다리며

호스피스 새내기 자원봉사자 강의를 위해 찾아간 H교회.

총무님께서 전화를 하겠다며 명함을 요구했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이야기만 듣고 돌아왔다.

전화벨이 울리고 총무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만 뇌종양으로 고생하는 스물 한 살의 어린 자매를 소개하겠다는 것이다.

삼십 여분 지나 어머니와 언니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오는 자매를 보고 있으려니 안타까움과 함께 말 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이 몰려 왔다.

어머니는 곱게 보이는 둥글넓적한 얼굴에 온통 깊은 수심에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시선을 둘러보는 것이 심히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두 살 밖에 많지 않지만 의젓한 언니는 끝까지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어떻게든 무엇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 해주고 싶다는 비장함까지 서린 표정이 역력했다.

아직은 너무나 어리기까지 보일정도로 순수한 미인형의 자매는 왼쪽이 마비가 와서 걷는 폼도 뒤뚱거리고, 반쯤 감겨진 왼쪽 눈과 어눌한 말솜씨는 디자이너를 꿈꾸며 단기간이지만 유학까지 다녀 온 적극적이고 지혜로웠던 자매가 아닌 피곤하고 지쳐버린 아픔만 역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언니가 모두를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신가요? 내 동생이 치료될 수 있나요? 그렇다면 확인할 수 있어요?”

자매들을 위해 예레미야 331절부터 9절까지의 이야기를 풀이해 주었다.

자신들의 방법과 고집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돌아보지 않던 그래서 자신들의 가옥과 유다의 왕궁까지 헐어서 갈대아인의 흉벽과 칼을 막아 싸워보려 했지만 철저하게 실패한 그들, ()은 무너지고 죽음만이 가득한 그곳을 다시 찾아 오셔서 그들을 회복하시기 위해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케 하시기 위해 그렇게 찾아오신 하나님. 그 분께 돌아와 믿음으로 회복하게 하심을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과 성실이 풍성하게 그 ()을 치료하고 고쳐 낫게 하실 약속과 그 고통과 두려움, 실패가 오히려 찬송이 되고, 영광이 될 것과 그 복을 누리는 자에게 그 복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두려워 떨게 될 것을 풀이하고 치료를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聖殿(성전)으로 귀하게 돌볼 것과 그러기 위해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부활하신 능력을 설명해 주었다.

갑자기 언니가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하고, 어머니와 딸 얼굴이 소망 가운데 밝아지기 시작하며 방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강력한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생이 병들자 언니는 혹시나 남들의 이야기처럼 자기라도 교회에 가면 동생이 나을 것이라고 믿고 교회에 출석했지만 동생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설상가상으로 동생은 언니의 그 광적인(?) 행동의 변화에 쓸데없고 필요 없는 짓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하니 그동안 심적인 고통이 말이 아니었던가 보다.

거기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산사를 찾아가 딸의 이름을 여기 저기 공양을 드려가며 많은 재물을 치료와는 상관없는 정성으로 드리고 있었으니 경제적으로도 꽤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 즉시에 세 명은 누구랄 것도 없이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고백하며 기도를 요구했다. 순간인 것 같은 시간이 족히 서너시간이 지나 그들을 배웅하고 저들의 안타까워하던 약속을 기억하며 하나님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아버지를 만나달라는 것이다.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아버지에게도 이런 평안이 와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찾아온 아버지와 네 식구들은 어제의 그들이 아니었다.

소망이 넘쳤음일까? 네 식구가 서로 먼저 이야기 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서너시간이 흐른 후 자매는 나에게 약속을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건강을 회복하는 날 빤작이를 많이 넣어 멋진 양복을 디자인해서 나에게 선물하면 그 옷을 입고 강대상에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보고 싶다는 약속이다.

나는 자매에게 자매가 디자인 한 설교 복을 기대하며오늘도 그 약속을 받기 위해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다림을 기다린다고 약속했다. 오늘도 자매와 그 식구들은 얼마나 기쁘게 감사함으로 하루하루를 잘 감당하는지 감사할 뿐이다.

 

 

08-09 재발이 가져온 그녀의 하루 일과

자매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기가 오늘 눈을 떠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어제 밤잠자리에 들 때 그녀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밤 저를 부르신다고 해도 제가 후회하거나 놀라지 않게 해 주세요!” 고백했기에 오늘은 더욱 새로워진 하루를 맞는다.

자매는 대장에서 시작되었던 암이 폐와 뇌로 전이 되어 어렵게 투병하고 있다.

처음,

암 환자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만해도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항상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자타가 다 인정하고 본인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갑자기 암이란 진단을 받고 자신이 암 환자가 되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용납될 수가 없었다. 무언가 잘 못 판단한 것이라고만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조직 검사 시료가, 챠트가 분명히 바뀌었을 것이라는 불안하게 막연히 가상했던 생각들이 점점점 확신이 되어 갔다.

그래서 어설픈 잠을 자다가도 번뜩 눈이 떠지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되나, 어떻게 하지... 어쩔 수도 없는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알 수 없는 불안이 목을 조여 올 때쯤에는 정말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고 마를 것 같지 않는 눈물만 솟구쳐 올라온다.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 잠꼬대로 흐느끼며 뒤척이고 있는 어린 딸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 보지만 아니야! 아니야 이것은 절대로 아니야 몸부림만 치게 되었다.

입맛은 점점 잃어 가고 갑자기 체중이 빠져 가니 이젠 누가 보아도 완전히 환자 같다.

주변에선 보란 듯 두 팔을 쭉 벋어 자신 있게 앞뒤로 흔들어 대며 걸어 다니는 모든 사람들 앞에 자기만 이방인 같아 나서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피곤해 지고 말할 수 없는 창피함마져 느껴지다가 갑자기 뇌리에 들려오는 소리는 한 가지 뿐이다.

내가 암 환자야. 내가 암 환자야....그러니 넌 살 수가 없어!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다 죽을 거야 아무도 너를 돌아 볼 수 없어!”

아무도 그 자신을 그렇게 말하지도 간섭도 하지 않건만 자신의 마음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일어 설 수가 없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주치의는 건강하게 지내십니다. 걱정 마세요. 잘 되었습니다칭찬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안심했는데...

자매를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나 낯을 가렸다.

함께 있는 그 시간은 나에게 너무도 힘들고 긴 시간이었다.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있었다.

자매와 너무 경과가 비슷한 봉사자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봉사자는 금방 자매와 짝짝꿍이 되었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며 서서히 자매는 믿음이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도 자기에게 찾아온 봉사자처럼 살겠노라고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봉사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매는 몸의 형편이 말이 아니다.

호흡하기도 힘들고, 정신은 자꾸만 혼미해져 가는 것 같고, 이젠 정말 정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은 날을 감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껏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주셨던 평강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썪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베드로전서 13, 4) 고백한다.

 

 

08-11 권사님! 권사님 숨을 쉴 수가 없어요.

환자를 섬기다 보면 가끔은 계속 섬기는 것이 환자에게 과연 어떻게 섬겨주는 것이 도움이 될까? 묻고 싶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애통하기만 한 답답한 환자를 만난다.

2년 전, 청년부 담당 교역자로부터 21살의 뇌종양으로 고생한다는 한 자매를 소개 받았다.

창문가 옆 햇빛이 잘 비치는 침대에 누워있는 자매는 뽀얀 얼굴이 꽤나 귀엽고 잘 생겼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자매는 뇌의 종양이 숨골을 막고 있어 상당히 어렵고도 힘든 위험한 투병을 하고 있었고, 목소리로는 의사소통이 어려움이 있었지만 눈으로 껌벅 껌벅 거리며 입술로 모양 짓는 것만으로도 처음에는 소통이 이루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고, 음식물 섭취가 어렵다고 유동식이라도 투여하기 위해 관 삽입을 위한 수술하게 되었고 도중에 혼수상태가 왔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곧 임종을 할 것 같다는 소식에 자매를 섬기는 봉사자와 함께 중환자실로 한달음에 달려가 임종예배를 드리고 돌아왔다.

자매는 우리의 예배에 응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곧 안정이 되고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나오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에 우리 모두는 안도하며 감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급 상황을 알리는 급보가 점점 많아지자 임종 예배는 이젠 양치기 소년의 늑대 출현을 외치는 우화처럼 되어버리길 한 해를 훌쩍 넘기기 되었다.

딸 간병위해 직장도 집안일도 포기하고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한 상태를 대비하며 조리고, 애통한 마음으로 그 오랜 시간 딸의 그림자가 되어버렸던 어머니도 점점 지쳐갔다.

해가 바뀌면서 점점 가족이나 우리의 기도 제목도 바뀌게 되었다.

병원에서 그 불편함 보다 어떤 상황이던 퇴원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지난 해 그 무더운 여름에 자매가 집으로 퇴원했다는 한 줄기 반가운 소식이 날아 왔다.

자매를 섬기는 봉사자들은 그 집에 다녀와 보고하실 때 다시 어머니를 생각하게 했다.

집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반대편에 열려 있는 방의 침대에 누워있는 자매가 눈에 띄었다

그 집에서 가장 크고 좋은 위치에 있는 안방에 모든 짐을 버리고 자매를 위한 병원보다 좋은 특실을 만들어 놓은 어머니의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다고...

더위를 이겨내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서 침대를 중심으로 네 대의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고(에어컨은 마비 증상 생길까봐 사용하지 못 한단다), 예쁘고 고운 연분홍과 푸른 색 계열의 지지미 잠옷을 교대로 입히고 이불은 아이보리 인조 이불을 덮어주었다. 회복될 때 체력이 약해질까 봐 간병하느라 지쳐버린 가족도 먹지 못하는 각종 영양식과 좋다는 약재들을 계속 호스를 통해 자매에게 넣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어렵다던 자매는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을 지내고 또다시 봄과 여름 가을을 집에서 투병하고 있다.

모든 식구들 정성이 결과인지 자매는 지금 휠체어를 타고 예배에 참석하기 위한 물리치료의 단계를 밟고 있다. 처음에는 20분도 힘들어 하여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했는데 지금은 한 시간도 거뜬히 버텨내고, 옆으로 엎드려 놓았는데 너무도 편안하게 오랫동안 자세를 유지했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하루는 봉사자 권사님에게 자매가 "권사님! 권사님 숨을 쉴 수가 없어요, 호흡이 잘 안 되어요"라는 자매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매의 실제 음성을 들은 적은 없었는데 너무 놀라 보니 꿈결이었단다. 그러나 봉사자의 마음은 아무리 꿈이지만 "혹시 위급 상황이 생겨 이제 겨우 집으로 왔는데 다시 병원으로 돌아 가야하나?"하는 염려를 듣고 변화가 없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처음 만났을 때는 그리도 아름답던 자매가 지금은 너무도 변해 버린 완전한 환자가 되어 버린 환자를 섬겨보자고 봉사자들에게 맡겨드린 내 선택이 너무나 못할 마음의 큰 짐을 주고 있나 하는 생각에 책임자로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내 마음이 더 아려오는 것은 왜일까 알 수가 없다.

자매가 좋아하던 찬송가 88장의 기억한다.

“...내 마음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우리에게 이런 환자를 맡겨 주신 분이 우리 주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시편 6012). 믿음으로 감당케 하실 줄을 믿는다.

 

 

08-12. 첫 눈처럼 살다간 아이

어제는 첫 눈이 세상을 향해 모든 것을 다 품을 듯 흩날렸다.

첫 눈이 오면 항상 생각나는 한 아이가 있다.

당시 13살이었던 여자 아이는 임파성 골수암을 앓던 나이에 비해 너무나 조숙한 아이였다.

가정의 형편은 너무도 어려웠다. 이혼을 한 부모님은 그 덕분에 하루 일당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엄마와 어렵고 힘든 삶을 살던 아이는 그 형편에 비해 너무나 긍정적이고 또, 성격도 쾌활한 편이다. 아이는 우리를 매일 매일 보고 싶다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봉사자들이 순번을 정해 집을 찾아가게 하는 지혜로움(?)도 갖고 있었다.

혼자 있으면 밤 맛도 없고, 이 나이에게 밥을 차려 먹는 것도 어렵고 그래서 아줌마들이 와 주시면 너무나 좋죠!” 이런 말에 어느 누가 이 아이를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을까요.

아이는 우리를 만나면 한 시간도 두 시간도 조잘 조잘 이야기도 잘도 했습니다. 자연히 우리 봉사자들이 모이면 이 아이의 이야기로부터 화두가 되었지요.

어느 날 새벽녘에 정신없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들어 수화기를 귀에 대니 그 아이가 계속 치료를 받던 병원 응급실에서 아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몸부림에 눈을 떴더니 갑자기 아이가 순간 혼수가 와서 병원에 와 있는데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몸부림치는 듯이 전화기애 대고 통곡을 하니 조금만 기다리라 해 놓고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아이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선 하는 말이 나 안 죽었어. 아직은 아니야!” 갑자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순간 당황하게 하던 아이였다.

아이는 혼수를 한번 겪고 난 이후 눈에 띄게 어렵고 힘들게 상태가 나빠지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은 이젠 도저히 어려운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 중에도 아이는 나에게 이젠 아줌마들 매일 보내지 않아도 괜찮아. 여기는 예쁜 간호선생님도 있고, 간병하는 아줌마들이 방마다 있어서 괜찮으니 일주일에 한번씩만 와도 되

그동안 그 아이가 사람이 그립고 사랑이 그리워 그렇게 외로움을 키워 갈 수 밖에 없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에 아이가 그렇게 말했지만 오히려 더 자주 찾아 주어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집으로 찾아가던 우리의 섬김이 병원으로 찾아가면서 점점 문제가 생겼다. 너무 많이 아이를 찾아오는 것이 병원에서 아이에게 감염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더 이상 아이를 자주 찾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 마음이 애틋하다 하여 마음대로 찾아 갈 수는 없는 것이기에 한 주일에 한 번으로 아이를 찾아가는 것을 제한하게 되니 이젠 함께 가지 못하는 봉사자들이 그동안 아이에게 들었던 정 때문에 자기도 가고는 싶은데 그렇지 못함에 섭섭해 하는 조금은 힘들어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럭저럭 가을 잘 넘기나 했더니 찬 바람이 불어 올 때 갑자기 아이에게 폐렴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한 고열과 함께 기침이 심하게 하면서도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농담이라고 그랬는지 아이쿠 나 죽겠네!”하며 파파 할머니 흉내를 내며 너스레를 떨 때 그렇게 잘 이겨 내길 우린 기도했었다.

그러나 그 해 첫 눈이 오는 새벽, 아이의 엄마가 아이가 이상하다고 병원에 급히 와 달라하여 달려가니 아이는 서서히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격리 병실에 도착하여 공기 소독을 하고 아이의 침대로 가서 이름을 부르며 이제는 정말로 떠 날꺼니?” 했더니 힘없이 눈을 떠 다음에 또 만나요 눈으로 인사하더니 무엇인가 전해 주고 싶다는 손짓을 하더니 말없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 후 아이의 엄마는 나를 만나고 싶다하더니 봉투하나를 내밀기에 깜짝 놀라 무엇이냐 할 때 아이의 글씨를 보여 주며 아이가 나에게 전해 줄 헌금이라는 것이다.

어찌해야 되나 고민하다 아이의 엄마와 그 봉투를 함께했던 병실의 아이의 옆 침대 아이에게 비록 적은 액수지만 아이의 믿음과 함께 전해 주기로 약속했다.

비록 짧지만 우리에 기대도 주었고, 그리고 무엇인가 아름답게 오래가길 원했던 기대의 시간에 쉽게 녹아 버려 흔적도 없어져 버린 첫 눈처럼 아이는 그렇게 떠났지만 우리는 지금도 기억하며 그 아이가 남겨 둔 믿음과 웃음을 기억한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수기 1428)

 

 

09-2 평안과 소망을 허락하셨다.

사진 속 집사님은 아름답게 웃고 있지만,

엄마의 사진이 왜 거기에 놓여 있는지 알지 못하는 3살짜리 아들은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동네 아이들과 함께 불렀을 법한 잘 알지 못하는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고 있다.

아이의 노래 소리를 듣던 아빠가 아이를 끌어 당겨 무릎에 앉히고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로 목청을 높여 알아듣지 못하는 노래를 불러 댄다. 그것이 이 아이가 부를 수 있는 진혼곡인양...

입관예배를 드리려 영정 앞에 앉은 성도들이 새해 벽두부터 애달픔으로 눈시울을 붉힌다.

사 개월 전 어느 날, 시누이가 올케를 위해 기록한 메일 한 통이 메일 함에 도착했다.

44세 된 아직은 꿈도 많고, 계획도 많던 가정에서 열심히 혼자 신앙 생활하는 다른 교회 분인데 유방암에서 척추 등 전신으로 전이가 되어 너무 고통스러워하는데 영적으로도 많은 혼란을 겪고 있으니 가능하다면 심방을 부탁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환자가 영적으로 혼란을 갖는 이유가 있었다.

“S 교회 아주 열심 있는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신앙적으로도 많은 체험을 갖고 계셨고 집안에서 항상 신앙적인 대들보 역할을 하시는데 그분은 환자의 친정어머님이셨다.

문제는 전혀 믿음 없는 사위를 앉혀 놓고 딸의 병의 원인이 귀신이 몸에 들어와 집을 짓고 있기에 축사를 통해 매번 귀신을 쫓아내어야만 한다고, 사위의 못마땅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실 때마다 축사를 하신다.

이 축사 문제가 과연 환자에게 합당한 것인지 또,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이 자신의 올케를 회복 시켜 주시는 것이냐고 질문을 해 왔다.”

메일을 읽으며 참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그 엉뚱한 발상을 하고 있는 그 친정어머니가 하는 일이 그 깊은 어머니의 사랑의 마음인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간혹 환자들은 자신들의 투병이 잘 못된 신앙의 열심 때문에 너무나 크고 아픈 상처를 받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지 믿음 없는 시댁 식구들을 보기에도 실컷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 귀신에 휩싸여 암 환자가 되었다는 결론이니 환자는 무안하기 이를 때 가없다.

시댁 식구들은 사돈인 친정어머니가 딸에게 씌운 귀신을 쫓아내어 암이란 병을 치료하고 있다하니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과 고통 앞에서 환자는 죽을 맛이지만 말 할 수 없는 일이다.

환자의 집을 방문했다.

환자는 호흡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비록 몸은 일으킬 수가 없지만 침대에 누워 기다렸다는 듯 두 손을 흔들며 악수를 청하지만 고통으로 이글어진 얼굴에도 반가움이 베어 난다.

목사가 딸의 집을 방문한다하니 그 열심 있고 믿음 좋으신 친정어머니도 와 계셨다.

내어 준 의자에 앉아 잠깐 기도하고 고개를 드니 환자 남편도 환자도 정말 자신이 귀신들려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가 밝혀 달라는 눈빛은 받으며 암이란 병의 기전과 이 병으로 인해 이루어질 고통을 완화 시킬 일과 또, 믿음을 통해 투병하는 것이 환자에게 중요하기에 이제부터 환자 혼자 투병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투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을 통해 거의 한 시간가량 말씀을 나누었다.

딸의 발끝에 앉아 계신 친정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특별히 동요하진 않으셨다. 친정어머니를 눈빛을 보자 어찌하든지 이 병에서 딸을 치료하기 위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딸이 암이라는 병으로 투병하다가 또 전이가 되어 병원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니 교회에 상담을 요청했고 담당 목사가 귀신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 그 귀신을 쫓아내면 딸을 살릴 수가 있다 했으니 철썩 같이 믿을 밖에...

과연 예수님은 암으로 투병하는 환자들을 보시며 그렇게 하셨을까?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찜찜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돌아오며 왜 환자를 그렇게 매도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왜 감싸매줄 자는 적은지 기도하게 한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고통당하는 자리에서 징계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무리 재앙 같은 현실에서도 평안과 소망을 선포하시는(예레미아 29:11) 하나님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비록 죽음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죽으셨다 삼일 만에 다시 살아 나셔서 "평강이 있을찌어다!" 선포하고 계시는 주의 음성을 듣는 날들이 환자들의 투병 가운데 우리 환자가 그 귀신에 들렸다는 억울함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소망을 누리기 위해 주님 앞에 선 것처럼 모든 환우가 올 한해 평안과 소망의 자리에서 투병하길 소원한다.

09-03 감사를 회복한 사람들

~! 아냐 아냐 그렇게 하지 말고 아이쿠!

와하하하! 잘했어, 잘했어! 온통 흥분의 도가니 속에 혼재된 말들이다.

아이들, 엄마들 그리고 아빠 또, 관중들이 된 선생님들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선수(?)들을 격려하고 함께 기쁨을 이기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 만해도 이들은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눈치만을 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서먹서먹하여 모르는 남들이 함께 모여 있는 듯하였다.

이들은 아빠가 암으로 투병을 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남은 자로서의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었다.

엄마, 엄마! 죽으면 안 되요, 안 되했지만 그들 곁을 황급히 떠나 버린 후 남겨진 7살 수연이도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다.

아빠가 투병을 할 때도, 엄마가 병과 그렇게 힘든 싸움을 할 때도 모든 식구들이 무슨 치료 방법이든 다 동원해서라도 치료해야하고, 될 수만 있으면 오래 살 수 있도록 해야 했고, 그렇다고 무조건 치료를 한다고 고통 받게 하고 싶지 않기에 아빠가 엄마가 고통 받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절제하며 살아야 했다.

이 땅에 남은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어느 날은 어쩔 수 없는 답답함과 고통이 밀려와 가슴이 조이고 잠도 잘 수 없고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되고 아무리 최선을 다 했다 해도 더 잘 해주었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한 것 같은 죄의식을 느껴 오히려 남아 있음에 대한 분노를 느끼기 까지도 했었다.

? 우리 식구들은 이런 일에 희생자가 되었어야 하는가?” 다만 절규할 뿐이었다.

막연하지만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들을 자문하고 부인하고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얼마나 우왕좌왕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세상을 돌아보면 어디에선가 금방이라도 달려와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떠났던 아빠가 돌아올 것 같아 함께 다녔던 그 자리에서 서서 방황했던 때가 어제 같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빠나 엄마가 떠난 자리가 너무나 커서 나도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요, 아빠가 없는 자리, 엄마가 없는 자리가 너무 아파요!” 아무리 몸부림쳐 어떻게 표현해 보려하지만 어른들은 너무나 무관심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가르쳐 주는 사람도, 그렇다고 보듬어 주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자기들 일이 아니라는 것에 당연하다는 듯이...

이 들은 이렇게 살다가 절망감에 우울함을 갖고 하루에도 수천번 별별 생각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투쟁하며 살아서 오늘까지 왔다.

갑자기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인가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돌아보라고 말씀하셨다.

환자들 돌아보기도 바쁘던 부족한 시간들이기에 공간이 없다, 나도 이들을 어떻게 돌아 볼 수 없다 하고 싶건만 아픔이 보이고, 고통이 보이니 그냥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공간이 없는 곳에서 억지를 내듯 매월 한번 모여 위로도 해보고, 함께 아픔을 나누자고 했건만 매년 하는 치유 캠프 때 보면 그 아픔은 그대로 있었다.

아이들의 아픔도 해결해 주자고 했건만 그럼 내가 어떻게 앞으론 살아야 되요?” 하며 무너져 버린 16살 형석이 에게 아무 도움도 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세금이라도 빼자 그리고 무엇인가 이들을 위한 장소를 만들어 보자, 아내와 쉽게도 위기투합이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들어와 평안을 느낄 사랑의 쉼터인 카페를 역삼동에 만들고 그 곳에서 최소 한 주일에 하루라도 이들을 위해 개방된 장소로 드리자 했다.

오늘 엄마와 아이들, 선생님들이 요즘 유행하는 게임을 자막에 띄워 놓고 편을 나누어 서로의 격려자가 된 것이다. “너무 재밌어요! 또 빨리 토요일이 되면 좋겠어요!” 5살 유진이가 벌써부터 조급해 졌다.

엄마들은 한결 같이 오늘 정말 오랜만에 뻥 뚫렸어요, 감사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 2:3)”

 

 

 

09-04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

그 날 아침 너무도 감사하고 즐거운 문자를 받았다.

한 주전 일이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외손자가 심장에 문제가 있어 수술을 했는데 아이 성대가 마비가 되어 울지도 못하고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는데 의사 선생님 말에 의하면 어쩜 아이가 소리를 잃어버리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며 아이가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 줄 수 있겠냐고 전화를 하셨다.

마침 S병원에서 폐암으로 너무 힘들어하시는 환자의 방문을 약속한터라 병원에 가기 전 먼저 아이 집으로 향했다.

아이 집에 도착하니 정말 어린 아이에게는 어울리질 않는 콧줄을 끼고 있는데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정말로 아이 모습은 분명 우는 것 같은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내 모습에서 아이 엄마가 염려를 발견했던지 말하길 혹 아이가 장애를 갖을지 몰라도 이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지 않고 내 품에 그리고 우리 집에 보내 주심을 오히려 감사하다는 충격적인 고백해 나를 순간 놀라게 했다.

마침 옆에 서 계시는 친정어머니가 신경이 쓰여 얼른 올려다보니 당연하지 이 아이를 주심은 우리 가정의 축복이야!” 외할머니는 딸 보다 한 수 위셨고, 큰 감동의 시간이었다.

큰 감동을 안고 기도해 주기위해 아이를 품에 안으니 풀풀한 젖 냄새가 향기롭다.

너무나 애잔해서 성대의 마비가 속히 풀려 큰 소리로 아이의 소리인 울음소리도 낼 수 있도록 회복을 위한 기도를 하고 그 가정을 나왔다.

그 감동을 갖고 S병원 병실을 찾았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삥 둘러 서있는 가족들이 표정이 심상치 않다. 환자의 너무도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에 자녀들이 다 기진하여 어떻게 할 줄을 몰라 했다. 호흡은 너무나 거칠어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버릴 듯한 위급함을 느꼈다. 딸들은 딸들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제각기 어머니를 부르며 어떻게 해, 어떻고 해 줄까 옴 몸을 주물러도 보기도하고 뭔가 도와 드리고 싶어 하지만 거친 호흡은 더욱 심해졌다. 상황을 보니 내가 나서서 이 순간을 속히 정리해 드리기에도 시간이 촉박했다. 가슴에서 들리는 너무도 거칠고 답답한 호흡 소리에는 그동안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말하고 계셨다.

환자머리 옆 침대 쪽으로 들어가 환자의 귀에 내 입을 가까이 대고 469장 찬송을 1, 2절을 불러들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4절을 불러야 하고 속히 환자에게 평안을 주어야 한다는 강렬함이 솟아났다.

4절 찬송을 불러 그 마음에 평화 평화가 넘쳐나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에게는 길과 진리이신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시도록 환자의 모든 고통을 담당하시는 예수님 십자가 아래 모든 짐을 내려놓으시면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이루어 평화를 만들어 주시길 원하시고 또 예수님이 부활 하셔서 평강을 선포하신 것처럼 환자에게도 평강을 주시면 이제 육신의 고통이 아닌 영원한 천국에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으로 곧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평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드렸는데 기도가 끝나고 아멘! 하는 순간 환자는 깊은 호흡을 한번 쉬시다가 그대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순간 방안에는 어떤 깊은 영광의 빛을 맞이하는 듯 연로하신 남편과 자녀들이 한 순간 떠나시는 환자의 모습에서 경외감을 느끼는 듯 했다.

아니! 어쩜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렇게 호흡 때문에 고통하시더니 찬송을 불러들일 때부터 말씀을 듣는 순간에 아이가 편안함 잠을 자는 것처럼, 기도가 끝나자 이곳을 떠나시는지 너무나 놀랍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감격적인 임종을 뵙고 돌아오는 시간 갑자기 휴대폰 문자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목사님이 기도하시고 간 후 두 시간 후 아이가 갑자기 울고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순간 너무나 가까이에서 나와 함께 하시며 환자들을 함께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임재를 느끼며 주님! 기도를 들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태복음 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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